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문 넘는 北 해안포 집중공격 제압할 장비 노후… 예산 적어 현대화 늑장
- 해병대 창설 60주년 르포  본지 김상진 기자, ‘북 위협’ 긴장 속의 백령도 제6여단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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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OP에서 한 해병이 북녘을 조망하며 북한군의 동태를 살피고 있다.
 

 [월간중앙] 지난 3월10일 낮 10시께, 서해상을 달리는 공기부양 여객선 데모크라시5호 조타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을 출발해 소청도·대청도를 거쳐 백령도까지 가는 이 배의 선장 박문일(53) 씨는 긴 한숨부터 내쉰다. “평소보다 승객이 100명 가량 줄었다. 돈으로 따지면 500만 원 가량 손해다. 이러다가는 기름값도 안 나오겠다.”

승객이 현저하게 준 이유는 연초부터 가중돼온 북한의 위협 때문이었다. 지난 1월17일, 북한 인민군 총참모부는 전면대결 태세에 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불법이라는 것. 3월3일부터는 한·미 합동 군사훈련인 ‘키 리졸브(Key Resolve)’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전투동원 태세를 갖췄다.

훈련이 시작된 3월9일 아침에는 일방적으로 군 통신선을 차단하고 개성공단을 잇는 남북 간 육로 통행을 중단시켰다. 하루 만에 통행이 재개되기는 했지만, 남북 간 긴장상태는 여전히 팽팽한 줄다리기와 같은 상황. 특히 언제 북한이 쏘아 올릴지 모르는 대포동 2호(북한은 인공위성 발사체인 ‘은하 2호’라 주장)의 움직임에 전 군이 바짝 긴장하고 있던 바로 그날 <월간중앙>은 우리나라 최북단 도서이자 해병대 제6여단(흑룡부대)이 주둔한 전략적 요충지 백령도로 향했다.

현 상황을 말하기라도 하는 듯, 해상에 이는 거친 백파(白波)로 인해 배는 예상보다 더디게 전진했다. 인천항을 떠난 지 약 5시간. 드디어 백령도에 도착했다. 제1사단과 제2사단 등 다른 해병 부대들과 달리 흑룡부대는 거의 언론에 노출되지 않았다. 최근 KBS 2TV의 예능프로그램 <1박2일>에 잠깐 속살을 드러낸 것이 예외라면 예외였다.

평시 언론은 궂은 바다 날씨와 불편한 교통편을 이유로 백령도를 외면해 왔다. 남북 간의 긴장이 고조되면 군 당국은 취재를 불허했다. 용기포 선착장에 내리자 바닷바람과 햇살에 그을린 해병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피와 땀을 상징한다는 붉은 바탕에 노란 글자의 명찰이 돋보였다.

이들 몇 명에게 최근 남북관계와 관련한 반응을 살폈다. 이내 ‘무슨 소리 하느냐’는 표정이 돌아왔다. 평소 자주 비상이 걸리고 하다 보니 별다른 느낌이 없다는 말이었다. 애인이나 친구·가족 등으로부터 걱정하는 전화가 걸려오지만 정작 해병들은 이렇다 할 동요를 하지 않는 듯했다.

낮 2시30분께, 흑룡부대장(군 보안상 접적지역 사령관 및 장병의 신상명세는 공개할 수 없음)을 만났다. 그의 반응 역시 마찬가지였다. 브리핑을 자청한 그의 말투에서는 여유로움마저 묻어 나왔다. 흑룡부대는 해병대의 축소판이라고 불릴 만했다. 타 해병 부대들과 마찬가지로 소속 병사들을 최정예 전사로 육성하고 있었다.

끊임없는 인적자원 개발 노력이 진행 중이었다. “이라크전 등 최근 벌어진 전투 사례들을 분석해 ‘실전적 사격훈련 프로그램’을 개발해 시행 중이다.” 흑룡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입사호 사격과 같은 정태적(靜態的) 사격술에 초점을 맞춘 기존 사격훈련으로는 실전상황에 제대로 대처할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운영 중인지 확인하기 위해 사격훈련이 한창인 현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대 단위 훈련을 하는 가운데 특이한 모습이 관찰됐다. 도보로 이동하던 한 분대 앞에 하나의 표적이 나타나자 최초 발견자가 거리 등을 보고해 전 분대원이 일제사격을 가했다. 관계자들의 전언처럼 일반 사격훈련과는 분명 다른 모습이었다. 멜빵 파지 방법에서 소총 조준 방법에 이르기까지 대원들은 동태적(動態的) 사격술을 익히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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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부대 병사들이 생활관 내 지식정보방에서 e-러닝을 하고 있다.

 

흑룡부대 ‘전사화 프로젝트’ 추진 중

실전사격훈련 프로그램은 모두 8단계로 구성돼 있다. 영점사격인 1단계와 사거리별 사격인 2단계는 기존의 사격 훈련 방식과 동일하다. 하지만 엄폐물 사격을 하는 3단계, 건물 내 근접전투 기술을 익히는 4단계, 기동 간 사격을 하는 5단계는 기존 사격술보다 실전성이 강하다. 6~8단계까지 적용되는 분대 교차사격, 분대 기동사격, 특수지형 사격은 개개인의 사격과 소부대 전술을 융합해 놓았다.

사격훈련뿐 아니라 소부대 전술훈련을 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훈련을 지켜보다 보니 한 가지 의문이 고개를 들었다. 실전에 가까운 소대단위 훈련이라고 하는데, 훈련에는 K-2 소총만 눈에 띄었다. 소총병과 소대 지원 화기수가 함께 어우러지는 실제 전투 상황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이에 대해 훈련 중이던 부대 대대장은 “사격훈련 프로그램은 계속 진화하고 있다”면서 “소대 지원 화기에 대한 실전 사격훈련은 물론 야간 사격훈련 및 시가지 전투에 특화한 훈련 프로그램도 개발 중”이라고 밝혔다.

진화를 거듭하는 흑룡부대의 창의적 인재 육성 프로그램은 사격훈련에 그치지 않았다. ‘흑룡전사 육성 프로젝트’라고 불리는 다목적 자기계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었다. 3월10일 낮 5시께, 모 대대의 생활관 내 지식정보방. 일과를 마친 병사들이 개인용 컴퓨터(PC) 앞에 앉아 온라인 동영상 강의를 시청하고 있었다.

상륙돌격형 두발만큼이나 전투적 자세로 ‘열공’하는 해병들. 이 역시 흑룡전사 육성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프로젝트의 1단계는 전투력 향상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병사들은 부대 전입 후 6개월 내에 전투사격·화생방능력·정신전력·전투체력 등 6개 과제를 숙달해야 한다. 한마디로 만능 전투원이 돼야 하는 셈이다.

이를 위해 신병들은 스스로 계획을 세워 땀을 흘린다. 일정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해병은 만족시킬 때까지 재교육을 받는다. 한 병사는 “어느 군대보다 명예를 소중히 여기는 곳이 해병대다. 동료들 앞에서 자존심을 구기는 일이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인적자원 대비 해안포 등 장비 노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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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부대는 대공 화력 중 하나인 KM-168 발칸포를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기준을 만족시킨 장병들에게는 ‘흑룡전사 인증서’가 주어진다. 이들은 임무수행 이후 남는 시간에는 자기계발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는다. e-러닝, 동아리활동, 스터디그룹 등을 통해 학점을 따거나 자격증을 준비할 수 있어 호응도가 꽤 높다고 한다. 해병대사령부의 한 관계자는 이 프로젝트가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평했다.

병사들의 전투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물론 젊은 시절 인생의 공백기를 최소화하기 때문이라는 말이었다. 또 병사들이 각종 기술자격증 등을 취득하면 국가경제적으로도 큰 이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창의적 발상으로 정예 용사를 육성하는 흑룡부대. 그러나 전투원으로서 부대원들의 능력을 100%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현대화하지 못한 장비 때문이었다. 3월11일 오전, 부대 곳곳에서 그 실정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먼저 북한지역을 향해 포진한 해안포. 400m 길이의 지하 갱도를 한참 오르다 보니 해안포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보기에도 꽤 오래돼 보였다. 병사들이 태어나기 훨씬 전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했다.

사용에는 문제가 없는 듯했다. 사격훈련도 열심이란다. 정비중대의 신기에 가까운 기술력과 잘 훈련한 해안포 운용병력 덕분이었다. 하지만 적의 상륙작전을 효과적으로 저지하기에는 힘에 부칠 것 같았다. 사거리가 짧을 뿐 아니라 전차포를 고정시켜 만든 탓에 적의 공격에 매우 취약할 것으로 보였다.

어둠 속에서 해상저격여단 병력을 태우고 고속으로 침투하는 적의 공기부양정 등을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일 터. 해안포의 현대화가 필요해 보였다. 유도무기의 도입을 검토해볼 만했다. 상륙작전 대응전력을 키워온 나라들은 한결같이 유도무기 개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그 중 참고할 만한 두 나라의 사례. 스웨덴은 AGM-114C 헬파이어를 라이선스 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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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룡부대 대원들이 소대 단위 ‘실전 사격훈련’을 하고 있다.
 

폭풍파편탄두를 장착해 상륙주정 공격용으로 만든 것이다. 이웃 일본은 사거리 4km의 79식(式) 대전차 미사일을 단거리 지대함 미사일로 운용하는 데 이어, 1996년부터는 다목적 유도탄 시스템을 해안방어에 투입했다. 광섬유를 이용한 적외선 화상유도 방식을 채택한 이 미사일의 사거리는 헬파이어와 같은 8km로 추정된다.

북한 제4군단 예하 해안포부대는 사거리 10㎞의 100㎜포와 사거리 20㎞의 76.2㎜포를 운영했다. 그러다 두 차례의 연평해전을 거치며 해안포를 122㎜ 곡사포와 130㎜ 직사포로 교체했고, 240㎜ 방사포 또는 다연장 로켓포 전력도 강화했다. 이에 따라 북한군은 북한 본토에서 최대 34㎞까지 타격 가능한 전력을 갖추게 됐다.

이로 인해 백령도 전역을 포함한 서해 북방5도는 비상시 100문이 넘는 북한군 해안포의 집중공격을 받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대응한 우리 측 장비는 K-9 자주포와 KH-179 견인포. 두 장비 모두 매우 빼어난 장비다. K-9의 최대 사거리는 40km에 달한다. KH-179는 사거리 연장탄을 이용할 경우 사정거리가 30km까지 늘어난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들의 배치가 충분하지 않다는 것. 흑룡부대의 포병전력은 북한의 해안포 전력에 비해 매우 심각한 수적 열세에 놓여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공화력이 있는 모 포대도 둘러봤다. 적기가 이륙 후 불과 2분 이내에 도달할 수 있는 백령도. 때문에 해병대는 막강한 대공 화력을 구축해 놓고 있었다.

KM-168 발칸포와 유럽 방산업체인 MBDA가 생산한 미스트랄 대공 미사일을 혼합 배치해 놓고 있었다. 최근 들어 레이더 성능과 야간사격 능력을 개량한 바 있다는 발칸포는 대공사격뿐 아니라 지상목표에 대한 사격에도 유용한 무기다. 적외선 유도 방식을 채택한 미스트랄은 미국의 스팅어와 함께 서방 측 휴대용 대공 미사일시장을 양분할 정도로 성능이 뛰어나다.

문제는 이들이 방공 진지에 고정식으로 배치돼 있다는 것. 대공 진지가 전시에 적의 최우선 타깃이라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흑룡부대의 발칸포 및 미스트랄은 적의 포격을 피하기 어려워 보였다. 물론 비상용 이동 진지를 구축해 놓고는 있다. 그러나 이 역시 진지 이탈에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든든함 & 안타까움 교차하는 국토방위 최전선

이러한 실정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방공포 및 대공 미사일의 자주화가 필요할 듯했다. ‘신궁’으로 명명된 K263A1 자주화 발칸포, K-30 자주대공포 ‘비호’, 대공 미사일 8기와 탐색·추적 레이더를 탑재한 ‘천마’ 등과 같은 육군의 자주화 방공 시스템이 도입돼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흑룡부대의 인력자원 개발 노력이 전력 상승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보유 장비의 현대화가 시급하다는 판단이었다. 3월11일 낮 1시께, 일정을 마치고 다시 뭍으로 향하는 길. 배 안에서 선잠을 자면서도 상념이 끊이지 않았다. 섬에 들어가기 전날, 해병대사령부에서 만난 한 미 해병대 예비역 중장의 말이 뇌리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대한민국 해병대는 최강의 전사들로 이뤄졌지만,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충분히 발현하지 못하고 있다.” 인적자원은 대단히 우수하지만 그들의 능력에 걸맞은 장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었다. 그렇지만 장비 현대화는 쉽지 않은 일이다. 우선 정치적 고려를 해야 한다. 장비 보강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우리가 신형 장비를 배치하면 북측도 전력을 강화할 것이다. 남북 간의 군비경쟁이 벌어지는 셈이다. 더 큰 우려는 국민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동요를 하게 할 수 있다는 것. 국민은 “대형 안보위기가 곧 닥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을 할지 모른다. 증권시장과 외환시장이 동요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더 심각한 문제는 예산이다.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의 집계에 따르면 우리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방비 비율은 이스라엘의 7.6%는 물론 미국의 4.0%보다 낮은 2.7% 선에 머무르고 있다. 선군정치(先軍政治)를 표방하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고, 4대 군사강국에 둘러싸인 나라라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다.

얼마 되지 않는 국방예산 중에서 해병대의 몫은 2.4%(2009년 현재 기준). 이런 상태로는 아무리 장비 현대화를 외쳐도 허공 속의 메아리로 머무를 수밖에 없다. 문제는 또 있다. ‘국방개혁 2020’의 초안에는 서북 도서에 배치한 해병대 병력을 감축한다는 계획이 상정돼 있다. 하지만 백령도 등은 현장에서 본 그대로 전략적 요충임이 틀림없다.

현재도 대단히 중요하고 중국 등 주변국과의 상황을 고려할 때 통일 이후에도 매우 중요한 이곳의 병력을 줄인다는 계획은 재고해야 하지 않을까? 흑룡부대장은 “소신에게는 아직 12척의 배가 남아있습니다”라는 명량해전 당시의 정신을 신조로 삼고 있다고 했다. 여건을 탓하기보다 주어진 전력으로 승리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였다. 든든한 다짐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안타까운 말이기도 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조국을 위해 헌신하는 해병들이 유사시 죽음으로 지켜야 하는 운명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은 과연 없을까? 든든함과 안타까움이 교차했던 백령도에서의 1박2일이었다. 김상진 월간중앙 기자 [kine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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