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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국헌 前 국방부 정책기획관·(예)육군소장

군 구조를 설계하는 데 있어서 반드시 지켜야 할 원칙이 있다. 지휘통일의 원칙이다. 1993년에 나온 미 육군의 작전요무령은 냉전구조의 붕괴에 따른 전략환경의 붕괴와 걸프전의 교훈을 반영해 세계 어느 곳 어떠한 상황에서나 적용할 수 있는 핵심적 전투수행 교리서로서 미군의 바이블이라고 부를 수 있는데 여기에서는 전쟁원칙(principle of war) 중의 하나인 ‘지휘의 통일’에 관해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모든 목표에 대해 지휘의 통일(unity to command)과 노력의 통일(unity of efforts)을 추구하라. 전쟁의 모든 수준에서 공동목표를 향해 전투력을 집중하는 방법으로 군사력을 운용하기 위해서는 지휘의 통일과 노력의 통일이 요구된다. 지휘의 통일은 한 명의 책임 있는 지휘관이 모든 부대를 지휘하기 위해 필요한 권한을 가진 한 명의 지휘관이 요구된다. 반면, 노력의 통일에 있어서는 공통적으로 인식된 목표에 대해 모든 부대가 비록 동일 지휘구조 내에 반드시 속하지는 않더라도 부대들 간의 협조(coordination)와 협동(cooperation)이 요구된다. 목적의 통일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은 각각의 연속되는 제대의 개념을 다른 제대의 개념과 서로 결합해 하나가 되는 합동개념(nested concept)이다. 

 군정과 군령, 양병과 용병을 분리 운용하는 합동군제가 미국과 유럽제국에서는 의장과 총장의 역할 분담을 도모하면서 대체로 잘 운영되고 있는데, 우리는 제대로 되지 않고 걸핏하면 통합군제로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는 가장 큰 이유는 군 조직의 제1원칙인 지휘의 통일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과 불안 때문이다. 특히 군의 조직과 생활에 익숙한 장교일수록 현재의 합동군제는 미덥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지휘통일과 관련해 합동군제에 본질적 문제는 없다는 한 예를 들어 보자.

야전군사령관은 현재 합참의장과 육군참모총장, 거기에 DEFCON-3이 발령되면 연합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으므로 직속상관이 셋이다. 그러나 이로 인해 운용상의 혼선이 생기는 일은 없다. 문제는 제도가 아니라 운영이다. 

 군제를 검토하는 데 있어서는 우선 합동군제(통제형 합참의장제)가 본래 취지에 맞도록 제대로 운영돼 왔는가를 냉철히 평가하는 것이 필요하다. 제도상의 문제보다도 운영상의 문제를 우선 따져 봐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합동개념이며 합동교리이고, 이로써 하나가 된 합동군인 것이다.   

 헌팅톤은 국방부장관의 조건으로 전략적 통찰력, 관리자의 능력, 정치적 지혜를 들고 가장 중요한 각료 중 하나로서 여기에는 최상급의 인사가 선임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미국 국방장관 가운데 뚜렷하게 꼽을 만한 장관으로는 국방기획 관리제도를 도입한 맥나마라, 레이건 정부에서 월남전 후 침체에 빠진 미군을 일으켜 세워 걸프전쟁을 치뤄낸 와인버거, 미군의 전반적인 변화(transformation)를 이뤄낸 럼스펠드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도 이들을 모델로 삼아 미래의 국방부장관을 기르고 활용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하겠다. 

 ※ 군 경험이 풍부하다는 것이 대통령이나 국방부장관으로서 필수적 요건은 아니다. 유럽에서는 여성 총리나 국방부장관이 나온 것이 벌써 오래됐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국방정책에 대해 아마추어인 것은 아니다. 대처 수상은 포클랜드 전쟁 중 제2차 세계대전을 이끈 처칠 못지않게 탁월한 전쟁지도자의 면모를 보였다. 이들은 의회에서 오랫동안 국방정책을 다뤄 왔고 국정 가운데서 국방이 차지하는 비중을 제대로 알고 있는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군 구조의 변경 문제는 대통령과 국방부장관, 그리고 이를 법제화하는 국회가 권능을 갖고 있다. 818계획 추진 당시에는 군을 중심으로 연구하고 이를 대통령이 승인해 국회 입법 과정을 거쳤다. 이런 가운데 공론화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충분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안보보좌관실의 보좌를 받은 노태우 대통령 자신이 군 경험이 풍부하고 개혁의지가 확고해 건군 이래 초유의 군 구조 개조를 추진할 수 있었으나, 여기에서 마무리 짓지 못한 몇 가지 문제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합참의장을 국방참모총장으로 개칭하지 않은 것은 합참의 지향해야 할 바를 제대로 명시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다. 이로써 818 이후의 합참이 이전의 합참과 확연히 다르다는 인식을 주기에 미흡했다. 군제 개선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도 대통령의 리더십이 중요한 문제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국방부장관의 철학과 의지, 추진력이 각별히 중요한 소이가 여기에 있다.

국방부장관은 군정·군령 및 기타 군사에 관한 사항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는 통수 계통상 최고사령관 대리다. 광범위한 여론수렴은 필요하되 최종적으로는 장관 자신의 판단과 추진력, 그리고 대통령과의 허심탄회한 교감이 중요하다. 필요한 입법을 밀고 나가는 정무적 감각과 지혜도 물론 중요하다. 다시 군 구조 개편 논의가 있을 때는 미국의 골드워터 니콜스 법안과 같이 국회가 보다 큰 역할을 하기를 기대해 본다. 문제는 군사문제에 대한 의원들의 식견인데 이들이 심도 있고 공정한 파악이 가능하도록 공청회를 통해 활발한 논의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도 군제는 미래의 요소를 감안한 지속적 발전이 필요하다. 과거의 경험에 치중한다든가, 상대하고 있는 북한·중국을 공연히 높이 평가하는 것은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다. 확실히 이들의 통합군은 책임과 권한 소재가 명확하고 지휘의 통일이 분명히 이뤄진다는 점에서 군인들에게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우리 군의 출발은 그들과 너무도 다른 맥락에서 시작했으며, 모든 권력과 기능이 당에 집중되는 일당독재 체제에 비해 병정통합주의와 문민통제를 기초로 하는 우리의 군제는 전혀 다른 헌법적 기초를 갖고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합동참모회의가 활성화되지 못하는 데는 회의체의 의사결정을 통해 최선에 도달하는 방법에 익숙지 못한 한국사람의 일반 성향, 특히 군에서 이러한 의사결정 방식이 능률을 올리지 못하는 것이 지적되고 있다. 합동참모회의가 명목상의 회의체로서 합참의 참모들이 준비해 온 의안을 그대로 가결하는 고무도장(rubber stamp)으로 흐른다든가, 또는 대다수의 공론이 모아지는 방향이 분명히 있는 데도 조직 이기주의 측면에서 자군 입장만을 고집함으로써 회의가 건설적인 토의의 장이 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이는 장관이 주재하는 군무회의나 차관이 주재하는 정책회의에서도 흔히 나타나는 폐해다. 합동군제가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이런 업무의 기본적 행태부터 획기적으로 바꾸는 노력이 중요하다.  

 영국에서는 국방의 주요 의사결정에 있어 국방부장관(Secretary of State for Defence)의 권한이 최종적으로 존중되지만 이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군무회의와 같은 국방회의(Defence Council)에서 충분한 논의를 거친다. 육군의 경우도 육군회의(Army Board of the Defence Council)가 의사결정 기관이며, 해군회의(Navy Board), 공군회의(Air Force Board)도 같은 권능을 갖고 있어 폭넓고 유연성 있는 논의가 이뤄진다. 통수와 명령은 독재적이어야 하지만 군의 의사결정에도 이처럼 숙고를 요하는 요소가 많다는 것을 반영하는 분위기가 자리 잡도록 노력해야 한다. 군 구조를 검토하는 데 있어 꼭 짚어야 할 것은 이상과 같으나, 이 밖에 몇 가지 실제적인 문제를 제기하고자 한다.  

 계엄사령관을 합참의장이 겸하는 현행 제도는 문제가 있다. 계엄은 전시, 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서 군사상의 필요에 의하거나 공공의 안녕질서를 유지할 필요가 있을 때 선포된다. 비상계엄이 선포되면 계엄지역 내의 모든 행정사무와 사법사무를 관장한다. 한마디로 계엄사령관에게는 엄청난 권한과 책임이 뒤따른다. 그러나 이는 기본적으로 ‘헌정의 기본질서가 유지되는 한에서’다. 우리나라에서 비상계엄은 4·19, 5·16, 10·26 등 헌정질서가 근본적으로 파행되는 상황에서 내려졌다. 그러나 민주화가 확립된 오늘날 이런 사태는 다시는 일어나서도 안 되고 또 일어날 수도 없다.

 군의 작전을 보장하도록 국가의 전 역량을 효율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하는 계엄업무는 매우 복잡하고 예민한 일이다. 대통령의 전쟁 지도를 보좌하고 전군의 작전을 지휘하며 동맹군과의 협조에 진력해야 되는 합참의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중책을 더해 부과하는 것은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헌병·법무·공보 관련 참모로 구성되는 계엄사령부의 구성에서 보듯이 계엄업무는 기본적으로 군정업무다. 연합사령관이 한미연합훈련 기간에 한국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을 맡는다는 데 대해 이해를 잘하지 못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 미국에서는 지금까지 전국적 범위에서 계엄령(marshal law)이 선포된 예가 없다. 간혹 철강·석탄 노동자들의 폭동이나 인종 분규 시 경찰을 지원하기 위해 주지사의 지휘하에 주방위군이 출동하는 경우는 있으나, 이 병력은 해당 지역의 경찰국장의 지휘하에 들어간다. 전쟁을 지휘하는 합참의장이 계엄사령관까지 겸한다는 한국의 군제를 미군들로서는 불가해한 일일 것이다. 

 합참 내에서 본부장의 위상과 역할에 대해서도 명확한 정리가 필요하다. 합참의장·작전본부장·작전부장·작전처장·작전과장 등이 모두 최고도의 상시대비태세 속에 있어야 하지만 의장을 대리해 이 라인이 제대로 가동되게끔 해야 할 핵심은 작전본부장이다. 본부장을 영어로 DEPUTY CHIEF OF STAFF라 부른다. DEUTY는 그 분야에 지휘관을 대리해 책임을 지는 통제참모로서 참모부장(assistant chief of staff)과는 다르다. 이것이 부장이 아니라 본부장을 둔 취지다. 의장의 직접 결심이 필요한 사항을 제외한 일상의 업무는 작전본부장선에서 끝나야 한다.  

 어떠한 군 구조를 가질 것인가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것이 이 글의 목표나 취지가 아니라는 것은 모두에게 강조한 바 있다. 다만 건설적이고 생산적인 토론의 장을 마련하기 위해 용어와 개념의 통일을 기하며, 수차례 이에 대한 연구에 참여한 경험들을 전수해 참고가 되고자 할 따름이다. 해양국가인 미국·영국 등의 3군병립주의에 기본한 합동군제의 역사적 맥락과 대륙국가인 중국·북한 등의 통합군 체제의 장단점도 감안해 반도국이자 해양국가인 한국의 지정학적 위상과 작전환경에 부응하고, 아울러 한미군사동맹의 연합작전태세를 유지하며 무엇보다도 군에 대한 국민의 여망에 부응해 군의 자율성과 능률, 사기를 높일 수 있는 군 구조를 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을 결론으로 제시하고자 한다.<국방일보 201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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