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한국 해군 초창기 내가 겪었거나, 보고 들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 시리즈의 본론이라 할 해병대 차례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먼 길을 돌아 온 느낌이다.
왜 해병대인가. 많은 군대 가운데 왜 하필이면 해병대인가. 이 말을 하고 싶어 나는 이 이야기를 시작했는지 모르겠다. 그만큼 나는 해병대를 아끼고 사랑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해병대의 ‘전매특허’인 상륙작전을 말하지 않고는 전쟁을 말할 수 없다.상륙작전은 까마득한 옛날에도 있었다. 기원전 55년 로마의 영웅 시저는 상륙작전의 명장이었다. 전 유럽과 아시아 대륙, 그리고 아프리카 북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획득한 전쟁들은 대부분 원정이었다. 그 원정전쟁은 대개 상륙작전으로부터 시작됐다.
기동작전 필요시 해병대 동원
상륙작전에 동원된 장수와 병사들은 평범한 장병이 아니었다. 그때와 장소에 맞는 특수한 기능과 용감성을 가진 장병들을 골라 작전에 참여시켰다는 것을 역사의 기록들은 말해주고 있다. 핵무기와 유도탄 전폭기 같은 대량살상 무기가 발달한 현대전에서도 국지전쟁과 재래식 전쟁 없이는 전쟁을 수행할 수 없다. 그런 전쟁이 존재하는 한 상륙작전은 필요하고, 따라서 해병대의 존재가치 역시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아니, 전술이 발달할수록 그 필요성은 점점 증대돼 온 것이 사실이다. 포격이나 공중폭격만으로는 목적을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해상을 통해 적진에 상륙, 기습적으로 교두보를 확보하는 기동성이 얼마나 중요한지, 근래의 전쟁에서도 증명되고 있다.근대 전쟁사를 일별하면, 제1차 세계대전까지의 상륙전은 소규모 전쟁과 폭동진압 등 민활한 기동작전이 필요할 때 주로 해병대가 동원됐다.
그러다가 제2차 세계대전 때부터 주로 미국이 전략적으로 상륙작전을 이용하고부터 현대전에서 빼놓을 수 없는 수단으로 자리 잡게 됐다.특히 태평양의 여러 섬 쟁탈전 양상을 띠었던 태평양전쟁에서 미국은 해병대의 용맹성을 이용해 상륙작전을 적절히 활용했다. 일본을 항복시킨 결정적인 수단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한 원폭이었다.
그러나 태평양의 여러 섬을 차례로 점령해 올라가면서, 마침내 일본 영토인 오키나와를 초토화시키지 않았다면 일본은 항복하지 않았을 것이다. 일본이 기습적으로 점령했던 남태평양의 여러 섬을 빼앗은 미국이 일본 본토 상륙작전을 계획하자 일본 군부가 공황상태에 빠졌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공포는 오키나와 전투에서 치명상을 입은 뒤로 극에 달했다.
가미카제 같은 인간폭탄 작전도 체계적인 상륙작전 앞에서는 무력하기만 했다. 먼 바다에서 공격목표에 대한 일제 함포사격이 시작된다. 동시에 함재기들이 벌떼처럼 날아가 내륙 깊숙이 융단폭격을 가한다. 그 뒤를 이어 해병대가 돌격상륙을 감행해 마감하는 식의 입체작전 앞에서, 옥쇄작전으로 응전한 일본군은 폭풍에 날리는 가랑잎 같았다.
인천상륙작전, 전쟁 양상 역전
유럽에서도 그랬다. 런던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독일이 이기지 못한 것은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 땅에 상륙한 독일군이 없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연합군은 큰 피해를 감수하고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감행, 독일군의 허를 찔렀다. 그것이 독일군에 치명상이 됐다.
6·25전쟁 초기 인천상륙작전이 형편없이 밀리기만 하던 전쟁 양상을 역전시킨 것은 우리가 경험한 그대로다. 그때 만일 그 작전이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 그런 가정은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근대적인 해병대의 탄생은 열강들이 아시아·아프리카에서 식민지 확보에 열을 올리던 17세기 서구에서였다. 미국에서는 1775년이 해병대 역사의 원년이었다.
<공정식 前해병대사령관 정리=문창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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