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대 이동용
2011.05.24 19:09

화랑무공훈장 - 공적 (이동용 해병중위)

조회 수 4563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공산군은 5월과 6월에 입은 손실을 보충하기에 광분하는 듯 하더니 8월 하순에 접어들어서는 일시적으로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자 고의로 회담을 방해하기 시작하여 끝내 결렬되는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미 해병 제1사단은 1951년 7월 18일 이래로 미 제10군단의 예비대로 계속 홍천부근에 배치되어 있으며, 해병 제1연대는 홍천 동북방 15㎞지점에 위치한 한계에서 1달 여에 걸쳐 도솔산전투의 후유증을 씻으며 자체교육에 정진하고 있었다. 8월 26일 미 해병 제1사단으로부터 '공격작전을 수행할 준비를 하라'는 준비명령을 받은 해병 제1연대는 즉각 출동태세에 들어갔다.


  당시 연대는 대부분 신병으로 재편되었지만, 그 동안 실시된 훈련으로 전투능력과 사기가 고양되어 있었다. 이리하여 연대는 8월 27일 23시를 기해 미 해병 제1사단과 함께 호우 속에 홍천지역을 출발하였는데, 그간 내린 호우로 소양강이 범람, 도로는 침수되고 교량은 유실된 곳이 많아 차량기동에 많은 지장이 뒤따랐다. 이런 악천후 속에서 해병대는 관대리-인제-원통을 잇는 70㎞의 험로를 철야로 기동한 끝에 28일 아침 인제 북쪽 21㎞지점에 위치한 평촌에 당도하였다.


  이 무렵 연대와 대치하게 된 적은 8월 하순부터 전선에 나타난 북한군 제2군단과 임무를 교대한 북한군 최강부대인 제3군단 예하의 제1사단 3연대로서 1,600여 명의 병력으로 월산령(月山嶺) 서북쪽 2㎞지점의 924고지와 1026고지 및 그 후방지구에 각 1개 대대를 배치하였는데, 그 병력은 대대 평균 500명이고 장비는 82㎜ 박격포 8문, 중기관총 6정, 경기관총 20정, 대전차총 6정을 보유한 것으로 판단되었다.


  적은 휴전회담 기간의 소강상태를 이용하여 산악지형의 이점을 교묘히 살려 화기진지를 종심 깊게 배치하고 지뢰를 매설하는 등 견고한 진지를 구축하여 도솔산전투에서 패배한 오명을 설욕하고자 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은 그들이 924고지를 소위 김일성 고지라 명명하고, 1026고지를 모택동 고지라 명명가지 해놓고, 이 고지를 사수하라고 강요한 것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었다.


8월 30일 평촌에 도착해 지휘소를 개설한 연대장 김대식(金大植) 대령은 즉시 다음과 같은 새로운 공격명령을 하달하였다.


  '① 연대는 8월 31일 06시를 기해 1026고지와 924고지를 공격 점령하려 한다. ② 제3대대는 924고지를 공격 점령하고, 제1대대의 전진을 지원하라. ③ 제1대대는 1026고지를 공격 점령하라. ④ 제2대대는 제1대대로부터 캔사스선의 방어임무를 인계받고 연대의 측후방을 방어하면서 운전동 일대에 대한 수색을 실시하라.'


  이러한 공격명령에 따라 8월 31일 06시를 기해 제1대대와 제3대대는 각각 목표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공격부대는 상호 긴밀한 협조 아래 전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공격부대는 적이 매설해 놓은 무수한 지뢰의 장애와 지형의 불리로 더 이상의 진격이 어렵게 되어 일단 공격을 중지하고 원위치로 철수하고 말았다.


다음날인 9월 1일 제1대대와 제3대대는 전날에 이어 각각 목표에 대한 공격을 재개하였다. 그러나 적은 아군의 공격부대가 목표에 가까이 접근할수록 치열한 포격과 자동화기의 집중사격으로 완강하게 저항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공격부대는 결사 돌진을 각오하고 각개 약진을 강행하여 목표로 육박해갔다. 제1대대 1중대는 적의 저항을 물리치면서 계속 전진하여 악전고투 끝에 김일성 고지라 명명된 924고지의 적진으로 돌입하여 마침내 이날 20시 30분에 이를 점령하였다. 이때 중대는 고지에 돌입한 80여 명의 병력으로 급편방어에 임했으나, 적은 곧 2개 중대병력으로 역습을 감행해왔다. 이에 중대는 부족한 병력과 불충분한 탄약에도 불구하고 결사고수하려 했으나 적은 다시 1개 대대병력으로 밀어닥쳤다. 이에 중대는 중과부적으로 끝내 고지 후방 50m지점까지 물러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연대는 제2대대에게 캔사스선의 방어임무를 미 해병 제5연대에 인계하고, 9월 2일 05시에 출발하여 755고지 부근으로 집결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예비대로 있던 제2대대는 다음날 행동을 개시해 월산령으로 전진, 제1대대와 제3대대가 924고지를 점령하자 제5중대와 제6중대를 924고지에 추진시켜 제3대대의 임무를 인수하고 1026고지에 대한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대대는 15시에 연대 공격명령에 따라 1026고지 전방 1㎞에 위치하고 있는 표고 980m의 고지를 중간목표로 설정하고, 이동용(李東用) 중위가 지휘하는 제5중대를 우측방, 박종무 중위의 제6중대를 좌측방으로 우회시켜 협공토록 하였다. 이날 야포와 박격포의 지원 아래 공격부대는 긴밀한 협조를 유지하면서 적의 지뢰지대를 통과해 적의 집중사격을 뚫고 전진을 거듭한 결과, 마침내 18시 30분에 중간목표인 980고지를 점령하였다. 여기서 제2대대장 김병호(金秉鎬) 소령은 사주방어를 강화하고 1026고지에 대한 최종 공격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이날 대대는 추진보급을 제대로 받지 못해 식량과 실탄이 모두 부족한 상태에 있었다.


  그런데 다음날인 9월 3일 03시 45분경, 전날 980고지를 잃은 70여 명의 적이 역습을 감행해왔다. 이에 대대는 실탄과 수류탄을 절약하면서 적을 격퇴하려 하였으나, 마침내 수류탄이 소진되어 대대는 육탄전으로 적을 격멸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제5중대장인 이동용 중위는 '나와 함께 백병전으로 적을 무찌를 용사가 있으면 이리 모여라!'하고 중대원을 향해 소리쳤다. 순식간에 30명의 대원들이 모여들었다. '이제 우리에게는 가지고 있는 수류탄도 얼마 없고 총탄도 없다. 그러나 전우들이 흘려가면서 탈취한 이 고지를 고수하기 위해서 우리는 희생정신과 해병의 끈질긴 투지력을 발휘하여 적과 싸워야 한다!'


  중대장 이동용 중위는 주위에 모여든 대원들의 전의를 고취하고 난 후 남아있는 수류탄과 실탄을 모아 대원들에게 분배한 다음, 적중으로 돌입하였다. 이동용 중위 이하 모든 대원들은 일제히 수류탄을 투척하면서 돌진하였다. 이처럼 아군의 수류탄이 여기 저기서 무섭게 작렬하자 적은 엎드린 채 기동을 하지 못했다.


이 순간 자리를 박차고 일어선 이동용 중위는 용감히 앞으로 뛰어나가면서 자동소총으로 무차별 사격을 가해나가자, 이에 당황한 적은 30여 구의 시체를 유기한 채 도주를 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이동용 중위의 희생정신과 감투정신에 의해서 중간목표인 980고지를 무사히 확보할 수 있었던 제2대대는 날이 밝은 뒤, 재보급을 받고 08시에 항공과 야포의 지원 아래 1026고지에 대한 공격을 개시하였다. 이에 2중 3중으로 된 적의 방어진지에서도 박격포 화력과 자동소총 지원 아래 완강히 저항하였다.


  그러나 대대는 효과적인 지원사격과 항공기의 지원 아래 전진을 계속하여 적진 100m 전방까지 접근하는데 성공하였다. 이처럼 위기에 직면한 적은 전 화력을 집중 발휘하여 최후의 발악을 하였다. 이에 대대장 김병호 소령은 이동용 중위가 지휘하는 제5중대를 전방으로 추진시켜 제7중대의 우측을 증강시켰지만, 적은 계속 수류탄과 기관총으로 아군의 접근을 저지하였다.


  이에 아군도 한동안 화력으로 응수를 하던 중 제5중대 2소대장 정창옥(鄭昌玉) 견습사관이 호 밖에서 탄약을 분반하고 있던 적병을 저격하고 난 후, 소대원 1명을 포복으로 적의 기관총 진지로 접근시킨 다음, 수류탄을 투척해 적의 기관총을 침묵시키는데 성공하였다.


  이 순간, 제5중대 1소대장 손진천(孫晉天) 소위는 그 누구보다도 먼저 '소대 돌격 앞으로!'라고 외치면서 소대를 지휘하며 적진으로 돌입했다. 그런데 적진 10m 전방까지 돌진하던 제1소대장 손진천 소위는 적이 투척한 수류탄에 맞아 스러지고 말았다. 그는 전신에 무려 50여 군데의 파편상을 입고도 후송을 거부하면서 '나는 저 고지를 점령하기 전에는 절대 물러날 수 없다!'고 외치면서 간신히 몸을 일으켜 유혈이 낭자한 오른 손을 높이 들어 고지를 가리키며 '제1소대 돌격 앞으로!'라고 명령을 내렸다. 용기를 얻은 소대원들은 필사의 돌격을 감행했으며, 이를 계기로 전 중대원들도 일제히 돌격을 감璿臼?백병전 끝에 적의 최후거점인 1026고지를 완전히 점령하였다.


  이와 같이 제5중대장 이동용 중위의 감투정신과 제1소대장 손진천 소위의 투철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1026고지를 탈환한 제2대대는 계속 적을 추격해 서북방 800m 지점에 위치한 1056고지를 다시 확보하였다. 이어 해병대는 924고지, 1026고지, 1056고지 일대에 견고한 방어진을 구축하고 방어에 돌입하였다. 이것이 바로 1951년 8월 31일부터 9월 3일까지 4일 동안 한국해병 제1연대가 승전으로 끝맺은 김일성 고지 및 모택동 고지 전투이다.


  1. 해병대 제4대 사령관 故 김성은 장군 유품 784점 기증

    <통영인터넷뉴스> 통영시가 건립 중에 있는 시립박물관과 해병대 통영상륙작전 기념관에 전시할 유물과 유품에 대한 기증협약식이 30일 통영시청 회의실에서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동진 통영시장, 천재생 시의회의장...
    Date2011.05.31 Category4대 김성은 Views6178
    Read More
  2. No Image

    화랑무공훈장 - 공적 (이동용 해병중위)

    개성에서 휴전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동안 공산군은 5월과 6월에 입은 손실을 보충하기에 광분하는 듯 하더니 8월 하순에 접어들어서는 일시적으로 그들의 목적이 달성되자 고의로 회담을 방해하기 시작하여 끝내 결렬...
    Date2011.05.24 Category11대 이동용 Views4563
    Read More
  3. 해군 주요지휘관회의 참석한 유낙준 해병대사령관

    유낙준 해병대사령관은 17일 계룡대 제1회의실에서 김성찬 참모총장 주관으로 개최된 해·육상부대 주요 지휘관회의에 참석했다. 이날 회의에는 작전사령관·해병대사령관를 비롯해 전단·여단급 이상 지휘관, 그리고 해...
    Date2011.05.17 Category30대 유낙준 Views4771
    Read More
  4. 김명환 24대 해병대사령관 연평부대방문

    김명환 전24대 해병대사령관이 연평부대를 방문했다. 김명환 전 해병대사령관은 자신이 다니는 교회인 강남영동중앙교회에서 지난해 연평포격사건 이후 해병대 연평부대를 위문방문하자는 교우들의 뜻에 따라 4월 26...
    Date2011.05.03 Category24대 김명환 Views6305
    Read More
  5. 천자봉과 해병대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44

    진해만을 병풍처럼 둘러싼 장복산 줄기 동남쪽 끝에 천자봉이라는 봉우리가 있다. 천자봉은 높이가 500m 정도지만 그와 연해 있는 시루봉(웅산)은 693.8m나 된다. 밑에서 보면 평범해 보이지만 가파르고 돌과 바위가 ...
    Date2011.04.24 Category6대 공정식 Views7124
    Read More
  6. 해병대창설비화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39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 해병대 창설의 직접적인 계기는 여순 사건 당시 나의 작전 경과보고에서 비롯됐다. 육상에서 일어난 반란을 바다에서 뻔히 보고도 아무 손을 쓸 수 없었던 안타까움 때문에 나는 해군본부에...
    Date2011.04.24 Category6대 공정식 Views7420
    Read More
  7.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38-해병대 편에 들어가면서

    지금까지의 이야기는 한국 해군 초창기 내가 겪었거나, 보고 들은 것이다. 이제부터는 이 시리즈의 본론이라 할 해병대 차례다. 이 이야기를 하려고 먼 길을 돌아 온 느낌이다. 왜 해병대인가. 많은 군대 가운데 왜 ...
    Date2011.04.24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570
    Read More
  8.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32- 여자 의용군

    우리나라 여자군인 역사는 1948년 8월 간호장교 후보생 교육으로부터 시작된다. 그러나 일반 여자군인으로 범위를 좁혀 보면 6·25전쟁 발발 후 해군·해병대에 지원 입대한 여자 의용군이 그 출발이었다. 50년 8월 31...
    Date2011.04.24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548
    Read More
  9.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24- 대한해협 해전

    전투함 백두산은 귀로에 하와이 호놀룰루에 오래 정박했다. 이름만 전투함이지 이 배에는 아직 함포도 레이더도 장착되지 않았 다. 손원일 제독은 하와이에서 완전한 전투함 모습을 갖출 생각이었다. 하와이 교민들로...
    Date2011.04.24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606
    Read More
  10.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21-아아! 전함 백두산

    해군은 전투함을 가져야 진정한 해군이다. 전투 수단을 갖지 못한 군대를 어찌 군대라 하겠는가. 건국 초기 해군의 가장 큰 염원이 전투함이었음은 말할 나위 없다. 나는 영광스럽게도 미국에 출장가서 한국 해군 최...
    Date2011.04.24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962
    Read More
  11. 눈물의 연평도

    눈물의 연평도 임종린 제20대 해병대사령관 임종린 제20대 해병대사령관
    Date2011.04.23 Category20대 임종린 Views3854
    Read More
  12. 해병대창설 62주년 추념 - 임종린

    임종린 제20대 해병대사령관 우리마음 속에는 빨간 명찰에 새긴 추억의 그림자가 꿈처럼 되 뇌 인다 아침마다 입었던 푸른 유니폼과 가슴에 새겨진 빨간 명찰에서 언제나 가치 있는 삶과 죽음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
    Date2011.04.23 Category20대 임종린 Views3789
    Read More
  13. 제적봉 평화전망대 전설을 만나다

    제적봉 이름 명명한 공정식 제 6대 해병대 사령관, 강화 평화전망대 방문 지난 1966년 6월 27일 제적봉이라는 이름을 명명한 공정식 제 6대 해병대 사령관이 18일 강화도 평화전망대 현판식에 참석했다. 또한 공사령...
    Date2011.04.21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900
    Read More
  14. 22대 전 해병대 사령관 전도봉 KDN사장 ‘천국의 눈물’ 극찬

    [아츠뉴스 뷰티스타 박진영 기자] 지난 22일(화) 저녁 8시 뮤지컬 ‘천국의 눈물’을 베트남 전쟁 당시 청룡부대 2대대 5중대 1소대장을 지냈던 현 한전 KDN전도봉사장 (전 해병된 사령관)과 베트남 참전용사 부부 30여...
    Date2011.02.28 Category22대 전도봉 Views7203
    Read More
  15. 전도봉 前 해병대 사령관 "뮤지컬 '천국의 눈물' 내 이야기"

    아이돌 그룹 JYJ의 멤버 시아준수가 출연하고, 국내외 스태프들이 참여한 뮤지컬 '천국의 눈물' 관람 후기가 화제다. 테마가 있는 뉴스Why뉴스최승진 포인트 뉴스석해균 선장 몸에서 해군탄 추가 발견'매화그림 앞에 ...
    Date2011.02.25 Category22대 전도봉 Views8207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16 Next
/ 16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