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 김동하기자 | 입력 2011.01.31 14:51 | 수정 2011.01.31 15:51

"해병대는 춥지 않습니다. 연평도 포격 도발 때처럼 북한이 언제 공격해 올지 모르기 때문에 설 연휴에도 긴장을 늦출 수 없습니다."지난 20일, 연일 영하 20도를 넘나드는 추위가 계속된 인천 옹진군 백령도. 이곳 서해 최북단 섬 백령도에 근무하는 해병 6여단 장병들은 코앞으로 다가온 설 연휴도 잊은 채 경계 근무에 여념이 없었다.바람 피할 곳 하나 없이 탁 트인 진촌리 해안 한가운데 위치한 초소에는 칼바람이 몰아쳤지만 방풍 안경과 방한화 등 방한 장비로 중무장한 해병대 장병들의 눈빛은 이글거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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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옹진군 백령도 북포리 군사우체국에서 설을 앞두고 전국 각지에서 배달된 소포를 해병대 병사들이 옮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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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천 옹진군 백령도 진촌해안 초소에서 해병 6여단 소속 초병이 쌍안경으로 북측 월래도에 정박한 경비정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백령도 = 곽성호기자

 

이날 해 질 무렵 진촌해안에는 해안을 따라 세워진 철책과 적 상륙을 제압하기 위한 용치(기계화부대의 진행을 방지하기 위한 방어시설) 수백개가 이빨을 드러내고 있었다. 경계 근무를 서던 이민재 일병은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때 해병대원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억제하기 힘들었다"며 "추위, 피로와의 싸움이 계속되지만 우리가 맡은 구역만큼은 결코 뚫리지 않겠다는 각오로 오늘도 초소에 나왔다"고 말했다.

이날 초소에서는 12㎞ 전방 북한 땅인 월래도 오른편에 아군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정박해 있는 북측 경비정을 육안으로도 볼 수 있었다. 초소 우측 방향으로는 북방한계선(NLL)을 따라 이동하는 중국 선박이 관측되기도 해 서해 최북단에 위치한 최전방 부대의 긴장감을 실감하게 했다.

잠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는 상황에서 24시간 북한의 도발에 대비해 해안 경계를 서는 해병대 장병들에게 설 명절이 그다지 특별날 것은 없었다. 백령도에서 두 번째 설을 맞는다는 곽태림 상병은 "해안 근무는 1분 1초의 공백도 없이 계속돼야 하기 때문에 명절보다 근무가 우선"이라며 "5월 초, 전역하는 그날까지 명절이든 주말이든 변함없이 임무를 완수하겠다"고 말했다.

백령도 주민의 대부분은 12월부터 이듬해 2월까지 인천이나 서울로 나가서 겨울을 보내고 돌아온다. 농한기인 데다 연평도 포격 도발로 관광객의 발길까지 끊겨 올해는 더욱 한산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해병 6여단 장병들은 북 연평도 포격 도발 이후 비상 상황으로 휴가도 밀린 상태에서 근무를 서고 있다.

백령도 해병 6여단 중에서도 해안 감시를 책임지는 분초 장병들은 주간조와 야간조로 나뉘어 근무를 서고 있다. 하루에 적게는 5~7시간을 나눠서 취침하며 24시간 근무 체제를 유지하기 때문에 늘 피곤이 엄습하지만 연평도 포격 도발을 겪으면서 '잠시의 나태함도 있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이 장병들의 뇌리 속에 더욱 선명해졌다.

상황병을 맡고 있는 제갈성호 상병은 "북 연평도 포격 도발 당시 긴급히 분초 대원들에게 상황을 전파했다"며 "그날 사태가 긴박하게 돌아가는 것을 보고 전쟁을 각오했었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입대 직후 연평도 포격 도발을 겪은 심재호 이병도 "해병이 된 지 얼마 안 돼 북한의 도발을 경험하면서 '내가 진짜 최전방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며 "지금도 어느 순간 북한이 도발할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해안 경계 근무를 서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긴장감 속에서 설 연휴의 들뜬 분위기를 찾아볼 순 없지만 병사들의 마음속은 어느 누구보다 가족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했다. 제갈 상병은 "연평도 포격 도발 때도 어머니께서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잠을 제대로 못 주무셨을 것 같다"며 "이번 설이 마침 제 생일이라 더욱 같이 보내고 싶으실 텐데 올해까지만 참아 달라"고 말했다. 백령도에서 가까운 인천이 고향인 손성현 일병은 "배를 타고 인천에 내리면 바로 집이지만 경계 근무 중인 만큼 명절이라고 특별히 찾아뵐 수 없다"며 "추운 날씨에 바깥에서 고생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하면 한겨울 바닷바람도 차갑지 않다"고 밝혔다. 분초 대원들을 책임지고 있는 김응균 중사는 "명절 때도 경계 근무로 특별히 기분을 내지는 못하지만 특식 등을 함께 나누며 가족에게 전화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고 말했다.

해병 6여단 장병들은 북한과 맞닿아 있는 극한 상황이지만 모두 해병이라는 자부심으로 불만 없이 경계 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이곳 대원들 모두 해병의 꿈을 안고 지원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해병대원이 됐기 때문이다.

백령도 = 김동하기자 kdhaha@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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