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념식에는 참전용사, 백경순 해병대 교육훈련단장 등 전·현직 해병대원과 주민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진동리 전투는 당시 전략적 요충지였던 마산, 진해를 지키고 낙동강 방어선을 튼튼히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50년 6·25 전쟁 발발 후 후퇴를 거듭하던 국군은 8월 들어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했고, 남하한 북한군 6사단은 진주, 사천, 고성을 거쳐 마산을 다음 공격목표로 삼았다.
마산을 못 지키면 낙동강 방어선이 무너질 위기에서 북한군 6사단 정찰대대는 마산 입구인 진동리까지 진출했다.
해병대는 8월 초 김성은 중령이 지휘하는 ‘김성은 부대’를 투입했다.
김성은 부대는 진동리에서 6사단 정찰대대에 기습공격을 가해 승리를 거둠으로써 1949년 4월 해병대 창설이래 최대 전공을 세웠다.
해병대 전사(戰史)에 따르면 이 공로로 전투에 참가한 부대 전 장병이 1계급 특진했다.
김성은 부대는 이어 미 육군 25사단을 중심으로 편성된 킨(kean) 특수임무부대가 반격에 나서는 동안 진동리 일대 보급로를 확보하고 주요 고지를 점령했다.
1992년 해병대 사령부는 이 전투를 기념하는 전첩비를 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