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천안함 도발에 맞서 한미 해군이 지난 주 서해에서 실시할 예정이던 연합기동훈련이 연기됐다. 이달 말이0088477.jpg나 7월초에 한다지만, 미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CVN-73)이 계획대로 참가할 지가 관건이다. 중국의 강한 반발 때문이다. 중국은 미국의 군사력 투사(Power projection)를 상징하는 항모전단의 서해 훈련을"총을 들고 문 앞을 서성대는 짓"이라고 비판했다. 공산당기관지 인민일보가 발행하는 글로벌 타임스(Global Times)의 표현이다.

우리 국방부는 훈련 연기를"미국 쪽의 준비문제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중국의 반발로 미국이 한발 물러섰다는 관측이다. 정부가 대북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린 것도 같은 맥락으로 분석된다. 정부를 적대하는 이들은 지방선거 결과와 한데 엮어 "무모한 강경책을 떠들다 창피 당한 꼴"이라고 비웃었다.

대북 제재 위한 항모훈련 카드
세상일이 그리 단순할까. 우리 정부는 그렇다 치고, 미국이 그토록 무모하고 어설플까 싶다. 무작정 막강한 항모전단을 서해에 보내려다 낭패 봤다고 여기는 게 오히려 무모하다. 미국은 애초 대북 제재를 관철하기 위해 유엔 안보리 의장국이자 북한의 후견국 중국에'항모 카드'를 슬며시 꺼내 보였을 수 있다. 미국의 단호한 대북 행동을 바라는 한국 정부와 보수여론을 돌보는 효과도 생각했을 법하다.

중국 입장에서 미국의 항모 카드는 글로벌 타임스가 연 이틀 사설로 주장했듯 앞마당을 위협하는 행동일 수 있다. 그러나'항공모함은 동북아에 그림자를 드리운다'는 등의 주장은 다분히 과장됐다. 그래서 허술하다. 북한의 코앞에서 항모전단이 훈련하는 것은 북한에 무엇보다 위협적인 사실은 제쳐둔 채, "미국의 도발적 행위에 중국 대중과 네티즌이 반발한다"고 말하는 건 공허하게 들린다.

서해상의 미 항모전단 훈련은 실로 북한에 가공할 일이다. 10만 톤급 수퍼항모가 이끄는 항모전단(Carrier Strike Group)은 FA-18 전폭기 22~26대와 E-2C 조기경보기 4~6대등 강력한 항공전력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20여기를 지닌 이지스 순양함과 구축함, 프리깃함 6척 이상과 핵잠수함 1~2척으로 구성된다. 북한 서해안은 물론, 북의 심장부 평양도 강타할 만한 전력이다.

구글 어스로 평양 방공망을 샅샅이 파악했다는 기사는 우연한 게 아닌 성 싶다. 삼엄한 방공망도 순항미사일에는 무력할 것이란 분석은 더욱 그렇다. 우리 군의 심리전 재개에'서울 불바다'를 위협하는 북한이 미 항모전단의 서해 훈련에는 조용한 것을 어찌 봐야 할까. 항모전단의 화력지원 아래 해병상륙단이 북한 동해안을 강습하는 것을 가상한 팀스피리트 훈련에 지독한 공포를 겪은 북한 지도부에 평양 공습은 훨씬 두려울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과 중국의 속내를 헤아리면, 안보리 대북제재 수준을 타협하기 위해'항모 포커'를 치고 있는 듯하다. 미국은 위협적인 항모 카드로 중국을 압박하고, 중국은 자신의 안보 우려를 맞상대 패로 내세워 다투는 모양이다.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두 나라는 항모 포커로 남북한 충돌을 막으면서 각기 동맹을 위해 애쓴 인상을 주려는 심산일 수 있다. 은연중 짜고 치는 기미마저 엿보인다.

미ㆍ중 전략게임에 내맡겨서야
중국군 부총참모장 마효천(馬曉天)은 4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 상그릴라 대화에서 천안함 사태와 관련해 게이츠 미 국방장관에게"불을 망치로 끄려는 것은 부질없다"고 말했다. 동중국해와 서태평양의 해군력 경쟁을 가장한 항모 포커의 정곡을 지적했다. 미ㆍ중이 대북제재 수준을 타협하고 나면 서해 훈련은 항모전단 일부만 참가할 공산이 크다.

지극한 평화론자들은 반길 것이다. 다만 도발 대응을 비롯한 우리 자신의 문제를 늘 주변국의 전략적 포커 게임에 맡기는 게 진정 행복한지 궁금하다. 보수든 진보든 평화, 자주, 이기심 따위를 다시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강병태 논설위원실장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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