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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jpg 세상에서 제일 서러운 것은 배고픈 것이라는 말이 있다. 물론 밥 사먹을 돈이 없어서 배고픈 것과 군대에서 배곯는 것은 다르다.

1970년대 이전에 군대생활을 한 사람이면 누구나 그 서러움을 경험했을 것이다.

나라가 극도로 가난했던 시대여서 사관생도라고 예외일 수 없다. 그 중에서도 사관학교 1학년 생도들은 너무 배가 고팠다. 무엇보다 밥과 부식의 양이 절대 부족하기도 했지만, 수업과 잠자는 시간을 빼고는 언제나 뛰거나 부지런히 움직여야 하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너무 배가 고파 식탁에 비치된 간장과 고춧가루까지 물에 타서 먹을 정도였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말처럼 살 길은 있는 법이다. 지금은 어떤지 몰라도, 그때는 식사준비가 1학년 생도 몫이었다. 취사장에 가서 밥과 국을 받아다 식당에 퍼 놓는 일이 1학년에게 맡겨졌으니 살판난 일 아닌가.

식당비치 간장에 물 타 먹기도

1학년 밥은 꾹꾹 눌러 담고, 선배들 밥은 살살 얹어 부피만 채우는 요령을 터득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선배들이 그걸 모를 리 없지만 그들도 그랬으니 아우들을 탓할 수가 없다. 그래도 너무 심하면 참고 넘어갈 수 없는 법이다. 밥이 너무 적은 데 화가 난 4학년 생도가 3학년을 불러 얼차려를 시켜 분풀이를 하면 그것은 차례차례 밑으로 내려갔다. 그러다가 상급생들 꾀에 넘어가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자, 오늘은 자리를 한번 바꿔 볼까. 1학년 생도들이 식사당번 하느라고 오래 고생했으니 우리가 한번 양보해야겠지.”1학년 당번들이 식사준비를 하는 동안 식당 앞에 식사정렬을 했던 4학년 생도들이 먼저 들어가 1학년 자리를 차지해 버리면 꼼짝없이 당하고 마는 것이다.후후 불면 날아갈듯 담은 밥그릇은 그 날 모두 1학년 몫이 돼 온종일 주린 배를 움켜잡고 참아야 했다.

배고픔은 생도들만의 고통이 아니었다. 저명한 명사들도 마찬가지였다. 6·25 동란이 일어나자 서울에서 많은 피란민이 부산·마산 등지로 쏟아져 내려왔다.동원령 탓도 있었지만 호구지책을 위해 장교로 들어오는 지식인이 많았다. 해군을 지원한 사람들은 해군사관학교에서 단기교육을 통해 장교로 임관시켜 내보냈는데,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교수들도 장교 후보생으로 들어왔다.

'밥이 곧 하늘'인 시대의 스케치

그 가운데 한 사람이 어느 날 밤 허기를 참지 못 하고 취사장으로 숨어들었다. 누룽지라도 훔쳐 먹을 심산이었다. 그런데 난데없는 인기척이 들렸다. 놀란 후보생은 위기를 넘길 양으로 ‘야옹야옹’ 하고 고양이 소리를 냈다. 그러자 저쪽에서도 똑같은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야?”
사태를 짐작한 후보생이 나지막하게 물었다.
“나야 나.”

돌아오는 대답도 분명 고양이는 아니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동료 후보생이었다. 안심한 두 사람은 마음 놓고 취사장을 뒤져 한밤중의 누룽지 파티를 즐겼다.군목이나 군승이 될 군종장교 후보생도 다를 것이 없었다. 군종병과 군종장교를 같이 훈련시키던 때의 일이다. 한 후보생이 종교시간에 해군사관학교 군종장교에게 부탁해 빵과 건빵 등을 단정(短艇)부두 크레인 밑에 숨겨 뒀다가 들켰다.

조교에게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두들겨 맞는 얼차려를 당하면서 그는 “목사님 용서해 주십시오”만 부르짖었다.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되자 그는 “잘못했다”고 말해 겨우 용서를 받았다. 사흘 굶으면 남의 집 담을 뛰어넘지 않을 사람이 없다는 말이 있다. 밥이 곧 하늘이라는 옛말을 실감할 수 있었던 시대의 스케치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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