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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jpg 서울에서는 여수에 그런 폭동이 일어난 사실을 내 보고 전에는 까맣게 몰랐다고 한다. 모든 관공서와 기관 단체가 점령당했기 때문에 다른 채널이 없었던 것이다.

1949년 10월 20일 새벽 5시 박옥규 작전국장을 통해 내 보고를 받은 손원일 해군총참모장은 “흔히 있는 소규모 소요가 아닌지 재확인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매스미디어와 통신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못한 시대였다. 국방부도 육군도 처음 듣는 사실이어서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외항에서 여수 내항으로 천천히 항해하면서 여수 시내의 상황을 체크하고 있는데, 남항 부두에서 누군가 손을 흔들어 신호하는 사람이 희미하게 보였다. 반란군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보트를 내려 그를 데려오도록 지시했다.

계엄령 선포되고 경고문 발표

“아니 오중령님 아니십니까.” 보트에서 배로 올라선 사람은 광주에 주둔 중이던 제5연대 참모장 오덕준 중령과 14연대장으로 갓 부임한 박승훈 중령이었다. 그들은 눈물을 글썽이며 고맙다는 말을 연발했다. 오중령은 4·3사건 진압 지원에 투입될 14연대 병력 파견을 점검하기 위해 출장왔다가 부대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부두에 숨어 있었다고 했다.

이 상황도 즉시 보고됐다. 본부로부터 두 사람을 부산으로 이송하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다음날인 21일에는 임시 정대를 편성해 진압작전에 참가하라는 손제독의 명령이 하달됐다. 이에 따라 여수 가까이 있던 305정과 512정, 목포에서 달려온 505정의 지원을 받아 우리는 반란군 토벌작전을 돕게 됐다. 반란군의 해상탈출 저지도 중요한 임무였다.

같은 날 육군에서도 반군토벌전투사령부가 설치됐다. 22일에는 여수·순천 지역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이승만 대통령의 경고문이 발표됐다.302정에는 37㎜ 포가 장착돼 있었다. 그때는 포가 부족해 작전에 나가는 배에만 달아 줬다. 이 포는 철갑탄이어서 목표물에 맞아도 폭발하지 않고 관통하기만 하는 대전차포다. 불법 어로나 밀수선을 침몰시키지 않고 나포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도 소리는 다른 포와 다를 것 없었다. 그 소리만은 제값을 할 수 있었다.부산에서 돌아왔을 때 나에게는 새로운 임무가 부여됐다. 부산에 있는 5연대 1대대 병력수송을 지휘하라는 것이었다. (1대대장은 훗날 ‘백두산 호랑이’로 유명해진 김종원 대위였다) 교통부가 운용하던 상륙정 LST에 대대 병력을 태워 여수에 상륙시키라는 것이었다.

반란군이 장악한 적지에 LST를 상륙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반란군들의 집중사격을 뚫을 방도가 없었다. 토벌군에게 쫓긴 반란군이 남항 부두에 집결해 해상탈출을 시도하면서 그 와중에 인민재판을 하고 있었다. 부두에는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붉은 완장을 찬 사람들이 설쳐대면서 ‘반동분자’의 처형을 선동하고 있었다.

LST 무사히 남항 부두에 상륙

나는 억울하게 죽어갈 선량한 시민을 한 사람이라도 구출하기 위해 즉각 작전을 개시했다. “부두로 진입하면서 37㎜ 포를 쏘라”고 명령했다. 엄청난 포성에 놀란 반란군은 혼비백산했으나 전열을 가다듬어 소총을 쏘며 저항해 왔다. 날이 저물어 일단 퇴각했다가 다음 날에야 격퇴했다. 그 사이 LST는 무사히 남항 부두에 상륙할 수 있었다.

이 작전에서 해군 전사자 제1호가 발생한 것을 나는 잊지 못한다. 302정 갑판에서 상륙군을 통제하고 있던 기관장 석기찬 병조장이 적탄을 맞은 것이다. 훗날 나는 2계급 특진을 상신해 그를 소위로 추서시켰다.

이 전투는 우리 해군 사상 초보적인 상륙작전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 작전이 끝난 뒤 나는 전투 경과를 보고하면서 해상전투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병대가 꼭 있어야겠다고 건의했다. 보고를  받은 손제독은 고개를 끄덕이며 나의 주장에 귀를 기울여 줬다.
<공정식 前 해병대사령관/정리= 문창재·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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