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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 김포시 대곶면 오니산리 야구장 개장식에서 해병대 청룡부대 이호연 소장이 시구하고 있다. 해병대의 결단이 없었다면 야구장은 건설되지 못했을 것이다(사진=스포츠춘추)

‘국토방위의 첨병’ 해병대가 야구발전에도 앞장선다.

“‘귀신 잡는’ 해병대와 야구가 무슨 상관이람?” 하며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전후 사정을 들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8월 1일 해병대 청룡부대는 김포시와 한국야구위원회(KBO) 야구실행위원회의 도움으로 부대 내 공수훈련장을 야구장으로 탈바꿈시켰다. 전국 최초로 민·관·군 협력으로 군부대 내 야구장이 들어선 것이다. 더 놀라운 건 이 야구장이 군 장병이 아니라 시민을 위해 건설됐다는 점이다. <스포츠춘추>가 이 역사적인 순간을 함께했다.

해병대 공수훈련장이 야구장으로 변신한 계기

“야구장이요? 시에서도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사실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죄송합니다.”

김포시 교육체육과 체육시설 담당 허진학 계장은 전화를 끊으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주일에도 몇 번씩 받는 전화였다. 이제 이골이 날만도 했다. 그러나 허 계장은 항상 미안한 마음이었다.

“김포시에만 25개의 사회인 야구팀이 있습니다. 선수만 1천500명에 가까워요. 하지만, 시에 야구장이 없어 대부분의 사회인 야구팀이 외지에서 경기를 치러야 합니다. ‘왜 우리 시엔 야구장이 없느냐?’라는 민원전화를 받을 때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 수밖에 없었지요. 한편으론 시가 시민의 건강을 책임지지 못하는 것 같아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한 계장의 진심이다.

그렇다고 시가 “야구장을 지어달라”는 민원인들의 목소리에 모르쇠로 일관했던 것은 아니었다. 민원을 떠나서라도 김포 신도시가 완료되는 2012년이면 인구가 5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기에 인구 유입에 따른 시민 체육시설을 대폭 확충할 필요가 있었다. 그 중심에 야구장이 있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문제는 김포시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야구장을 지을만한 공유지가 없다는 데 있었다. 설령 사유지를 사도 매입 비용이 만만찮아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즈음 강경구 전 김포시장이 해병대 청룡부대장인 이호연 소장과 우연히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대화 도중 강 전 시장은 “야구장을 물색 중인데 마땅한 부지가 없다. 혹시 해병대 부지 가운데 여유 땅이 있느냐?”라고 물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던진 말이었다.

이 소장은 확답을 미룬 채 “부대 부지 가운데 여유 공간이 있는지 알아보겠다”고 짧게 대답했다. 이때만 해도 김포시는 완곡한 거절의사로 알았다. 그러나 며칠 지나지 않아 해병대로부터 연락이 왔다. “해병대원들이 공수교육을 받는 훈련장 가운데 약간의 여유 공간이 있다. 그곳을 쓸 의향이 없느냐?”라는 제의였다. 야구장 건설의 돌파구가 의외의 곳에서 터진 것이었다.

청룡부대 공보실장 이윤세 소령은 “부대 자체적으로 야구장으로 쓸만한 여유부지를 찾았다”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공수훈련장이 가장 적합하다는 결론을 내려 김포시에 통보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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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공수훈련장에 들어선 오니산리 야구장 조감도. 실제 야구장도 조감도와 똑같이 지어졌다. 야구장이 전무해 타지를 떠돌아다녔던 김포 사회인 야구팀에겐 단비같은 존재가 될 전망이다(사진=스포츠춘추)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어째서 해병대가 시의 부탁을 흔쾌히 들어줬느냐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군의 특성상 시의 제안을 거절해도 무방한 사안이었다. 행정절차의 번거로움을 고려하면 뒷짐을 질만도 했다.

그러나 이 소령은 “군은 군이 아니라 국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상급기관인 국방부가 “공수훈련장 일부를 야구장으로 만들겠다”는 청룡부대의 뜻을 전달받았을 때 “시민을 위해 여유부지를 체육공간으로 쓴다면 아무 하자가 없다”고 통보한 것도 군이 존재하는 이유를 ‘국민을 위해서’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드디어 지난해 10월 23일 김포시와 청룡부대는 야구장 건설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그리고 정확히 9개월 후인 지난 7월 23일 야구장을 완공했다. 국내 최초로 군부대 내 야구장이 건설되는 순간이었다.

사회인 야구장으로 부족함이 없는 ‘오니산리 야구장’

김포시 대곶면 오니산리 해병대 공수훈련장에 건설된 야구장은 좌우펜스 95m, 중앙펜스 100m의 대형구장이다. 사회인 야구를 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안전을 고려해 외야펜스는 이동식 안전펜스를 설치했다. 롤러를 이용해 평탄작업을 마친 뒤 야구장 전용 흙인 마사토를 깔았고, 홈플레이트 그물망 뒤엔 2층짜리 컨테이너 박스를 설치해 본부석과 기록실로 사용하도록 했다. 1, 3루쪽엔 더그아웃을 만들기도 했다. 이렇게 번듯한 야구장을 짓는데 시가 쓴 돈은 1억 원이다. 그러나 시는 3억 원을 더 썼다. 야구장 옆에 추가로 테니스장, 풋살장, 족구장을 지은 까닭이다.

시 관계자는 “이왕 짓는 김에 시민과 장병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생활체육공간을 만들자는 목표로 야구장뿐만 아니라 각종 체육시설을 완비했다”며 “군에 대한 존경과 고마움을 나타내려고 체육시설을 추가한 측면도 있다”고 강조했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오니산리 야구장 건설엔 허구연 MBC 해설위원의 역할이 컸다. 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이기도 한 허 위원은 야구장 건설에 어려움을 겪는 김포시에 갖가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바쁜 시간을 쪼개 김포까지 찾아와 야구장 건설에 반신반의하는 이들을 상대로 야구장의 필요성을 역설한 것도 허 위원이었다. 김포시의 한 관계자는 “허 위원이 지속적으로 야구장에 관심을 갖고, 홍보하지 않았다면 중도에 야구장 건설을 포기했을 것”이라고 털어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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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산리 야구장을 축하는 테이프 커팅식 장면. 김포시는 야구장을 지은 뒤 청룡부대에 이 야구장을 기부체납했다(사진=스포츠춘추)

8월 1일 야구장 개장식엔 유영록 김포시장, 청룡부대 이호연 소장, 허구연 KBO 야구발전실행위원장, 야구동호인, 시민과 군 장병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 소장은 축사에서 “군과 관 그리고 민이 더욱 협력해 군·관·민 교류 사례의 모범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야구 동호인들의 사용에 불편이 없도록 온 힘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실제로 청룡부대는 야구 동호인들의 사용 편의를 위해 야구장 입구로 들어가는 후문을 새로 만들었다. 김포시 야구연합회에 인적사항만 사전등록하면 출입 시 번거로움이 없도록 조치했다.

부대 관계자는 “보안에 신경 쓰면서도 융통성을 발휘해 야구 동호인들의 이용에 지장이 없도록 하겠다”며 “김포 야구발전과 시민의 건강을 위해 최대한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38년 만의 야구단 부활을 꿈꾸는 해병대

군은 이 야구장을 주말에만 민간인에게 개방할 방침이다. 특별한 사안이 있으면 평일 개방도 가능하단 입장이다. 그러나 사회인 야구의 특성상 평일 이용은 거의 없을 전망이다.

그렇다면 평일엔 어떻게 활용될까. 청룡부대 공보실장 이윤세 소령은 “이전처럼 계속 공수훈련장으로 계속 쓸 것”이라며 “훈련일정이 없으면 장병의 체력증진을 위해 야구장으로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리틀야구선수 출신의 이 소령은 한발 나가 “청룡부대의 부대명이 과거 MBC 청룡(LG의 전신)과 똑같다”면서 “장병 가운데 희망자를 모아 ‘청룡 야구단’을 만들 계획”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만약 해병대에 야구단이 조직된다면 1973년 해체 이후 38년 만의 재창단이다.

올드 야구팬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겠지만, 과거 해병대 야구단은 실업야구계의 강자였다. 1965년 창단 이후 김인식 전 한화 감독, 강병철 전 롯데 감독, 우용득 전 삼성 감독, 임신근(작고) 전 해태 코치, 김우열 전 쌍방울 감독대행 등 쟁쟁한 스타들을 배출했다. 1950~60년대 초반까지 실업야구계의 절대강자였던 육군 야구단을 견제한 것도 다름 아닌 해병대 야구단이었다.

1972년 실업야구 페넌트 레이스에서 상업은행, 한일은행, 육군 등 강팀들을 차례로 꺾으며 20승5무7패로 우승컵을 안았을 땐 명실 공히 실업야구의 챔피언이었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그해 연말 군 조직개편으로 해병대가 사라지고 해군에 종속되면서 야구단도 곧바로 해체했다.

김인식 전 한화 감독은 해병대 출신이다. 해병대 야구단에서 활동했다. 당시 해병대 야구단은 일반 해병대와 똑같은 훈련을 받았다(사진=스포츠춘추 박동희 기자)

이 소령은 “군 간부 가운데 아직도 ‘해병대 야구단’을 추억하는 이들이 꽤 많다”며 “‘청룡 야구단’이 장병의 군 생활 향상과 부대 자긍심 고취에 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야구팬’이었던 미국의 34대 대통령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민(民)과 군(軍)은 투수와 포수처럼 ‘배터리’ 관계다. 둘 사이의 유기적 관계만이 강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현실은 말처럼 녹록하지 않다. 그러나 해병대 청룡부대와 김포시처럼 서로를 신뢰하고, 존중하는 관계가 일상이 된다면 야구발전뿐만 아니라 나라의 발전도 어렵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야구인프라 확충을 시민의 건강과 안녕에 직결된 문제’로 판단한 군의 자세를 많은 지자체가 관심 있게 지켜봤으면 한다. 특히나 야구장을 ‘정치 장사’에 활용하는 일부 지자체장들은 오니산리 야구장을 방문했으면 한다. 야구가 단순한 공놀이가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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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대용 2010.08.02 09:19

    해병대야구단의 부활을 열렬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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