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지방 출장길에 점심을 먹기 위해 어느 식당에 들렀을 때의 일이다. 메뉴판에 있는 찌개를 주문하고 고개를 들어보니 요즘은 좀체 보기 어려운 '손님은 왕이다'라는 문구가 벽에 걸려 있었다. 문구대로라면 임금님이 먹던 수라상이 나와야 하는데 주문하지도 않은 수라상이 나올 리는 만무했고,주문한 대로 보글보글 끓는 찌개와 윤기 흐르는 밥,정갈한 반찬이 나와 맛있게 먹은 적이 있다.
한때 많은 식당에 걸려있던 '손님은 왕이다'를 조금 고급스럽게 경영 용어로 바꾸어 말하면 '고객만족 경영'이 될 것이다. 어떤 회사에서는 고객의 소중함을 일깨우기 위해 왕을 넘어서 '고객은 황제'라고 했는가 하면,세계적으로 유명한 한 일본 회사는 '고객은 신이다'라고 했다. 게다가 고객은 '항상 옳다,외국인이다,아내이다,최종 결재권자다'라는 말까지 있으며,이제는 고객이 만족하는 수준을 넘어서 고객감동,고객졸도 경영이라는 표현도 너무 많아 식상한 세상이 되었다.
고객만족에 대해 무엇이라고 부르든 고객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는 것은 분명하다. 17년 전 제1해병사단장으로 부임했을 때 제일 고민했던 것이 국민에게 사랑받으면서 젊은이들이 오고 싶어하는 해병대를 만드는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자식들이 해병대에 가겠다고 하면 부모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힘들다고 소문난 해병대에 자식을 보내고 싶지 않았던 데다 휴가 나와 술집에서 행패를 부리는 등 해병대의 이미지도 좋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올바르고 모범적인 젊은이들로 만들기 위해 가장 먼저 한 일은 지휘관서신 등을 통해 올바른 인간이 되기 위한 마음가짐과 행동에 대한 교육이었다. 장차 사회생활에 필요한 자격증도 취득할 수 있도록 외부 강사까지 부대 안으로 불러 각종 기술을 익히도록 했다. 효과는 금방 나타났다. 휴가를 다녀온 해병들이 하나같이 싱글벙글했는데,이유인즉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한 '사람이 되었다'는 칭찬을 들었다는 것이다. 군대에 가서 제대로 된 사람으로 거듭난 자식들을 본 부모들은 자연히 해병대를 좋아하게 됐고,진정한 해병으로 거듭난 젊은이들은 영원한 해병이 되어 해병대를 사랑하게 됐다.
지금도 해병대 지원율이 3 대 1에 이르고 인기 배우인 '차도남' 현빈씨도 해병대에 지원했다는 것을 보면 국민과 해병을 고객으로 설정하고 변화시킨 것은 잘한 일인 것 같다.
회사의 직원도 고객이고 제품과 서비스를 구매하는 손님도 모두 소중한 고객이다. 고객 스스로가 왕인지 모르더라도 그들의 기대와 상상을 넘어서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서비스를 제공하자.진심을 다해 서비스를 제공해도 고객은 귀에 거슬리는 직언을 듣는 왕처럼 일시적으로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말뿐인 고객만족의 수라상보다는 정성을 다한 맛있는 찌개를 드려야 한다. 그래야 고객의 마음을 얻고 신뢰를 받을 수 있다.
전도봉 한전KDN 사장 ceo@kdn.com [한국경제신문] 2011년 01월 16일(일) 오후 05:09
22대 전도봉
2011.01.16 22:15
정성 담긴 찌개 한 그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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