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해군은 외교 업무까지 담당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절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해군을 정상회담 경호·경비와 영접에 해군을 동원했던 것이다.
특별한 경우란 바로 장제스(蔣介石) 자유중국(타이완) 총통과 이대통령의 진해회담이었다. 자유중국 국부였던 장 총통은 1949년 당시 총통 자리에서 물러나 국민당 총재 자리에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총통이라 불렀고, 이대통령도 그렇게 예우하기를 원했다.
초창기 해군 외교 업무까지 담당
장 총통 자신이 국빈대우를 꺼려 서울을 사양해 회담장소가 진해로 결정된 것이 해군에 경호·경비와 영접 업무가 맡겨진 배경이다. 뒤에 알게 된 일이지만 회담장소에 대해서는 양국 간에 오랜 사전 협의가 있었다.
이대통령은 당연히 회담장소로 서울을 생각했다. 그러나 자유중국 측은 “당 총재 자격으로 가는 것이니 서울은 피하고 싶다”는 장 총통 뜻을 전하면서 제주도를 제안했다. 그러나 이대통령이 제주도를 반대했다고 한다.
제주도를 반대한 이유는 회담이 있었던 49년 8월은 아직 4·3사건이 수습되지 못해 국빈 경호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는 장 총통이 비행기나 군함으로 올 텐데, 제주도에는 아직 그만한 공항과 항만시설이 없었다.
그 대안으로 이대통령이 제안한 장소가 진해였다. 진해는 당시 기준으로는 그 모든 것을 갖추고 있는 도시였다. 비행장도 항만 시설도 그런대로 쓸 만했고, 무엇보다 자신이 즐겨 찾는 별장이 있어 회담장소 문제까지 해결되는 곳이었다. 그리고 해군의 본거지여서 경호와 영접 문제까지 안심할 수 있었다.
장소 문제가 결정되자 이대통령은 손원일 해군참모총장을 경무대로 불렀다. 회담일정을 알려주면서 회담장을 잘 준비해 놓고 경호업무까지 해군이 맡아 달라고 지시했다. 이 사실을 비밀에 붙여 달라는 당부와 함께.
손제독은 진해에 내려오는 즉시 김일병 통제 부사령관·김영철 해군사관학교장·권태춘 조함창장을 불러 회담준비에 실수가 없도록 당부했다. 그때 나는 잠시 통제부 근무를 하고 있어서 준비업무에 동원됐다. 손제독은 거의 진해에 머무르다시피 하면서 하루에도 몇 번씩 군항부두·해군공관·대통령 별장 등을 돌아보며 준비상황을 체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처음 맞는 국빈행사여서 아무 경험도 없는 해군이 행사를 망치면 나라망신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장 총통은 이대통령과 각별한 친분이 있고, 국민들도 한국의 독립에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라고 좋은 감정을 가졌던 세계적 정치인이었다.
정부수립 후 첫 국빈행사 성공적
49년 8월 6일은 무더웠다. 진해 해안 백사장에 면한 비행장에는 장 총통 비행기 도착 예정시간 1시간 전인 오후 1시쯤부터 이범석 국무총리를 비롯한 20여 명의 정부 고위인사가 도열하고 있었다. 미리 진해에 와 있던 이대통령이 프란체스카 여사와 함께 공항에 도착하자 장 총통이 탄 비행기 메이링(美齡) 호가 활주로에 사뿐히 내려앉았다.
장 총통은 신문이나 뉴스·영화에서 본 모습 그대로 엷은 카키색 중산복(中山服) 차림이었다. 짧은 머리에 온화한 미소를 머금은 60대 정객은 트랩을 내려서자마자 마중 나온 이대통령과 반갑게 해후했다. 해군 군악대가 연주하는 양국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중국어가 유창한 이총리의 통역으로 출영 인사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다.
그 뒤는 사열식이었다. 이대통령 안내로 해군 의장대를 사열하면서 장 총통은 흡족해하는 제스처를 보여 주었다. 해군의 ‘첫 시험’은 그렇게 성공적으로 끝났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6대 공정식
2011.01.28 01:56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1- 이승만-장제스 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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