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군을 말할 때 손원일 제독을 빼고는 얘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광복 후 제일 먼저 군사단체를 만들어 국가방위를 예비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중국 상하이 중양(中央)대학교 항해학과를 나온 그는 외국 상선 항해사로 일하다 광복 바로 다음날인 1945년 8월 16일 서울에 도착했다.
그날은 조선총독부가 여운형 선생에게 치안을 넘겨준 날이고, 그 다음날은 건국준비위원회(건준)가 발족된 날이었다.건준이 생겼다고는 하지만 사회의 혼란은 극에 달했다. 저마다 우국지사요, 국방의 전위였다. 광복군 출신은 그들대로 군사단체를 만들고, 일본군과 만주군 출신도 끼리끼리 사조직을 만들어 실권을 잡으려 했다.
이런 혼란 속에서 손제독은 8월 21일 해사대(海事隊)를 결성했다. 장차 조국의 바다를 지키는 해군을 창설하려는 원대한 꿈의 발현이었다.서울 종로구 관훈동 125번지, 옛 충훈부 터가 해방병단 탄생지다. 근래에는 신민당 당사였던 건물에 해사대 간판을 걸었다. 지금 그곳은 가로공원으로 꾸며져 있는데 근래 해방병단 창설지 표지석이 세워졌다.
뜻을 같이하는 정긍모·한갑수·석은태 같은 동지들과 힘을 합치고 조직을 합쳐, 해방병단으로 발전시킨 날이 45년 11월 11일이었다. 발족식을 이날로 잡은 데는 심오한 뜻이 있다. 선비 사(士)자 두 자가 겹치는 날을 택한 것이다. 아라비아 숫자 11월을 한자로 내려 쓰면 선비 士가 된다. 11일을 또 그렇게 쓰면 두 개의 士가 된다.
오늘날 해군창설 기념일은 이렇게 태어났다. 선비사가 겹쳤다고 우리는 이날을 쌍사절(雙士節)이라 부른다. 그날 오전 11시에 기념식을 거행했으니 삼사절(三士節)이라 해야 하지 않느냐면서 유쾌하게 웃기도 한다.손제독이 해군에 유독 신사도를 강조한 것은 오랜 상하이 생활과 외국상선 항해사 생활을 통해 영국·독일 등 선진외국 해군에게서 느낀 감명 때문이었다.
특히 자신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도 약자를 먼저 구하고 자신은 희생을 감수한 영국해군의 젠틀맨십에 매료됐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 경위로 그는 해군에 무용·성실·명예·신의·약자 보호라는 신사도 덕목을 강조하게 됐다.창단식이 끝난 다음날 손제독은 단원 70명을 인솔해 진해로 내려갔다. 단원들을 훈련시키고 바다를 지키는 실무에 착수할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보급문제 때문에 도착 직후부터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숙소도 없고 끼니마저 굶게 되자 단원들은 당장 서울로 돌아가겠다면서 소동을 부렸다. 손원일을 데려오라고 야단이었다.“여러분의 불평은 너무도 당연합니다. 돌아가겠다는 사람은 막지 않겠소. 앞으로도 이런 고난은 계속될 것입니다. 해군 건설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당분간, 정부가 수립될 때까지는 지난날 독립군과 같은 희생정신으로 뭉쳐야합니다.”
그렇게 해서 반수 가까운 33명이 돌아가고 37명이 남았다. 남은 사람들은 손제독의 연설을 듣고 인품을 믿었다. 진해항 옛 일본군 항무부 건물 한구석을 차지하고부터는 험하나마 숙소 문제가 해결됐고, 식량이 생기는 대로 보리밥이며 밀가루 죽을 만들어 먹였다. 미국에서 들어오는 원조 밀가루를 배정받아 좀 사정이 나아졌지만 절약을 위해 봄에 쑥을 뜯어다가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그런 고생 끝에 해가 바뀌어 46년 1월 14일 해방병단은 정식 군사단체로 인정받아 국방사령부 예하단체로 편입됐다. 적으나마 예산이라는 것이 책정돼 극도의 궁핍을 면하게 됐다. 그 고난을 이겨내지 못했다면 해군·해병대 창설은 한참 늦었을 것이고, 그나마 수동적으로 이루어져 오늘날과 같은 전통을 세우지 못했을 것이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6대 공정식
2011.01.28 01:59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4- 해군·해병대 창설 손원일 제독
조회 수 5460 댓글 0
-
수색대 설한지훈련장을 시찰중인 유낙준사령관과 김인식총재
<사진 : 해병대전우회, 해병대수색대전우회>Date2011.02.14 Category30대 유낙준 Views13035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20-몽금포 작전
몽금포는 북한 땅 황해도 서쪽 끝에서 황해로 길게 돌출한 작은 어항이다. 1949년 8월 이곳에 주한 미 군사고문단장 전용보트가 납북돼, 이를 찾아오기 위한 작전이 있었다. 공산진영이 이 작전을 내세워 6·25가 ‘북...Date2011.02.13 Category6대 공정식 Views8410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18-함정 납북사건
한반도가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한에 각각 정부가 수립된 1948년부터 6·25전쟁 때까지 남북 간에는 체제 경쟁이 치열했다. 특히 북한은 남로당을 조종해 남한사회의 혼란을 획책하기에 열중했다. 빈번한 납치와 ...Date2011.02.13 Category6대 공정식 Views7346 -
최고회의 선서식의 김두찬사령관
1962년 최고회의 선서식에 김두찬 해병대사령관, 좌측 의장석에 박정희 대통령 권한대행 사진출처 : 해병대60주년 사진전Date2011.02.11 Category5대 김두찬 Views7278 -
1964년 미해병학교를 방문한 김두찬사령관
사진 설명: 좌측부터: 김해근 소령(해간 8기 Jr. Course), 장대길 대령(특채 Sr. Course), Col. 교수부장, 김두찬 사령관, Lt. Gen. Cate CMDT, MCS. 이영우 준장(군수국장), 김성대 대령(인사국장), 이근식 중령(해...Date2011.02.11 Category5대 김두찬 Views5407 -
장단사천지구 시찰당시 신현준사령관
사진설명: 1952년10월 해병 제1전투단이 서부전선(장단, 사천강지역)에서 중공군과 혈투를 벌이고 있을 때 신현준 사령관(중장 계급이었으나 당시 미 해병 제1사단장의 계급이 소장이어서 의전절차를 생략키 위하여 ...Date2011.02.11 Category1대 신현준 Views8463 -
김석범사령관의 생애와 공적
훈기번호 제159호 1. 생애(1914-1998) 1914년 11월 12일 평안남도 강서군 반석면에서 출생한 김석범(金錫範) 해병 중장은 만주로 건너가 1934년 신경사범학교를 졸업하였다. 조국의 광복과 함께 만주로부터 귀국하여 ...Date2011.02.11 Category2대 김석범 Views8213 -
'빨간 팔각모' 김인식 해병대전우회 총재
"대통령은 작전하는 지휘관이 아니다… 전투는 군인이 하는 것" “나는 백령도에서 대대장 2년 반, 서북 5개 도서를 관할하는 여단장 1년을 했다. 그때도 스스로 묻곤 했다. 만약 북이 제한적 도발을 해오면 우리 함정...Date2011.02.10 Category26대 김인식 Views6140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17- ‘여순반란 사건’ 3
몇 해 전 어떤 TV 방송에 여순사건 당시 해군에서 함포를 쏘아 양민 1000여 명을 학살했다는 내용이 방송됐다. 너무 어이없는 일이었다. 나는 즉시 해병대사령부에 전화를 걸어 당시 우리 함정에는 함포가 아니라 대...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6296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6- ‘여순반란 사건’ 2
서울에서는 여수에 그런 폭동이 일어난 사실을 내 보고 전에는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모든 관공서와 기관 단체가 점령당했기 때문에 다른 채널이 없었던 것이다. 1949년 10월 20일 새벽 5시 박옥규 작전국장을 통해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461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5- ‘여순반란 사건’
대한민국 정부수립 직후 전남 여수·순천에서 일어난 반란사건은 우리 현대사의 고난을 예고한 불행이었다. 육군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이 사건은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쳤다. 해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나는 첫 보직인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109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4- 해군·해병대 창설 손원일 제독
해군뿐만 아니라 대한민국 군을 말할 때 손원일 제독을 빼고는 얘기가 성립되지 않는다. 광복 후 제일 먼저 군사단체를 만들어 국가방위를 예비한 사람이 바로 그였다. 중국 상하이 중양(中央)대학교 항해학과를 나온...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460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3- 이승만-장제스 회담
이승만 대통령과 장제스 자유중국 국민당 총재 간의 정상회담이 끝난 7일 오후 6시, 손원일 제독은 집 주인 자격으로 간단한 칵테일파티를 열었다. 칵테일과 음료를 나누며 무더위도 식히고 가벼운 환담하는 자리가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405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2- 장 총통 환영 파티
“오늘 귀국의 현명하신 영수 이승만 대통령 초청으로 옛 친구들을 다시 만나 지난날의 정을 나누게 된 것을 평생의 가장 유쾌한 일로 생각합니다.” 의장대를 사열한 장제스(蔣介石) 총통은 진해 통제부 안에 마련된 ...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5155 -
바다의 사나이·영원한 해병 -11- 이승만-장제스 회담
초창기 해군은 외교 업무까지 담당했다. 지금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아직 나라 틀이 제대로 잡히지 않은 시절이어서 이승만 대통령은 특별한 경우 해군을 정상회담 경호·경비와 영접에 해군을 동원했던 것이...Date2011.01.28 Category6대 공정식 Views46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