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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작전하는 지휘관이 아니다… 전투는 군인이 하는 것"

 

“나는 백령도에서 대대장 2년 반, 서북 5개 도서를 관할하는 여단장 1년을 했다.

그때도 스스로 묻곤 했다.

만약 북이 제한적 도발을 해오면 우리 함정이 올라와서 지원을 해줄까.

공군이 와서 폭격해줄까.

답은 늘 부정적이었다.”

 

함정·전투기 지원 없었다

서북 5개도서는 결국

해병 스스로 생존하라는 뜻

 

2010112801024_0.jpg

 

예비역은 해병 더 사랑…

민간인 군복 착용 금지돼

전우회들, 계급장 안달고

빨간모자만 쓸 수 있어

 

 

김인식(62) 해병대전우회 총재는 아직 젊어 보였다. 해병대사령관에서 예편한 지는 5년이 됐다. 하지만 그는 현역 장병보다 더 '해병 같은' 80만명의 예비역 회원을 이끌고 있다. 현역 사령관 시절에는 점잖았겠지만, 이제는 연단에 서면 "김정일 놈" "××통을 비틀어야" 등의 원색적인 표현도 사양치 않았다.

 

 "이번에 봤듯이 해군 함정의 지원도 없었고 전투기도 떴을 뿐 폭격하진 않았다. 지휘관 시절의 내 생각이 들어맞았다. 서북 5개 도서에서는 해병대가 알아서 생존하라는 뜻이다."

 

 

―해·공군의 지원을 못 받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해군 함정이 북 해안을 가격할 수 있는 선까지 올라오는 데는 제한이 있다. 북의 '실크웜(누에) 미사일' 기지의 사정권 안이 되기 때문이다. 공군 전투기가 폭격하는 것은 전쟁을 불사하겠다는 상황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어느 쪽의 지원도 받기 어렵다. 생존을 위해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해병대가 독자적으로 죽기 살기로 버틸 수밖에 없다고 봤다."

 

―결국 해병대가 당했다.

 

"해병대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이다. 사방에서 '후배들이 피를 흘렀다', '분통이 터져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현역이 '한번' 해병이라면 예비역은 '영원한' 해병이다. 총재단 회의를 긴급 소집해 규탄결의대회 광고를 냈다. 광고비 3300만원은 외상으로 했다."

 

주말 오후 바람은 셌고 날씨는 쌀쌀했다. 서울 광화문에 해병전우회 회원 1000여명이 모였다. 평균 연령 60대 이상이었다. 주최 측의 버스 대절은 없었다. 유사군복, 빨강 팔각모, 군화, 벨트를 갖춰 전국 각지에서 각자 올라왔다.

 

―해병대가 북의 공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면도 있다. K-9 자주포 6문 중 3문이, 대(對) 포병 레이더는 작동되지 않았다. 대응사격은 13분이나 지나서 이뤄졌다.

 

"적의 포격에 대응할 수 있는 사거리를 가진 것은 K-9 자주포밖에 없다. 사격 훈련을 하면서 자주포 한 문의 포신 안에 불발탄이 박혔다. 다른 두 문과 레이더 장비는 적의 포격으로 고장이 났다. 적의 포격에 일단 대피하고 반격하려니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레이더가 작동하지 않았지만, 훈련 때 적의 진지와 기지에 대한 화집점(火集點)을 따 놓았다. 거기에 맞춰 사격을 가했다. 연평도 현장에 다녀온 해병대사령관 얘기를 들어보니, 북의 동시다발 포격 속에서 그 정도 대응을 했으면 잘한 것이다."

 

―여러 상황으로 변명할 수 있지만, 어쨌든 예상됐던 도발에 충분히 대응 못 한 것은 사실 아닌가?

 

"화력이 열세였다. 이번에 화력전만 있었다. 화력전을 할 수 있는 것은 K-9뿐이다. 분당 2~3발밖에 못 쏜다. 북의 포격에 맞서 해병이 할 수 있는 최초의 대응을 다 한 셈이다."

 

해병대는 1951년부터 서북 5개 도서를 점령했다. 그때는 '구월산유격대' '8240부대' 등 유격전을 지원하는 기지로 썼다. 정전협정을 하면서 북은 3·8선 이북에 점령하고 있는 섬에서 철수하라고 했지만, 해상에 NLL(북방한계선)이 설정됐다.

 

―북의 공격이 예상됐다면 화력에서도 사전대비를 했어야 하지 않는가?

 

"1975년 김일성은 '서북도서 바다는 우리 관할이니 섬에 통행하려면 우리가 규정한 항로를 따라야 한다'고 선언했다. 그때부터 백령도 등 서북 5개 도서의 전력증강 계획이 세워졌다. 모델로 삼은 것이 중공과 대치한 대만의 '금문도(金門島)'였다. 우리 군에서 직접 금문도를 시찰했다. 전력증강은 방어개념이었다.

 

섬을 확보하면서 적이 기습상륙할 때 대응하는 것이었다. 포의 사정거리가 짧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가 '1차 연평해전'(1999)이 터진 뒤 해상 상황이 벌어졌을 때 지원하기 위해 K-9 자주포가 배치됐다. 연평도 2문, 백령도 4문이었다.

 

다시 '2차 연평해전(2002)' 이후 각각 6문으로 증강됐다. 화력배치는 해병대의 권한 밖이다. 해병대는 명목상 독립됐지만 예산·인사·군사권이 없다. '무기를 줘야 싸울 게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평도 부대가 당할 때, 해병대 지휘부는 과연 합참과 국방부에 강력한 대응과 보복을 요구했는가?

 

"얼마나 요청했는지 모르겠다. 전투기 출격과 폭격 권한은 해병대사령부 권한 위에 있다. 당시 F-15K 전투기가 출격했다. 해병대 사령관이라면 사격을 해달라고 강하게 요청을 하는 것이 맞다."

 

―군으로서 최상의 대응은 무엇이었을까?

 

"해병대 화력으로는 열세였다. 상급부대에서 전투기로 북의 해군 8전대, 미사일 기지, 방사포 기지를 공격해줬어야 했다. 나중에 정전협정 위반으로 문제삼을지 모르나 훨씬 강한 응징만이 도발을 막을 수 있다. 이는 사후 예방차원에서도 필요하다.

 

천안함이 터졌을 때 '다시 도발하면 어떻게 하겠다'고만 했다. 그런데 또 터졌다. 이런 식으로 말로만 하면 앞으로 북의 도발은 계속 되풀이될 것이다. 전투 상황에서 '단호하게 대응하되 확전은 피해라'고 명령하면, 한 단계 높은 보복은 어려워진다."

 

―청와대 안에서 '확전은 안 되게' 말이 논란이 됐다. 누가 먼저 꺼냈는지 아직 가려지진 않았다. 만약 공군 전투기로 북 기지를 타격했을 때 '확전'이 됐을 것으로 보는가?

 

"우리 공군이 폭격을 가했다면 아마 북의 미그기도 우리 쪽으로 출격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에서 대략 멈출 것이다. 북이 전면전을 불사하고 준비한 도발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북한은 특정 지역에서의 국지전을 계획한 것이다. '확전은 안 되게'라는 말을 대통령이 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나, 만약 군통수권자가 그런 지시를 내렸다면 군은 명령을 따라야 한다."

 

―그렇다면 안보와 관련된 결정적인 순간에 군미필자인 대통령을 우리는 과연 믿을 수 있을까?

 

"이는 군 경력과는 무관하다. 대통령은 작전을 하는 지휘관이 아니다. 대통령은 군통수권자로서 '전쟁을 할 거냐 말 거냐' 큰 결정을 내리는 위치에 있고, 전투는 유니폼을 입은 군인이 하는 것이다. 특히 상황이 벌어져있을 때는 대통령의 결심사항이 아니라 군 지휘부에 달린 것이다."

 

―이번 대응에는 군 최고지휘부의 판단이 더 문제라고 보는가?

 

"그렇다고 본다. 적의 도발이나 기습을 완전히 막기는 어렵다. 하지만 대응이나 보복은 의지에 달린 것이다. 정상적인 군 수뇌부라면 먼저 대응 폭격부터 하고 책임을 졌을 것이다. 그게 군인의 자세라고 본다."

 

―북의 장산곶에서 백령도까지는 17km다. 이번에 해안포를 발사한 개머리 해안에서 연평도까진 13km 떨어져 있다. 만약 북이 상륙작전을 해온다면 이들 섬은 병력의 열세로 점령될 수도 있는가?

 

"어떤 규모의 병력으로 들어오느냐에 달렸다. 북의 상륙정은 특수전을 위한 공기부양정뿐이다. 우리처럼 상륙함이 없다. 점령을 하려면 대규모 병력과 대포, 전차 등 중장비를 싣고 와야 한다.

 

여단 규모 병력의 백령도를 점령하려면 북은 사단급 이상의 병력이 들어와야 한다. 그럼에도 북의 정규전에 대비해야 한다. 북은 천안함을 친 뒤 연평도를 공격했다. 다음에는 서북 5개 도서 중 한 섬에 기습상륙해 점령하고는 협상을 벌일 수도 있다."

 

―이번 포격으로 연평도 주민들이 대부분 떠났다. 무인도 비슷하게 됐다. NLL(북방한계선)을 무력화하겠다는 당초 북의 의도대로 가고 있다.

 

"1975년 김일성의 선포가 있은 뒤 서북도서 주민들이 굉장히 동요했다. 이에 맞선 박정희 대통령의 의지는 확고했다. 주민들에게 면세, 주택개량 등 혜택을 주면서 안정시켰다.

 

이들 섬은 우리 영토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가치가 있지만, 주민들이 살아야 더 가치가 있다. 이번에 주민들로서는 전쟁을 치렀다. 포격을 당했으니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군이 민간을 못 지켜준 셈이 됐다. 하지만 언젠가는 다시 들어올 것이다."

 

―전쟁에 대한 세간의 불안을 어떻게 봐야 할까? 시일이 좀 지나면 야당이나 좌파단체에서는 "전쟁이냐 평화냐" 이슈를 내세워 현 정권과 군을 공격할지 모른다.

 

"군의 기본 임무는 전쟁을 억제하는 것이다. 전쟁을 결심하는 것은 사실 불행한 사태다. 하지만 전쟁이 두려워 전쟁 준비도 안 하고, 겁이 나니까 적에 끌려 다니는 것은 국가 존립의 문제다.

 

전쟁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지만 전쟁을 치를 수 있다는 용기뿐이다. 싸워서 질 것 같으면 적은 전쟁을 걸지 않는다. 이번 사태에서 언론의 피해 보도도 너무 감상적으로 치우쳤다. 북측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지금은 결의를 다지고 의연해야 할 시점이다."

 

―명예와 자부심을 자랑하는 해병대도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는 말이 나온다.

 

"신세대 장병은 그렇다 치고, 장교들이 매너리즘에 빠져있는 것 같다. 우리 군이 경험한 마지막 전쟁은 월남전이었다. 전쟁이 없는 군대는 약해질 수밖에 없다. 이기지 못하는 군대는 소용이 없다. 미국은 200년 동안 전투를 했다.

 

군은 실제 전투에서 단련된다. 전투에서 승리는 지휘관이 구상하는 것이다. 병사에게는 생존의 문제다. 전투를 경험하면 '사격 훈련을 하라, 무장을 하라, 전투체력을 강화하라'는 말이 필요가 없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 스스로 한다.

 

해병대는 그나마 지원병을 중심으로 하니까 자긍심을 갖는다. 이번 북의 연평도 포격은 실제 영토를 공격해온 전쟁이었다. 우리가 당한 것은 명백하지만, 대신 우리 군은 정신무장에서 많이 얻었을 것이다."

 

그는 해군사관학교(26기)를 졸업해 소위로 임관하면서 해병대를 택했다. 월남전에 참전하기 위해서였다. 전쟁 끝무렵이어서 그 기회를 갖지 못했다. 그는 역대 해병대사령관 중에서 월남전을 안 겪은 최초의 사령관이었다. 전투를 경험하지 못한 아쉬움이 가장 컸다고 한다. 그가 군 생활에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것은 해병대사령관 때 자이툰 부대를 파병한 것이었다. 비록 1개 경비중대밖에 못 들어갔지만.

 

―해병대전우회 회원들은 민간인이다. 그럼에도 팔각모와 군복을 입고 차에는 해병대 로고를 붙이고 다닌다. 참 별난 집단이라고들 생각한다.

 

"예비역이 되면 해병대를 더 사랑한다. 대한민국에서 아마 나라 걱정과 봉사 활동을 가장 많이 하는 집단일 것이다. 자신이 해병대라는 걸 나타내 보이고 싶어한다. 민간인이 군복을 착용하는 것은 금지돼 있다.

 

우리 회원들에게 군복을 입지 말라고 하면 해병대전우회는 해산이 된다. 결국 국방부에서 조정안을 냈다. 현역과 똑같이 계급장 달지 말 것, 유사군복을 입을 것, 빨간 모자만 쓸 것. 하지만 우리 회원들 복장은 천차만별이다. 그렇게 개성이 강하다. 해병대전우회 복장이 통일되면 대한민국이 통일된다는 말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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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인식 해병대전우회 총재는“정상적인 군 수뇌부라면 먼저 대응폭격을 하고 책임을 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이준헌 객원기자 heon@chosun.com 원문출처 : [최보식이 만난 사람] '빨간 팔각모' 김인식 해병대전우회 총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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