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축함 실습생활에서 잊혀지지 않을 부끄러운 일은 배멀미에 시달린 기억이다. 바다 사나이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난리를 쳤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겁다.
그러나 어쩌랴.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 처하면 예기치 않은 반응을 일으키는 것이 사람 몸의 생리가 아닌가. 연안을 항해할 때는 배가 파도에 흔들리는 것이 재미있기도 했다. 그러나 큰 바다에 나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배멀미 시달리다 완전 탈진
좌우로 흔들리는 롤링(Rolling)과 아래위로 흔들리는 피칭(Pitching)이 동시에 일어나면 처음 겪는 사람은 예외 없이 주저앉게 된다. 어지럼증을 견디지 못해 난간을 붙잡고 이겨보려고 애쓰다가 속에 있는 것을 다 내놓게 되면 완전히 탈진하게 된다.생지옥이 따로 없다. 한 순간만이라도 그 괴로운 어지럼증에서 벗어 나고 싶어진다.
“저기, 저기에 좀 내려주세요.”동기생 몇 명이 선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바위섬을 가리키며 미군 장교에게 애원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콧방귀였다. 어디 한번 당해보라는 듯이.뱃속이 완전히 비어 허기에 지쳤는데도 식사를 할 수가 없었다. 들큼한 빵과 닝닝한 스프는 쳐다보기도 싫었다. 머릿속에는 오직 고추장과 김치 국물만 어른거렸다.
그러나 그런 게 있을 수 없다. 배안은 작은 미국이었다. 매점이 있어 응급 약이라도 사 먹어 봤으면 했지만, 수중엔 달러가 한 푼도 없었다.울렁이는 속을 비우려고 화장실에 들어가 봐도 허사였다. 양변기에 익숙하지 않아 일을 보아도 개운하지가 않았다.
그렇게 한 차례 호된 ‘신고의식’을 치르고 나서부터는 누구나 고추장 같은 비상식품을 숨겨 배를 타게 된다. 그게 늘 말썽이었다.사물함 깊숙이 숨겨 두고 필요할 때 조금씩 꺼내 먹으며 속을 달래는 것까지는 좋다. 그런데 날씨가 더워지면서 냄새가 진동하기 시작한 것이다.
함상실습 금방 터득 모두 놀라
고개를 갸웃거리던 함장은 부하들에게 우리 생도들 주머니를 뒤지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주머니 속에 그걸 넣고 다닐 사람은 없었다. 의심스러운 물건이 발견되지 않자 미군 장교들은 우리의 옷을 모두 벗기고 샅샅이 뒤졌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미군이 아니었다. 그들도 고약한 냄새를 참기 어려웠을 것이다. 우리가 모르는 사이 침실을 모두 뒤진 끝에 사물함 깊숙이, 또는 백 속에 감춰 뒀던 고추장 항아리를 찾아내고야 말았다. 그것들은 모두 압수돼 바다에 버려졌다. 아깝지만 규칙이 그러니 도리 없는 일이었다.
어깨가 으쓱해지는 자랑스러운 순간도 있었다. 1946년 12월 어느 날이었다. 구축함이 잠시 부산항에 입항한 틈을 타 손원일 제독이 감사의 인사를 하려고 배에 올랐다. 손제독을 반가이 맞은 함장은 뜻밖에 우리를 칭찬했다는 것이다.
“한국 사관생도들은 배우려는 열의가 대단합니다. 우리가 몇 년을 두고 익힌 것을 한국 생도들은 몇 달 사이에 터득해 버렸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그러면서 그는 “웰 던, 웰 던!”(Well done, Well done)을 연발하더라는 것이다.
그 소문은 모든 구축함에 쫙 퍼졌다. 그때부터는 우리를 대하는 미군 장병의 태도도 달라보였다. 조함이나 함 운영 실기를 빨리 익혀 한 사람의 장교 몫을 하게 된 것에 감명을 받은 모양이었다. 사실 우리는 실기뿐만 아니라 수많은 함정용어와 작전 이론, 그리고 영어회화에 이르기까지 임관 후 닥치게 될 실제에 대비하려는 생각으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6대 공정식
2011.01.28 01:50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6-구축함 실습시절
조회 수 4309 댓글 0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3- 이승만-장제스 회담
이승만 대통령과 장제스 자유중국 국민당 총재 간의 정상회담이 끝난 7일 오후 6시, 손원일 제독은 집 주인 자격으로 간단한 칵테일파티를 열었다. 칵테일과 음료를 나누며 무더위도 식히고 가벼운 환담하는 자리가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405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2- 장 총통 환영 파티
“오늘 귀국의 현명하신 영수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 지난날의 정을 나누게 된 것을 평생의 가장 유쾌한 일로 생각합니다.” 의장대를 사열한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진해 통제부 안에 마련된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155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1- 이승만-장제스 회담
초창기 해군은 외교 업무까지 담당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절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해군을 정상회담 경호·경비와 영접에 해군을 동원했던 것이...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638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0- 창군 초기 대통령의 국군 순서
지금 국군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은 ‘육·해·공’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창군 초기 대통령이 입만 열면 ‘해·육·공’이라고 말해 육군의 신경을 자극했던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석에서는 물론 공식석상에서도...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046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9- 배고픈 사관생도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것은 배고픈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배고픈 것과 군대에서 배곯는 것은 다르다. 1970년대 이전에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 서러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라...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586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8- 해사 교가탄생 일화
교가가 있어야겠다. 사관생도들을 하나로 묶어 세울 멋진 노래가 있어야 하겠다.손원일 제독의 바통을 받아 제2대 해군사관학교 교장에 취임한 김일병 중위는 생도들에게 애교심을 불어 넣어 줄 교가의 필요성을 절감...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438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7-해군장교 임관
우리 1기생은 구축함 실습 중 임관돼 임관기념 사진이 없다. 졸업식도 2기생 입교식 날 더부살이처럼 가졌다. 60년이 넘은 해군사관학교 역사상 이런 일은 그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럴 만한 사유가 있었기 때...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911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6-구축함 실습시절
구축함 실습생활에서 잊혀지지 않을 부끄러운 일은 배멀미에 시달린 기억이다. 바다 사나이가 되겠다는 사람들이 그 정도를 이겨내지 못하고 그 난리를 쳤으니,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뜨겁다. 그러나 어쩌랴. 익숙하...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309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5-해사시절
초창기 해군사관학교 교과목은 지금의 이학사 과정에 비춰도 크게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국어·영어·국사·대수·물리 같은 교양 공통과목에, 군사·통신·항해·기관·군법·지정학·해병학 같은 전문과목도 공통 필수과목이...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609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4-열악했던 해사시절
창고를 개조한 낡고 좁은 교실, 옷도 신발도 모자도 모두 일본이 남기고 간 것을 활용하는 초라한 사관학교였다. 그러나 가르치고 배우는 열성만은 대단했다. 1946년 6월 15일 해방병단이 조선해안경비대로 바뀌고,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258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3-해군사관학교 시절
이해를 돕기 위해 ‘해방병단’이니 ‘해군병학교’니 하는 낯선 명칭에 대해 간단히 언급해 둬야 하겠다. 해방병단이란 해군의 아버지로 추앙받는 손원일 제독이 광복 후 주머니를 털어 만든 사설군사단체였다. 이것이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414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2-해군과의 인연
내가 해군과 연을 맺게 된 것은 순전히 지역적 영향이다. 군항도시 진해 가까운 곳에서 학교를 다닌 탓에 자연히 해군에 관심을 갖게 됐다. 나는 1925년 경남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마산 공립상업학교를 나왔다. 마산...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7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