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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1사단 31대대 KCTC<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분투기

‘삐-이익!’ 이런 신호음은 항상 귀에 거슬린다. 그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끝났다. 비에 젖은 산야를 미친 듯이 내달리던 그들은 그대로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총성이 거짓말처럼 멈춘 숲속은 마치 전혀 다른 공간 같았다. 비와 땀으로 범벅이 된 채 털썩 땅바닥에 주저앉았던 그들은 이제 더 이상 버틸 힘도 없다는 듯 아예 드러누워 버렸다.

강원 인제의 적막한 숲속에서 숨소리만 거칠게 계속 높아져 간다.

이들은 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KCTC·Korea Combat Training Center)이 주관하는 과학화전투훈련에 참가한 해병대1사단 31대대 3중대 소속 9명의 장병들.

최후까지 분투하던 이 해병 용사들이 마일즈 장비의 신호음과 함께 ‘전사’ 판정을 받았다. 6시간에 걸친 3중대의 공격은 대항군의 3참호선을 돌파하지 못하고 그렇게 끝났다.

무엇이 그리 서러운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그들의 눈에 눈물이 흘렀다. 누군가 내뱉은 짧은 한마디가 그들의 가슴을 아프게 헤집었다. ‘한 발짝만 더 나갔으면…’.

▲ 수준급 전투력 과시

같은 시각, 훈련을 통제하는 KCTC 통제소의 분위기는 달랐다. 모니터로 현장 상황을 냉정하게 지켜보며 한 장교가 내뱉은 한마디. “역시 해병은 강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날 해병대31대대가 대항군의 3참호까지 도달한 것은 KCTC 창설 이래 이번이 두 번째. 31대대는 최고 수준의 전투력을 갖춘 대대임을 보여준 것이다.

현장 지리에 익숙한 대항군 습격조의 기습 공격을 극복하고 전투경계 병력, 온갖 장애물과 1·2참호를 극복하는 것도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다. 더구나 3중대의 분투를 바탕으로 전차와 보병이 혼성이 된 특수임무부대(TF·Task Force)가 대항군의 종심으로 깊숙이 진출하는 데 성공했다.

해병대1사단 31대대가 평소 얼마나 열심히 훈련해 왔는지를 입증한 것.KCTC 관계관은 “31대대의 경우, 상황 변화에 따른 실시간 대응 전투력 운용이나 적 매복 가능지역에 대한 회피 기동, 지휘권 승계와 통신망 유지 등 실전에서 매우 중요한 기본기와 원칙에 투철한 모습을 보여줬다”고 칭찬하면서 “일부 전술적 과오가 있었지만 이를 충분히 상쇄할 만큼 의미가 있었다”고 덧붙였다.

승리나 패배 같은 최종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대 장병들이 급변하는 전장 상황을 얼마나 주도적으로 이끌면서 술(術)적 차원의 전투수행 방법에 익숙한지의 여부라는 것.

▲ 전투영웅이 된 이병

다른 부대와 마찬가지로 31대대의 훈련에도 수많은 위기의 순간이 있었다. TF 공격 경로에 있는 교량을 미리 점령, 안전하게 확보하는 임무를 맡은 선점부대가 대항군의 공격으로 큰 손실을 입은 것도 그중 하나. 교량 확보 여부가 불투명해져 대대 지휘부가 초긴장 상태에 빠진 순간 너무도 반가운 보고가 올라왔다.

“참조점 O, 화력지원 요망.” 선점부대에서 단 1명만 살아남은 생존자가 화력지원을 요청해 왔다. 대대는 선점부대 생존자의 정확한 보고에 따라 포병 지원사격을 유도, 교량 점령을 방해하려는 대항군의 시도를 봉쇄했다. 이 같은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 생존자는 뜻밖에도 ‘이병’이었다.

실전에서 영웅이 탄생하듯이 실전 같은 과학화전투훈련에서도 영웅이 탄생한 것. 조재우 이병은 간부와 선임병사들이 전사한 위기의 순간, 침착하게 화력을 유도한 능력을 높이 평가받아 KCTC로부터 전투 영웅으로 표창을 받았다.

▲ 강한 훈련만이 강군의 길

조 이병은 결코 우연히 출현한 영웅이 아니었다. 이홍희 해병대사령관과 유낙준 해병대1사단장의 지도에 따라 해병대1사단 각급부대는 그동안 강도 높은 훈련을 실시해 왔다. 특히 훈련에 참가한 31대대장 윤창희(해사 43기) 중령은 피나는 사전 훈련을 통해 과학화전투훈련에 대비해 왔다.

윤 중령이 무엇보다 관심을 쏟은 것 중 하나는 통신망 유지. 윤 중령은 지휘관과 무전병이 전사했을 때 지휘체계나 통신망이 마비되지 않도록 다양한 대비 조치를 취해 왔다. “통신은 군의 신경”이라며 대대장이 직접 무전기를 등에 짊어지고 훈련하는 모습을 평소 대대 장병들에게 보여주기까지 했다.

전 장병이 무전기를 다룰 수 있도록 훈련했을 뿐만 아니라 지휘관 유고 시 지휘권 승계요령과 화력지원을 요청하는 방법 등을 철저하게 숙지했다. 백지(白紙) 전술 훈련을 통해 전술 이해력과 지형지물 식별능력을 향상시킨 것도 대대가 기울인 노력의 일부였다.

맨발 생활을 통해 발에 굳은살이 박히도록 하거나 야간훈련과 제대별 록드릴(Rock Drill) 등 전투력 향상을 위한 대대 훈련의 리스트는 끝이 없다. 조 이병은 그 같은 강한 훈련의 결과 탄생한 31대대의 준비된 전투영웅 중 한 명이었던 것.

▲ 과학화훈련의 의미

훈련에서 탁월한 성적을 거둔 해병대1사단31대대 장병들은 육군 KCTC의 훈련 시스템에 대해 ‘감동’과 ‘감사’라는 두 단어로 평가했다. 31대대장 윤 중령은 “훈련을 하기 전에는 과학화전투훈련의 과학화가 장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생각했는데 직접 훈련을 받고 보니 대항군과 통제요원들의 훈련 관리와 진행이 진정한 과학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감동의 찬사를 보냈다.

피아 전술에 정통할 뿐만 아니라 폭우가 쏟아지는 한여름 날씨 속에서도 안정적으로 훈련을 진행하는 육군 KCTC 대항군과 통제요원들이야말로 최상의 훈련여건을 보장하는 강군의 길잡이라는 것. 이어 윤 중령은 “KCTC가 거대한 육군을 단련하는 제철소라면 용광로 역할을 하는 것은 KCTC의 대항군”이라며 “진정 프로 같은 솜씨로 실전에 가장 가까운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뒷받침해 준 육군 KCTC에 감사를 표한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첫번째]폭우와 안개 속에 숨은 대항군 찾기:이번 훈련은 100mm에 가까운 폭우와 짙은 안개 속에서 실시돼 실전감을 더했다. 해병대1사단 31대대 병사가 야시 장비를 끼고 폭우와 안개 속에 숨은 대항군을 찾고 있다①. 마지막까지 분투했던 31대대 3중대 장병들②과 전사 판정을 받은 후 눈물을 흘리는 장병들의 표정③에서 승리에의 갈망이 느껴진다. 도로에 대전차지뢰를 정성스럽게 매설하는 병사④와 숲속에서 팬저파우스트 대전차 로켓으로 대항군 전차를 겨냥하는 해병대 병사⑤가 꿈꾸는 것은 오로지 승리다. 사진=육군과학화전투훈련단 제공

[두번째]K-200 장갑차와 함께 훈련 중:해병대1사단 31대대 장병들이 과학화전투훈련에 대비해 부대 주둔지 부근에서 K-200 장갑차와 함께 훈련 중이다. 사진=해병대 제공

[세번째]완전군장차림으로 출발:과학화전투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31대대 장병들이 완전 군장 차림으로 부대에서 출발하고 있다. 사진=해병대 제공

[네번째]훈련에 열중하는 장병들:31대대 장병들이 부대 주둔지 부근에서 훈련에 열중하고 있다. 사진=해병대 제공

2009.07.31 김병륜기자 lyuen@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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