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고를 개조한 낡고 좁은 교실, 옷도 신발도 모자도 모두 일본이 남기고 간 것을 활용하는 초라한 사관학교였다.
그러나 가르치고 배우는 열성만은 대단했다. 1946년 6월 15일 해방병단이 조선해안경비대로 바뀌고, 학교 이름도 해안경비대사관학교로 바뀌면서 생도들은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됐다.
교수진은 일반 교수들과 현역 교관들로 구성됐다. 일반 교수는 해양대학 같은 일반 대학 교수들이 초빙됐고, 현역 교관단은 주로 해방병단 창설자들과 미군장교들이었다. 한동안 교장을 겸임했던 손원일 제독과 2대 교장을 역임한 김일병 부위(중위) 수업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입학 전부터 손제독이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하던 생도들은 첫 시간부터 그의 마력에 빠져들었다. 별 볼일 없는 사람이면 때려치울 생각으로 손제독을 시험하려는 심보를 가진 생도들도 마음을 고쳐먹게 됐다.
가르치고 배우는 열성 대단
그의 담당과목은 항해술이었다. 잘 생기고 체격 좋은 30대 신사가 영어원서 교재를 펴 놓고 자기나침의(Magnetic compass)를 설명하기 시작하자 교실 안은 물을 뿌린 듯 조용해졌다. 유창한 영어발음에 우렁찬 목소리까지, 흠잡을 데 없는 명강이었다.
김교장은 중국의 명문 난징(南京)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한 사람이다. 지린(吉林)성 제일사범학교 교사 경력을 가진 그의 영어실력은 경쟁자가 없을 정도라고 했다.
또 한 사람 잊지 못할 분은 음악 담당 홍은혜 여사였다. 눈부시게 아름답고, 목소리도 곱고, 품위 있는 젊은 여인이 군대사회 안에 존재한다는 것, 그 한 가지만으로도 홍여사의 존재는 파격이었다. 그런데 그가 손제독의 부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진 뒤로 홍여사는 단번에 생도들의 선생님이고, 누나이고, 이모·고모가 됐다.
홍여사는 무보직 교사였다. 이화여전(이화여대 전신)에서 음악을 공부한 그는 교양과목인 음악과목을 전담하고 있었는데 손제독이 정식 발령을 내 주지 않아 공식적으로는 적이 없는 교수였다.
군가 '바다로 가자' 완성
“여보, 저 생도들이 부르는 노래는 일본 곡 아닌가요?”어느 날 통제부 관사 창을 열고 생도들 행군을 바라보던 홍여사가 손제독에게 이렇게 물었다. 왜 아니겠는가. 일본군가 곡에 조선해안경비대가로 가사만 갈아 끼운 노래였다. 껍데기는 다 일본 것이던 시대에 노래라고 왜 일본 것이 아니겠는가.
아내의 말을 듣고 비로소 정신이 든 손제독은 그 길로 우리 군가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된다. 스스로 가사를 지어 아내에게 곡을 부탁할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만들어진 첫 해군군가가 지금도 널리 불리는 ‘바다로 가자’다.
(1절) 우리들은 이 바다 위에 이 몸과 맘을 다 바쳤나니
바다의 용사들아 돛달고 나가자 오대양 저 끝까지
(후렴) 나가자 푸른 바다로 우리의 사명은 여길세
지키자 이 바다 생명을 다하여
지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젊은 날 내 몸속에 끓던 피가 다시 솟구쳐 오르는 기분을 느낀다. 가사도 곡도 이보다 더 적절하게 해군을 표현한 노래는 없을 것이다.해군사관학교 교가도 홍여사 작품이다. 47년 김교장이 노산 이은상 시인에게 작사를 의뢰한 사실을 알고 홍여사는 마산 친정 나들이를 핑계로 바닷가를 찾아가 악상을 다듬어 작곡했다는 일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6대 공정식
2011.01.28 01:46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4-열악했던 해사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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