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4606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게시글 수정 내역 댓글로 가기 첨부

 

5-3.jpg 초창기 해군사관학교 교과목은 지금의 이학사 과정에 비춰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국어·영어·국사·대수·물리 같은 교양 공통과목에, 군사·통신·항해·기관·군법·지정학·해병학 같은 전문과목도 공통 필수과목이었다.

병과(항해)·기관과·통신과 등 3개 학과별로 이수과목이 각각 달랐으며, 여러 가지 스포츠를 통해 체력단련과 협동정신을 연마했다. 연극반·문학반·악기반까지 둬 정서교육에 신경을 썼으니 교육자로서의 손원일 제독의 면모를 짐작할 만하지 않은가.

원칙과 질서를 존중하는 해군사관학교 교풍이 미 군정장관 청탁을 물리친 일화는 지금 회상해 봐도 통쾌하다. 정부와 다른 기관 단체들이 모두 그랬다면 한국은 지금쯤 존경받는 선진국이 돼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임관 후 모교에 근무할 때 겪은 일이지만 너무 자랑스러워 여기에 인용한다.

美 청탁 거부한 해군 신화 이어져

1947년 11월 군정장관 러치 장군이 지병으로 임종하면서, 수하의 한국 청년을 해군사관학교에 입학하게 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며칠 뒤 통위부(군정청 시대 국방부) 고문 테릴 프라이스 대령이 학교에 찾아와 김일병 교장에게 그 뜻을 전했다.“중도에 생도를 받을 수 없으니 내년에 다시 오시면 어떻겠습니까.”

김교장의 완곡한 거절에 머쓱했던 프라이스 대령은 며칠 뒤 다시 찾아와 같은 얘기를 꺼냈다. 그러자 김교장은 말없이 자신의 책상 위에 모자를 올려놓았다.“먼저 나를 해임하고 그 학생을 넣든지 아니면 내년에 입학시험을 쳐 들어오게 하든지 양자택일하기 바랍니다.”한동안 말이 없던 프라이스 대령이 나지막하게 말했다.

“한국 해군사관학교가 이런 곳인 줄 미처 몰랐습니다. 미안하게 됐습니다.”이런 경위로 군정장관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 해군사관학교 신화가 이루어졌다. 군정장관이란 45년 광복의 날부터 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날까지 3년 동안 한국의 행정을 대행한 임시정부 수반이었다. 지금의 대통령에 못지않은 권력을 휘두른 권력자의 청탁을 보기 좋게 물리친 쾌거였다.

구축함 실습, 손제독 배려 덕분

우리가 재학 중 미 해군 구축함에서 실습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실제를 즉시 몸에 익히게 된 것도 손제독의 원려와 배려 덕분이었다. 우리는 46년 8월부터 미 해군 구축함에서 실습을 하게 됐다.태평양 전쟁이 끝난 직후여서 미 해군은 그때까지 한국 해역에 머무르면서 38선 이남 해역을 경비 중이었는데 손제독이 이 틈을 이용한 것이다. 미 해군으로서도 유능한 보조원과 통역요원의 승선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가 부산항에서 조별로 배정된 구축함에 올랐을 때 일제히 소동이 벌어졌다. 우리가 신고 있던 일본군 군화 바닥에 박혀 있던 쇠못(징)이 문제였다. 날카로운 쇳소리의 출처가 우리의 군화라는 것을 알게 된 미군 장병들은 기겁을 했다. 갑판 바닥의 페인트가 벗겨지는 것은 물론 날카로운 금속성 소음 공해도 견디기 어려웠을 것이다.

“싯다운! 에브리 코리언 싯다운!”그들은 우리를 모두 앉히고 어디선가 펜치 같은 공구를 들고 나왔다. 당장 구두 징을 뽑으라는 것이었다. 대한민국 대표 신사라는 자부심으로 목에 힘이 들어가 있던 생도들이 갑판 바닥에 주저앉아 구두 징을 뽑아내느라 땀을 흘리던 기억은 다시 되살리기 싫은 악몽이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1.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3- 이승만-장제스 회담

    이승만 대통령과 장제스 자유중국 국민당 총재 간의 정상회담이 끝난 7일 오후 6시, 손원일 제독은 집 주인 자격으로 간단한 칵테일파티를 열었다. 칵테일과 음료를 나누며 무더위도 식히고 가벼운 환담하는 자리가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403
    Read More
  2.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2- 장 총통 환영 파티

    “오늘 귀국의 현명하신 영수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 지난날의 정을 나누게 된 것을 평생의 가장 유쾌한 일로 생각합니다.” 의장대를 사열한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진해 통제부 안에 마련된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154
    Read More
  3.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1- 이승만-장제스 회담

    초창기 해군은 외교 업무까지 담당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절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해군을 정상회담 경호·경비와 영접에 해군을 동원했던 것이...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637
    Read More
  4.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0- 창군 초기 대통령의 국군 순서

    지금 국군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은 ‘육·해·공’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창군 초기 대통령이 입만 열면 ‘해·육·공’이라고 말해 육군의 신경을 자극했던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석에서는 물론 공식석상에서도...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044
    Read More
  5.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9- 배고픈 사관생도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것은 배고픈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배고픈 것과 군대에서 배곯는 것은 다르다. 1970년대 이전에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 서러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라...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583
    Read More
  6.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8- 해사 교가탄생 일화

    교가가 있어야겠다. 사관생도들을 하나로 묶어 세울 멋진 노래가 있어야 하겠다.손원일 제독의 바통을 받아 제2대 해군사관학교 교장에 취임한 김일병 중위는 생도들에게 애교심을 불어 넣어 줄 교가의 필요성을 절감...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435
    Read More
  7.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7-해군장교 임관

    우리 1기생은 구축함 실습 중 임관돼 임관기념 사진이 없다. 졸업식도 2기생 입교식 날 더부살이처럼 가졌다. 60년이 넘은 해군사관학교 역사상 이런 일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럴 만한 사유가 있었기 때...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907
    Read More
  8.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6-구축함 실습시절

    구축함 실습생활에서 잊혀지지 않을 부끄러운 일은 배멀미에 시달린 기억이다. 바다 사나이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난리를 쳤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겁다. 그러나 어쩌랴. 익숙하...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309
    Read More
  9.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5-해사시절

    초창기 해군사관학교 교과목은 지금의 이학사 과정에 비춰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국어·영어·국사·대수·물리 같은 교양 공통과목에, 군사·통신·항해·기관·군법·지정학·해병학 같은 전문과목도 공통 필수과목이...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606
    Read More
  10.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4-열악했던 해사시절

    창고를 개조한 낡고 좁은 교실, 옷도 신발도 모자도 모두 일본이 남기고 간 것을 활용하는 초라한 사관학교였다. 그러나 가르치고 배우는 열성만은 대단했다. 1946년 6월 15일 해방병단이 조선해안경비대로 바뀌고,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255
    Read More
  11.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3-해군사관학교 시절

    이해를 돕기 위해 ‘해방병단’이니 ‘해군병학교’니 하는 낯선 명칭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둬야 하겠다. 해방병단이란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손원일 제독이 광복 후 주머니를 털어 만든 사설군사단체였다. 이것이 ...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410
    Read More
  12.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2-해군과의 인연

    내가 해군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순전히 지역적 영향이다. 군항도시 진해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닌 탓에 자연히 해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192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마산 공립상업학교를 나왔다. 마산...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732
    Read More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