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살 빼기는커녕 오히려 부대 늘리기 한반도 안보 현실 고민 없이 말뿐인 개혁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출처 : 주간동아 http://weekly.donga.com
충북 장호원의 외진 산골짝에 최근 못 보던 초현대식 건물의 군 교육기관이 들어섰다. 11만3290m2(약 3만4000평)에 본청, 학 습관, 생활관, 편의시설 등 건물 16개 동이 있다. 강의실은 최대 500명을 수용할 수 있으며, 어학종합실습실에서는 300여 명이 동시에 실습할 수 있다. 전자칠판과 오디오시스템을 설치해 컴퓨터 기반 학습도 가능하다. 그 밖에 체력단련실과 테니스장, 국궁장 등의 체육시설, 24시간 학습과 휴식이 가능한 어학생활관을 갖춰 국제 수준의 문화 활동도 가능하다. 이는 세계적 수준의 어학기관으로 도약한다는 국방어학원의 모습이다. 올 12월 군 고위층과 지역 유지들이 참여해 성대한 개관식을 치를 예정이다.
‘고무신사령부’도 창설될 판
군에 굳이 이런 어학 교육기관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전투형 군대’ 육성을 위해 육·해·공군 장교의 합동성을 강화한다는 게 그 이유란다. 8월 29일 발표한 ‘국방개혁 기본계획(2012~2030)’의 국방부 설명자료 4쪽에 나오는 대목이다. 합동성을 강화하려면 각 군의 어학 과정을 통합해야 하고, 그러니 새로운 교육기관이 필요하다는 논리다.
그렇다면 민간에 위탁해도 될 어학 교육을 군이 직접 하는 이유는 또 뭘까. 일반 영어와 군사 영어가 다르기 때문이란다. 이렇게 되면 육군 대령급 기관장을 새로 임명하고, 시설 유지와 경계, 기자재 운영에 추가로 국방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전투형 군대가 육성된다는 발상이 참 흥미롭다.
국방개혁안을 발표한 다음 날인 8월 30일, 공군전우회가 주관하는 조찬 세미나가 열렸다. 이 자리는 전날 발표한 국방개혁안에 대한 성토장이나 다름없었다. 특히 김혁수 전 해군 준장은 “우리 군은 사령부공화국이다. 최근 국방부 군종병들 사이에서는 군종사령부가 창설될 것이라는 소문이 나돌고, 심지어 병사들 애인들까지 관리하는 고무신사령부까지 생길 것이라는 우스갯소리가 있을 정도”라고 개탄했다. 그에 따르면, 각 군 기능을 통합한 새로운 통합기관, 또는 기능사령부를 창설하면 경제성이나 전문성이 떨어지고, 오히려 옥상옥의 비효율적 지휘구조를 만들 뿐이다. 예를 들어, 지난 정부에서 의무사령부를 창설하자 병원에 있어야 할 군의관과 의정조직이 사령부로 옮겨가 일선 군병원은 오히려 황폐화됐다는 주장이다.
원래 국방개혁이란 국방 운영 전반에서 거품과 군살을 제거해 효율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우리나라에서는 국방개혁이 추진되면 못 보던 기관이 우후죽순 생겨난다.
1990년 ‘818군제개편’ 이후 지금껏 국방개혁이 이뤄진 결과 정보사령부, 수송사령부, 조달본부(방위사업청), 지휘통신사령부, 사이버사령부, 의무사령부, 심리전부대, 체육부대, 복지단, 전쟁기념관, 합동참모대학 같은 기능조직이 팽창했다. 야전 인력이 줄어드는 동안 중앙 지원조직은 몸집을 불려온 것이다.
그러면 늘어난 중앙 지원조직만큼 각 군의 유사 기능이 줄어야 하는데, 줄기는커녕 각종 기능이 중첩된 비효율적인 구조가 만연해 있다. 노태우 대통령 시절의 818군제개편 취지는 간편하고 경쾌한 군 지휘구조로 개혁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것을 부대 수와 장교의 진급 공석을 늘리는 방향으로 악용한 이래 국방개혁은 무엇을 새로 만드는 것, 더 복잡해지는 것, 더 비효율적인 것으로 변질되기에 이르렀다. 부대와 기관만 늘어난 것이 아니라 각종 비공식, 비편제 조직도 음성적으로 확대됐다. 건군기념사업회, 국방개혁위원회, 군사혁신단, 제대군인지원센터, 국회연락단 등 우리 군 운영에 깨진 유리창이라 할 수 있는 각종 태스크포스(TF)와 비편제 조직이 생겼다 없어졌다를 반복했다.
현장은 한 명 지휘관은 여럿
이명박 정부에서 세 번째 국방개혁인 ‘국방개혁 기본계획(2012~2030)’도 예외가 아니다. 새로 창설하는 기능 부대가 육군 1개(산악여단), 해군 1개(잠수함사령부), 해병대 2개(제주도 해병대사, 항공단), 공군 3개(전술항공통제단, 항공정보단, 위성감시통제대) 등 7개나 된다. 이명박 정부 들어 이미 서북도서방어사령부, 합동군사대학, 사이버사령부가 신설됐다. 현 정부에서 새로운 기관이 10여 개 출현하는 셈이다. 부대 창설이 붐을 이루는 국방개혁안이라는 자체도 해괴하지만, 정권 말기에 군에 대한 선심정책을 편다는 느낌도 지우기 어렵다.
그렇다면 부대 수가 증가하는 만큼 안보는 더 튼튼해질까. 연평도 포격사건을 겪은 군은 2011년 6월 15일부로 병력 2000명의 서북도서방위사령부를 창설했다. 청와대 국가안보총괄점검회의가 ‘적극적 억제전략’이라는 국방개혁의 일환으로 밀어붙인 것이다. 해병대사령관이 겸임하는 이 사령부를 창설하는 과정에서 병력이 모자라자 해병 1, 2사단에서 병사를 차출했다. 서북도서와 해안 경계를 담당하는 해병 2사단은 총 9개 대대 중 7개를 이미 전방경계에 투입했기 때문에 육군 같은 3교대 시스템(경계대대, 교육대대, 예비대대)을 운용할 수 없다. 그런데 새로운 사령부로 병력이 빠져나가자 업무가 과중해지고, 장병의 스트레스가 커졌다. 사령부 창설 다음 달인 7월 강화도 2사단에서 끔찍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진 것도 그 여파로 보인다. 이 사건 이후 해당 부대에서는 간부들이 자살하는 사건이 이어졌다. 피로감이 한계에 달한 결과 스스로 붕괴하는 조짐을 보인 것이다.
반면 서해에서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해무가 짙었던 2011년 8월 10일 북한이 연평도 동북 방향 북방한계선(NLL) 부근으로 포탄 3발을 쐈다. 이에 누구의 지휘를 받고 대응해야 하느냐는 문제로 연평부대는 혼란에 빠졌다. 북한 포탄이 연평도로부터 2km 이내에 근접해 떨어졌다면 지휘관은 서북도서방어사령관이지만 그보다 먼 거리에 떨어지면 해군 2함대사령부가 사격을 통제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후 화상작전회의를 통해 중장인 해군작전사령관은 “NLL 이북으로 10발”, 소장인 2함대사령관은 “NLL에 3발”, 중장인 서방사령관은 “NLL 이남으로 3발”을 쏘라고 지시하고 간섭했다. 대령인 연평부대장에게 별 8개가 다른 지시를 내린 것이다. 이렇게 몸살을 앓는 해병대의 실상을 알면서도 이번에 돌연 제주에 해병대사령부를 창설하겠다고 국방개혁안에 포함한 것은 또 무슨 생뚱맞은 발상인지 어리둥절해질 뿐이다.
나폴레옹은 “똑똑한 장군 2명이 지휘하는 것보다 멍청한 장군 1명이 지휘하는 것이 낫다”고 말한 바 있다. 현장에서 싸우는 사람은 한 명인데 지휘하는 사람이 여러 명이면 군대는 망하게 돼 있다. 그런데 우리 군의 개혁 방향은 싸우는 사람은 줄이고, 간섭하는 사람은 늘리는 방향으로 진행됐다.
이번 국방개혁안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은 군 상부구조 개편이다. 각 군 참모총장이 합참의장의 지휘를 받도록 지휘계선상에 포함된 것이다. 이렇게 개혁을 추진하면 육군 지휘부는 지상작전사령부와 2군, 수도방위사령부(수방사), 특수전사령부(특전사), 항공작전사령부(항작사)와 동원병력 110만을 지휘한다. 그런데 지휘계선상에 육군 대장 4명(합참의장, 참모총장, 지상작전사령관, 2군사령관)과 육군 중장 수십 명이 포진하게 된다. 100여 개가 넘는 별이 전부 지휘계선상에서 각자 의견을 내는 끔찍한 혼란이 예상된다.
공군의 경우 4성 장군인 참모총장이 3성인 미7공군사령관 통제를 받아야 하는 상황이 초래될 뿐 아니라, 오산 공군작전사령부와 계룡대 총장실을 오가며 두 가지 일을 수행해야 한다. 지휘단계는 해·공군은 4단계, 육군은 5단계로 늘어나는 것으로 매우 비정상적이며, 비효율적인 사태가 초래될 우려도 높다.
이것으로 끝이 아니다. 각 군의 군수·교육기관을 통합해 국군 군수사령부와 교육사령부를 창설한다는 개혁안이 이번엔 삭제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보류하는 것이다. 이전 개혁안에서는 이 사령부들을 창설하려고 국회에 개정 법안을 제출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법 개정 없이도 가능하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에 이번 개혁안에서는 삭제된 것으로 보인다.
‘합동군사대학’ 파행 가능성
이와 비슷한 꼼수는 더 있다. 18대 국회 당시 국방부는 합참의장 지휘를 위한 군정권의 명문화를 밝혔다. 하지만 이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의장에 대한 군정권 부여를 포기하겠다”며 물러선 바 있다. 그러나 19대 국회에 제출된 법안은 ‘합참의장의 지휘를 위한 최소한의 기능을 부여하되 이는 대통령령으로 구체화’하도록 했다. 성가신 국회 개입을 피하려고 ‘지휘를 위한 최소한의 기능’이라고 표현하고 이를 국방부가 원하는 방향으로 시행령에서 정해 군정권을 부여하려는 꼼수 입법이다.
이렇듯 우리 국방의 오랜 악습인 부대 수 늘리기는 필연적으로 고급 장교의 공석 늘리기로 이어지고, 병력 감축 계획을 지연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원래 이전 국방개혁안에서는 육군 병력 수를 2020년까지 51만7000명으로 감축하기로 돼 있었으나 이번에는 2022년까지 52만4000명을 유지한다는 계획으로 슬며시 바뀌었다.
법치의 실종은 국방 운영에서도 파행과 난맥을 드러낸다. 합동성 및 연합작전 능력을 목적으로 기획된 합동군사대학은 원래 기존 합동참모대학과 육·해·공군 대학을 총망라해 조직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러나 국방대 설치법이 개정되지 않자 국방부는 합동참모대학만 제외한 채 육·해·공군 대학을 모아 합동군사대학을 설치한 것이다. 그것도 국회 간섭을 받지 않으려고 합동군사대학교령을 통해 조직했으나, 그 조직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합동참모대학은 별도로 운용한다. 현재 국방대 설치법 개정안이 국회에 발의됐으나, 만일 이것이 통과되지 않는다면 합동군사대학은 애초 목적을 상실한 채 파행적으로 운용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조직 늘리기가 계획대로 다 진행될 경우, 2020년경 우리 군은 어떤 모습일까.
이명박 정부 초기 국방부 조직관리관실에서 국방부와 직할부대 등을 대상으로 조직 진단을 실시한 바 있다. 그 결과, 군 대령 3000여 명 가운데 일선의 전투 직위로 명확히 분류되는 직위 보직자가 400명도 되지 않았다. 나머지 2500명 이상을 무슨 사령부의 참모, 정책 직위, 파견, 교육 등으로 분류하고 나면 실제 싸우는 대령은 10%가 조금 넘을 뿐이다.
육군의 경우 병력 52만을 유지한다지만 실제 전방 전투부대에 배치된 전투 병력은 30만 명 수준이고, 나머지 20만 명은 후방에 있다. 육군 부대구조가 개편될 경우, 전방 전투병력은 20만 명 이하로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전투와 무관한 복지시설, 창급 군수기관, 범죄·환자 등 여러 사유로 비전투병력을 유지해야 하는 현재의 징병제하에서는 국방개혁이 추진된다고 해도 거품과 군살을 수술할 수 없는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는다. 징집된 병사 사이에는 공짜라는 인식이 팽배해 있고, 공짜로 자원을 주면 반드시 낭비하게 돼 있는 속성 탓에 실효성 없는 기관에 병력을 배치하게 된다. 이 점에 비춰보면 차라리 모병제로 전환해 군 전반에 직업주의를 확립하고, 군 전문성을 제고하자는 야당 경선 후보의 주장이 마냥 터무니없는 것만은 아니다.
군대만 조직 늘리기에 몰입하는 것은 아니다. 공무원으로 이뤄진 국방부 직할기관이나 외청도 비슷한 흐름이다. 대표적인 국방개혁 사각지대는 국방 획득 기관이다. 국방개혁이 발표된 직후 현 정권은 앞으로 국방 연구개발을 민간에 이관하겠다고 발표했다. 2010년 10월 발표한 미래기획위원회의 ‘국방산업 선진화전략’의 재탕이다. 2년 전에도 똑같은 구상을 발표했으나 작년 국방 연구개발 예산 2조 원 가운데 민간이 주도적으로 참여한 사업에 배정한 예산은 172억 원으로 1%도 안 된다. 어차피 실행하지도 않을 개혁안을 공염불로 만든 상황에서 민간의 역량 참여를 확대한다는 이 개혁안을 누가 믿겠는가,
여기에 방위사업청은 현재 TF 조직 형식으로 운영 중인 기술이노센터를 방산기술진흥원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또 다른 조직 팽창 노림수를 드러내고 있다. 가뜩이나 기술이노센터의 인적, 물적 구성이 부족해 그 실효성에 논란이 이는 상황에서 기술진흥원으로 확대 개편하는 것은 또다시 몸집 불리기로 비효율 집단을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다.
관리 위주 군 기득권 유지에 급급
사실 최근 홍상어 개발 부실 문제 등 국산무기개발의 부실은 민간에 투자돼야 할 국방 연구개발비를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가 관리비로 가로채고, 민간에는 저가 입찰, 납품 단가 후려치기, 가혹한 원가 절감 요구로 불량을 조장한 데서 비롯됐다. 그렇다면 방사청과 국방과학연구소의 기득권을 줄이고 민간 연구개발 실비를 보장하면서 연구개발 기간을 늘리면 문제가 해결되겠지만, 현재 이들 국방 획득 기관은 전혀 그럴 의지가 없어 보인다. 이렇게 되면 앞으로도 불량 무기개발의 악순환은 계속될 테고, 우리 군 전력에도 심각하고 치명적인 악영향을 초래한다.
이러한 일련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왜 정권 말기에 국방개혁안을 새로 발표하느냐는 의문이 커진다. 국방부 설명대로라도 이번 국방개혁안은 뭔가 새로운 방향을 담았다기보다 3년마다 북한의 군사 위협과 국내외 안보 및 국방환경 변화를 평가해 개혁안을 수정, 보완하도록 한 ‘국방개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내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지난 3년간의 안보환경 변화에 대한 어떤 고민이 담겨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2015년 전시작전권 전환을 준비하면서 미국과 한국의 변화된 안보환경에 대한 고민이 담겼어야 한다.
미국은 이미 앞으로 2조5000억 달러의 정부예산을 강제로 감축하는 세출예산 통제에 진입했고,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분야가 바로 국방이다. 그런데 한국의 위기관리는 크게 미국의 세 가지 지원에 의존한다. 현재 주둔하는 주한미군, 미국의 정보 제공, 유사시 증원 전력이다. 이 가운데 뒤의 두 가지가 매우 취약해진 상태다. 당연히 비상대책을 수립해야 할 상황인데, 현재 국방부는 이런 논의를 금기시하고 있다. 미국의 패권 유지 역량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지 않으려 하는 미국 추종 일변도의 이데올로기적 관성 때문이다. 감히 누가 미국의 국방력이 약화되고 있다고 입에 올리겠는가. 대외적 안보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국방부에는 남의 일인 것이다.
관리 위주, 기득권을 고려한 이번 국방개혁안에는 우리의 안보 현실에 대한 성찰과 반성, 고민이 실종됐다. 북한의 비대칭 위협에 대해 수세적 방어에서 공세적, 적극적 방어로 전환한다는 개혁의 취지도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