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해병대원이다.
전도봉 해병대 제22대 사령관
( 해병대가 길러낸 해병대원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이 시대의 여타 사람들 보다 뛰어난 것은 아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다른 평범한 쇠를 달구는 불이 아닌 특수한 불로 열처리되어
특수한 재질의 쇠가 되도록 담금질되고 망치질 되어 왔다는 것이다.
해병대는 국가가 보유한 최고의 군대이다.
그들은 고향의 해변에서부터 얼어붙은 북극의 이름모를 해안에 이르기까지
해병대의 깃발을 따라 용감히 싸울 것이다.
해병대 장교야 말로 진정한 장교이며,
해병대 하사관은 로마의 시이저 시대 이래로 여전히 훌륭히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안 될 것이 없고 불가능을 결코 인정치 않으면서 또한
해병대 지휘자(관)는 그들만의 독특한 주요 임무인 전투를 결코 잊은 적이 없다. - 페렌바- )
해병대원이 된다는 것은 정신상태의 새로운 변화를 의미한다.
이는 어떠한 분야의 전문직업인이 되는 것 이상의 새로운 경험이 요구되는 것이다.
해병대원이 된다는 것은 단순히 급료를 받는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님은 물론
전문직업인이 되는 것 또한 아니다.
남녀의 성별, 계급의 높낮이에 의해 해병대원이 되는 것이 아니다.
계급장은 단지 일정 기간 동안 주어진 권한이나 책임의 표식일 뿐이다.
오히려 해병대원이 된다는 것은 해병대 복장을 한 우리 모두의 영혼에 각인된
해병대 모표(독수리, 별, 닻)로부터 비롯되는 것이다.
해병대 모표는 신병훈련이나 사관후보생 교육을 이수하고
'나는 해병대원(海兵隊員 : I'm a Marine) 이다' 라고 외칠 수 있도록 허락된 순간부터
모든 해병대원 각자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자아에 각인되는 표상인 것이다.
신체적 또는 정신적 상처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아픔의 정도가 약화되거나 치유될 수 있으나,
해병대 모표는 시간이 지날수록 그 의미는 더더욱 명확해지며,
'나는 해병대원이다' 라는 자긍심의 강도는 오랫동안 더 더욱 커져가게 된다.
'한번 해병대(원)는 영원한 해병대(원)
( Once a Marine, Always a Marine )
"해병대원은 군복이 좀약과 함께 벽장 속에서 썩어 가더라도 모군에 대한 강렬한 충성심을 갖게 되는데,
마치 강철 실로 엮은 것과 같은 이러한 전통은 그들이 선택된 정예요원이었다는 정신으로부터 나온다.
해병대는 수적으로 소수이기 때문에 그들이 선택되었으며 보다 우수하고
무엇보다도 타군과 다르다고 믿는다."
해병대의 지휘철학의 중심에는 타군과 달라야 한다라는 의식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는 오랜 기간 육군, 해군, 공군의 특징들을 결합시키면서 실천되어 왔다.
해병대는 바다에서 싸우는 군대임이 분명하지만 특이한 능력의 집성체로서,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제각기 틀리면서도 하나로 일치된 내용과 모습으로 행동하고
하늘, 바다, 땅 모든 곳에서 싸운다.
다른 군과 똑같은 평범한 방법이 아니라 특이한 방법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며,
어떠한 최악의 상황하에서도 살아 남을 수 있는 방법을 해병대원 스스로 터득하여 오랫동안 천명해 왔는데,
군인 다운 외모에서부터 명령에 대한 절대 복종, 엄정한 군기, 전통가치에 대한 집착
그리고 무엇보다도 해병대는 전투를 위해 존재한다는 양보할 수 없는 신념과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이다.
해병대는 시작부터 이러한 특징들로 구별되어 왔다.
정예 엘리트 의식은
장교이든 사병이든 간에 모두 같은 훈련 과정을 거친다는 사실로부터 자라났다.
1949년 창설시부터 해병대 교육은 타군에게서 찾아 볼 수 없는 해병대만의 독특한 단결력을 부여해 왔다.
이처럼 타군과 다르다고 하는 생각이 앞서가는 해병대원들의 마음 한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는 모든 해병대원을 하나로 묶어주는 신비로운 끈임과 동시에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인가를 정의해주는 것이다.
우리가 누구이며 무엇인가는 과거에도 그러하였고 현재에도 그렇듯이 미래에도 언제나 같은 모습일 것이다.
해병대를 정의해 주는 또 다른 요소는 바로 해병대는 이기심이 없다는 것이다.
부대의 이익에 우선하여 자기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지 않는 정신, 이것이 해병대정신 이며,
어느 사회에서도 해병대만큼 조직의 이익을 우선하는 곳은 없다.
우리 해병대의 전통은 평범하고 보편타당한 보통 사람들에 의해 창조되어 왔으며,
신체적으로나 도덕적으로 특별한 리더십과 용기를 보여준 영웅들에 의해서도 창조되어 왔는데
일부 영웅들의 활약상은 앞서가는 해병대의 정수라 하겠다.
그들은 계급이나 성명 또는 그들이 훈장을 받았기 때문에 기억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이 모두 해병대원이었기 때문에 기억되고 있는 것이다.
1918년 6월,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어느날 한 미국여성이 프랑스 육군 후방지역의 한 야전 병원을 방문했다.
그리 흔치 않은 미해병대 여단의 부상병이 프랑스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미국 여성이 분주하고 넓은 병실을 돌아보다가 구레나룻이 특히 많이 나 있는 한 환자를 발견하고는
그에게로 다가갔다. "아! 당신은 분명 미국인이겠군요." 라고 묻자
그는 "아닙니다.나는 해병대원입니다(I'm a Marine)." 라고 대답하였다.
80년대 초 중동지역에서 위기가 고조되고 있던 어느날,
베이루트 시의 폭탄 테러 현장에서 어느 미해병대원은 현장 취재기자의 빗발치는 질문을 받고 있었다.
"당신은 이 곳에 있어야만 합니까? 누군가 여기에 꼭 있을 필요가 있습니까? 미국이 철수해야 되겠지요?"
라는 그 기자의 질문에 젊은 해병대원의 대답은 단호했다.
"내가 어디에 있어야 되겠습니까? 나는 해병대원입니다.
누군가 여기에 꾝 있어야 된다면 여기에는 당연히 해병대원이 있어야 됩니다."
또 다른 베이루트 전투에서 어느 한 미해병대원이 부상을 당해 독일의 한 병원으로 후송되었는데
앞을 보지도 못하고 말을 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사령관의 방문을 맞게 되었다.
사령관이 허리를 숙여 그 해병대원에게 몇 마디 위로의 말을 전하려고 하자
부상병은 자기에게 말하려고 하는 사람이
무언가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상처와 충격으로 인해 볼수도 없고 말할 수도 없는 이 젊은 해병대원은 무엇인가를 쓰려고 애썼다.
그 해병대원은 무엇이든 원하는걸 쓸 수 있었고, 다른 말을 쓸 수도 있었으나
그는 '언제나 충성을(Semper Fi)'이라는 말만 썼다.
그 해병대원 역시 자신의 부상보다 해병대 조직과 동료 해병대원을 먼저 걱정했던 것이다.
1949년 창설당시부터 해병대에 몸을 담았던 어느 해병대원은 30년후에 전역을 하였다.
근 두 번의 전쟁에서 싸웠고, 아마도 수년을 전쟁터에서 보냈을 것이다.
전쟁이 없었던 수 많은 기간동안 그는 과연 무엇을 하였을까?
그것은 돈도 아니요, 화려한 교육도 아니요, 그리고 월남같은 타국에 가는 여행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것은 다른 어떤 것, 즉 해병대 제복과 함께 머물지 않으면 안 되도록 사람을 이끄는
해병대에 대한 신비스러운 숭배의 마음, 그것일 것이다.
다른 형상에서와 같이 정확한 원인은 말하지 못하지만 그들 자신이 해병대에 대한 매력을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매력의 본질에서 무엇이 해병대를 대표할 수 있는가를 쉽게 말할 수는 없다.
그들이 갖고자 하는 매력의 본질은 남의 눈에 띄게 차려입은 해병대의 유니폼에서
찾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점검준비가 완료된 말끔한 막사나 빛나는 계급장에서도 아니었을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해병대에 대한 신비스러운 숭배사상은 해병대원 각자의 내재적인 의식과
그들이 통상 사용하는 언어에서 찾을 수 있다.
해병대원들은
'귀신잡는 해병대', '무적 해병대','신화를 남긴 해병대' 등
그들이 자랑스럽게 사용하는 언어들로부터 육체, 정신, 마음에 이르기까지
다른 어떠한 군도 필적할 수 없는 탁월함과 우수함이 있다고 믿어왔기 때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