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이 말하는 군인-해병대는 꿈을 이루는 ‘기회의 땅’

아홉 번째 이야기-김인수 중령·해병대1사단 보병대대장


#왜, 해병대를 지원했는가?
대부분의 해병들이 처음 받는 질문이 바로 “귀관은 왜 해병대를 지원했는가”다.

사실 이 질문은 해병대에 입대를 결정하는 순간부터 전역 후는 물론, 결혼을 해 부모가 된 후에도 자식들로부터도 받게 되는, 어떻게 보면 해병들이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 속에 담긴 의미는 세상에는 쉬운 길이 많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굳이 해병대라는 어려운 길을 선택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담겨 있다.

그래서인지는 모르지만 해병대는 이에 대한 답변을 “누구나 해병이 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해병대를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라는 공식적인 슬로건으로 만들어 표명하기도 한다. 많은 해병이 구구절절 자신들이 해병대를 선택하게 된 동기를 여러 가지로 이야기하는 것을 한 마디로 압축하라면 가장 적합한 대답이 아닐까 싶다.

#해병대 장교되기
해병대 장교가 되는 과정에는 몇 가지가 있다. 학군후보생(ROTC)이나 대학(군) 장학생, 사관후보생(학사장교), 해군사관학교 등이 있다. 나의 경우는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해병대를 지원한 경우다. 어떤 동기생들은 해병장교가 되기 위해 해군사관학교를 온 경우도 종종 있지만 나의 경우는 사관학교를 지원할 때만 해도 해병대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심지어 해병대를 선택할 때까지도 그랬다. 그래서인지 나의 해병대 선택 이유는 너무나 단순했던 것 같다. 해병대가 해군보다 훨씬 인간적인 정을 나누면서 생활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가장 큰 매력으로 다가왔다. 그래서 스스럼없이 해병대를 선택했고 이 선택은 지금까지 내 인생 중에서 가장 탁월한 선택 중의 하나로 자부하고 있다.

#좌충우돌 초임장교
임관 초기에는 대부분은 우쭐한 마음에 해병대의 상징인 팔각모와 빨간명찰이 달린 전투복을 입고 외출을 나갔다. 당시 외출에서 복귀한 동기생들은 저마다 초보 해병으로서 경험한 에피소드로 이야기꽃을 피우곤 했다. 그중에서도 가장 흔한 일들은 시내에서 택시를 탔다가 운전기사가 해병대 출신이어서 택시비를 받지 않아 공짜 택시를 탄 이야기.

어떤 경우에는 오히려 운전기사로부터 용돈을 받았던 일도 있었다. 또 많이 겪는 일 중 하나가 예비역 해병들로부터 음식이나 술 대접(?)을 받는 것. 임관 후였지만 여전히 교육을 받고 있을 당시 동기생 모두가 기합받은 일이 있었다.

나중에 확인한 결과 한 동기생이 고향에 갔다가 연세가 지긋하신 예비역 해병을 만났고 노해병의 만류에 못 이겨 막걸리를 한잔 마신 것이 탈이 나서 부대로 복귀하자마자 조용히 취침상태에 들어갔고 이것을 인지하지 못한 구대장이 동기생이 돌아오지 않았다고 동기생 전체에 기합을 준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아직도 동기생 사이에 전설로 내려오고 있다.

#꿈꾸던 소대장 시절
가장 기억에 남을 뿐만 아니라 가장 보람과 자부심을 느끼게 했던 시절이 바로 소대장 시절이다. 무엇이든지 열심히 하려고 노력했고 이로 인해 소대원들이 즐겁고 보람된 일이 많았지만 힘든 부분도 있었다.최전방 소대장으로 부임했을 때다. 소대병력뿐만 아니라 여러 장비요원과 상근예비역들도 함께 있는 소대여서 식구들이 많은 편이었다.

소대장이라고 해도 책임감을 제외하면 소대원들과 같은 나이의 철없는 청년에 불과한데 교육훈련·경계작전 등 많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소대원들의 모든 생활과 건강, 생명까지도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경험이 부족한 젊은 소대장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선임소대장은 문제 해병들이 많아 힘들 것이라고 했다.

어느 날 최고 선임 해병이 찾아와 몸이 좋지 않다며 근무에서 제외해 줄 것을 요청했다. 선임 해병의 상태가 위염 초기 증상으로 통증이 심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해 주고 상태가 나아질 때까지 근무 열외를 허락했다. 자정쯤 돼서 전방순찰에서 복귀해 생활관에 들어와 보니 그 선임 해병이 무장을 착용하고 생활관을 정리하면서 근무투입을 준비하는 후임 해병들을 도와주고 있었다.

근무에서 열외돼 후임들에게 미안하고 소대장에게 고마워 그냥 쉴 수만 없어 고생하는 후임들 뒷바라지를 하면서 소대장을 도와주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물론 이 선임 해병은 전역할 때까지 아주 모범적으로 소대장의 든든한 후원자가 됐다. 조그마한 관심이 문제 해병을 모범 해병으로 바꾸어 놓는다는 것을 체험할 수 있었다.

#해병대 10수생
“필승! 부대장님, 저 대청부대에서 근무하던 ○○○입니다. 혹시 저 알아보시겠습니까?”부대 목욕탕에서 젊은 해병이 인사를 하는데 어안이 벙벙했다. 대청부대장이 끝난 지 벌써 7년이 넘었는데, 이미 전역해야 할 대원이 여기서 뭐하고 있단 말인가? 병사로 전역하고 복학해 대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하다 다시 해병대 장교로 지원해 지금은 소대장을 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 이와 같이 병사로 전역했다 다시 장교로 지원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해병대에 느끼는 매력은 말로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다. 교육훈련단 신병대대장이었을 때의 일이다. 기수마다 해병대에 입소하기 위해 2~3수는 흔한 일이고 많게는 10수까지 해 지원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이럴 경우, 큰 하자가 없을 때는 정성(?)을 생각해서 합격시키는 경우도 있다. 이런 정신을 갖고 있다면 훌륭한 해병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해병대는?
이제 임관한 지 어느듯 20여 년이 흘렀고 대대장으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동안 누구나 그렇듯이 십수 차례의 이사도 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심각하게 고민한 적은 없었지만 이제 아이들 교육과 관련해 이사문제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개인적으로는 해병대에서 지원받아 위탁교육으로 대학원 과정을 마치는 혜택도 받았고 군사교육의 일환이지만 유학의 기회도 얻었다. 군은 국가를 위해 희생만 하는 곳이 아니라 개인의 꿈을 실현해 나가는 기회의 곳이기도 하다.

김인수 중령은
1988년 해군사관학교 졸업, 해병대 장교로 임관해 소·중대장을 거쳐 대청부대장, 신병교육대대장, 해군대학 교관, 한미연합사 기획참모부 전쟁기획장교를 역임, 현재 해병대1사단에서 보병대대장으로 있다.

2007.11.09 정리=이석종기자 seokjong@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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