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일 새벽 3시쯤 경북 포항 남구 조항산에서 해병대교육훈련단 97차 수색전문교육 지옥주 훈련이 진행되는 가운데 교육생들이 80㎏에 이르는 고무보트(IBS)를 머리에 이고 가파른 경사를 오르고 있다.
“보트 배치 붙어! 보트 머리 위로!”
13일 새벽 3시 경북 포항 남구 조항산. 8명이 한 조를 이룬 교육생들이 80㎏에 이르는 고무보트(IBS)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채 가파른 경사를 힘겹게 오르고 있었다. 칠흑같이 어두운 밤 교관의 손전등 불빛 하나에 의지한 채 졸음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는 교육생들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악!” 완주할 수 있겠냐는 교관의 물음에 교육생들이 악에 찬 함성을 내질렀다. 이날 새벽 기온이 29도를 보인 열대야 현상에 습기까지 더해져 불쾌지수가 폭발했지만, 교육생들의 발걸음은 멈출 줄 몰랐다.
수색전문교육의 지옥주 훈련은 숨 가쁘게 이어졌다. 전날 밤 11시까지 진행된 해상 패들링 훈련 후 한 시간의 짧은 휴식을 가진 교육생들은 이날 자정 헤드 캐링(Head Carrying)으로 수색교육대에서 조항산을 오르는 고지정복훈련에 돌입했다.
수색교육대에서 10㎞ 떨어진 조항산은 250m 고지로 경사가 40~60도를 이루는 험난한 지형이다. 고무보트를 머리 위로 들어 올린 교육생들은 천근만근 내려앉는 눈꺼풀을 억지로 잡아보려 애쓰는 모습이었다.
경북 포항 남구 해병대수색교육대에서 97차 수색전문교육생들이 야간 패들링 훈련에 앞서 PT 체조를 하고 있다.
경사가 가파른 조항산은 그냥 걷기도 힘들었다. 습기 찬 공기 탓에 땀이 비 오듯 쏟아졌고 숨이 턱턱 막혀왔다. 허벅지에는 통증이 밀려왔다. 교육생들과 동행한 지 30분이 채 되지 않아 옷이 땀에 푹 젖어버렸다. 눈앞에서 80㎏에 이르는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산을 오르는 교육생들의 모습이 경이롭게 느껴졌다.
교육생들은 졸음과 사투를 벌이며 자신의 한계에 도전하고 있었다. 해병대6여단 수색중대에서 팀장으로 임무 수행하다가 이번 교육과정에 입소했다는 7번 교육생 김지우 하사는 “지옥주 훈련 중 쏟아지는 잠을 참는 게 가장 힘들다”며 “무더위와 졸음, 배고픔, 머리가 짓눌리는 고통으로 극한을 경험하고 있지만 흐려지는 정신을 부여잡고 팀원들과 호흡을 맞추며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훈련이 힘들지만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해병대 정신 하나로 견디고 있다”며 “남은 훈련을 모두 견뎌 해병대 소수정예 수색대원으로 거듭나고 싶다”고 덧붙였다.
교관들은 교육생들의 상태를 꼼꼼하게 살피며 훈련을 이끄느라 분주한 모습이었다. 특히 눈이 감기는 교육생이 있는지에 집중했다.
훈련교관 임찬영 하사는 “고지정복은 고무보트를 머리에 이고 좁은 산길을 오르는 훈련인 만큼 한 명만 졸아도 보트가 무게 중심을 잃고 뒤집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어 긴장감을 늦추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경북 포항 남구 도구해안에서 97차 수색전문교육생들이 고무보트(IBS)를 머리에 이고 오리걸음으로 전진하고 있다.
보트 간 1m의 간격을 유지하며 산길을 잘 오르는가 싶더니 한 보트가 살짝 비틀거렸다. 한 교육생이 잠시 졸아 무게 중심이 흔들린 것.
이를 놓치지 않은 박재홍(소령) 수색교육대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나 하나쯤이야’라는 생각이 가장 위험합니다. 내가 정신을 차리지 않고 약간의 요령을 피우려 한다면 바로 내 옆의 동료들이 위태로워지죠. 모두 한마음으로 힘을 모으지 않으면 80㎏의 고무보트를 머리 위로 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교육생들은 훈련을 지휘하는 박 소령의 지시에 따라 몸을 낮게 엎드린 자세로 보트를 등에 이고 다시 산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요하던 조항산 등산로에 교육생들의 신음이 흘러나왔다.
박 소령은 “지금 교육생들은 졸음뿐 아니라 자신의 한계와 싸우고 있다”며 “고지정복훈련에서는 한순간의 실수가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훈련에 다양한 변화를 줘 교육생들에게 경각심을 심어주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옥주 훈련은 교육생들이 유사시 중요한 침투자산인 고무보트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팀원들 간의 화합과 단결이 없다면 불가능하다”며 “교육생들은 이 훈련을 통해 서로 존중과 배려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교육생들은 고무보트의 무게에 머리가 짓눌리는 상황에서도 쏟아지는 졸음을 견디며 정상을 향해 한 걸음씩 발걸음을 옮겼다. 어느새 고무보트와 함께 조항산 정상에 우뚝 선 교육생들의 얼굴엔 대한민국 소수정예 해병대 수색대원만이 가질 수 있는 자부심으로 가득했다.
97차 수색전문교육 야간 패들링 훈련이 진행되는 가운데 교육생들이 몸을 고무보트에 밀착한 채 은밀하게 패들링하며 해상기동하고 있다.
1번 교육생 조경민 대위는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고지정복 훈련을 통해 팀원들과 서로 의지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며 “어떤 목표든 완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만큼, 앞으로 어떠한 임무가 주어지더라도 ‘안 되면 될 때까지’의 근성으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수색전문교육 97차 교육생들은 강인한 정신력 배양에 중점을 둔 지옥주 훈련을 거쳐 침투자산 운용법, 헬기 및 고속단정을 이용한 침투훈련 등의 육·해상 침투절차를 숙달한 뒤 오는 9월 11일 정예 수색요원으로 거듭나게 된다. 이번 교육 과정에는 총 47명이 입교했으나 이날까지 3명이 퇴소해 44명이 훈련에 임하고 있다.
퇴소는 교육생이 원하면 즉시 이뤄진다. 수색전문교육에는 2주간 진행되는 수색기초교육을 이수한 자 중 수색교육대 자체 수영 테스트와 체력검정을 통과한 자만이 입소할 수 있다. 해병대에서도 엄격한 절차를 거친 정예 장병이 입소하지만, 평균 퇴소율은 30%에 이를 정도로 훈련 강도가 높다.
해병대 특수수색대를 비롯한 수색부대에서 근무하는 장교, 부사관, 병 모두 완벽한 임무 수행을 위해서 반드시 이 교육을 수료해야 한다.
박 소령은 “교육 과정 중 교육생들이 퇴소할 때 가장 마음이 아프지만, 수색전문교육 과정에서는 실제 작전에 투입돼 즉시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정예 수색요원을 양성해야 하므로 강도 높은 훈련을 시행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포항에서 글=안승회/사진=이경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