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륙지원단 상륙지원대대 병장 심규현
대학교를 다니며 보통청년들과 다름없는 삶의 매너리즘에 빠져있던 어느날, 나는 젊은날의 내 자신을 변화시키기 한 강한 도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래서 실천하고 선택한 곳 바로 해. 병. 대.그러한 굳은 결심을 하고 입대한 후 난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화를 거듭하며 해병대 병장으로 서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우리 부대가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작전 임무를 수행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유해발굴 작전이 어떠한 임무인지 궁금해졌다.
주로 야지에서 발굴작전이 수행되는 관계로 3주간 숙영지를 편성하여 작전을 수행해야 하는 불편도 따르겠지만, 그 순간 난 몇 년전 영화로 본‘태극기 휘날리며’에서 6.25 전사자 유해발굴 장면이 떠올랐다.
나는 막연한 생각으로 영화장면을 떠올리며 잔잔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유해발굴 작전의 이미지를 그리며 마음의 준비를 했다.
4월 7일 어딘가에 묻혀있을 선배 전우들의 명복을 비는 개토식을 거행 후 본격적인 유해 발굴 작전이 시작되었다. 처음 접하는 작업이어서 다소 힘든 부분도 있었지만 국방부 유해 발굴단의 공조하에 우리 해병들은 서로 맡은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였다.
86세의 노구에 485M의 산 정상까지 올라와 증언을 해주시던 어르신, 경기도에서 밤 열차를 타고 와서 증언을 해주신 어르신, 불편한 몸으로 현장을 찾아와 당시 전투상황을 증언하시던 참전 용사 분들, 좋은 일이 라며 아낌없이 사유재산을 작업할 수 있게 협조해주신 분, 이렇듯 많은 분들의 협조와 도움이 있었다.
나는 산을 오르고 또 오르고 교통호를 파고 또 파면서 힘든 생각보다는 선배 전우들이 6.25전쟁 당시 목숨을 걸고서 이 길을 뛰어다녔다고 생각하니 손과 다리가 아프다고 마음속으로 투정부리는 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마침내 정확한 제보와 노력으로 참호를 파내려가기 1M... 무거운 철모를 쓰고 군화를 신고서 58년간을 어둠속에서 지내온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밝은 빛으로 모실 수 있게 되었다. 20여 년 넘게 살면서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는 사람의 뼈를 발견하게 되면 무척 당황할줄 알았는데 선배 전우들의 유해를 접하는 순간, 숙연함과 경건함을 가슴에 느끼며 현재 유해 발굴 작전을 수행하고 있는 내가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또한, 더욱 더 초연히 임무를 수행하리라는 작은 다짐도 해보았다.
발굴된 유해는 현장에서 중대장님 주관의 약식 제례로 모셔지고 임시 봉안소로 운구된 후 대대장님 주관의 임시 봉안식이 거행된다. 식이 거행되는 동안 의장대의 조총과 군악대의 연주에 우리 모두는 감격의 눈물이 맺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주야간으로 유해가 봉안된 임시 봉안소 근무를 서는 동안, 추위와 졸음을 참으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는 나 자신이 뿌듯해지기도 했다. 4월 29일 6.25전쟁 전사자 유해 15구에 대한 영결식을 마치고 현충원으로 떠나 는 선배 전우들의 유해 앞에 단장님을 비롯한 모두가 기립하여 존경의 경례를 올릴 때 우리 모두는 마음속깊이 다짐을 하였다.
마지막 한 구의 유해를 찾을 때까지 선배 전우들의 고귀한 희생정신을 잃지 않을 것을...
이런 고귀한 유해 발굴 작전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친 것에 대한 감사와 해병대에 입대한 자부심을 느끼며 큰소리로 외쳐본다.
“누구나 유해 발굴을 할 수 있다면 나는 결코 유해 발굴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