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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jpg 지금 국군의 순서를 가리키는 말은 ‘육·해·공’으로 굳어져 있다. 그런데 창군 초기 대통령이 입만 열면 ‘해·육·공’이라고 말해 육군의 신경을 자극했던 일이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석에서는 물론 공식석상에서도 언제나 그렇게 말하곤 했다.

해사 1학년 때인 1946년 가을이었다. 마산에서 이승만 박사 연설회가 있다고 해서 사관생도 전원과 해안경비대원들이 손원일 제독 인솔로 마산에 갔다. 이박사 앞에서 시가행진을 한다고 정복을 빨고 다리고하는 북새통 끝이었다.

어디서나 ‘해·육·공’… 육군 자극

45년 10월 16일 오랜 망명생활 끝에 미국에서 돌아온 이박사는 전국을 순회하며 국민들 앞에서 반공국가 건설을 강조하는 강연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 이박사의 마산 강연 일정을 통보받은 손제독은 준비를 서둘렀다. 해안경비대 함정 4척을 동원, 사관생도들과 비번 해안경비대원 등 200명을 태우고 마산으로 달려갔다.

손제독 선친은 이박사와 같이 독립운동을 한 동지였고, 같은 이북 출신이라는 지연이 겹쳐 두 분은 특별한 친분을 갖고 있었다. 손제독 선친 손정도 목사는 중국 상하이 임정 제2대 의정원장 시절 이박사와 동고동락한 독립운동 1세대였다.미 군정장관 하지 장군과 사이가 좋지 않았던 이박사를 위해 손제독이 부하들을 총동원한 것만 보아도 얼마나 돈독한 관계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평생을 조국 독립운동에 몸 바친 노 애국자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다면 그런 일을 하겠는가.“이승만 박사님 연설을 들으려고 진해에서 달려온 조선 해안경비대원들입니다.”행사장인 마산역전 광장에 해안경비대원을 도열시켜 놓은 손제독은 이박사가 도착하자 곧 사열을 시작했다. 사열 끝에 시가행진을 하는 사관생도와 경비대원들의 옷차림이 ‘가관’이었다.

일본 해군 항공예과생들 정복을 고쳐 짝짝이로 입은 사람, 때가 덕지덕지 묻은 한복 저고리에 뚫어진 고무신을 신은 사람, 턱없이 큰 미군 군화를 질질 끄는 사람 등등 복색과 신발이 가지각색이었다.그 모습을 바라보는 노 애국자는 웃던 얼굴을 찡그렸다. 사열이 끝나고 마이크 앞에 선 그는 특유의 이북 사투리로 쩌렁쩌렁 연설을 하기 시작했다.

“여러 악조건을 무릅쓰고 해군을 건설하겠다는 젊은이들 노고를 높이 치하합네다. 내가 미국에 있을 때 해군을 무척 부러워했는데, 우리도 빨리 훌륭한 해군을 키워야 하겠습네다. 우리나라는 3면이 바다여서 특히 해군을 강화하여야 합네다.”이런 인사말 끝에 이박사는 광장을 가득 메운 군중을 향해 연설을 계속했다.

망명생활 중 미 해군 위용 부러움

“마산시민 여러분! 맨 앞줄에 있는 우리 해군 용사들을 보시오. 비록 군복도 제대로 입지 못 하고 남루한 옷차림이지만 빛나는 눈빛과 씩씩한 기상을 보면 우리의 바다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겠소이다.”그러면서 그는 이제 태어나기 시작한 신생국 군대를 언급할 때마다 ‘해·육·공’이라는 말을 썼다.

해군을 상대로 한 자리라면 몰라도 육군과 공군 관계자들이 같이 있는 공·사석에서 언제나 그런 순서로 말하곤 했으니 육군의 투정과 불만에 이해가 간다.이박사가 그렇게 말하게 된 것은 이유가 있다. 망명생활 대부분을 미국에서, 그것도 하와이에서 오랜 세월을 보낸 탓이라고 본다.

미국 극동해군의 전진기지인 하와이에 거류하는 동안 늘 미 해군과 해병대의 위용을 부러워했다는 것이다. 그날 행사가 끝난 뒤 손제독은 이박사 부부를 LCI(서울정)에 태워 진해만으로 안내했다. 그때 부두에 대기하고 있던 해안경비대 군악대는 내내 우리 민요 ‘양산도’만을 연주했다. 아직 단 한 곡의 군가도 없던 시대의 풍경화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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