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평도 포격도발 2주기 특별 시사안보 교육 ③ / 국방일보 2012.11.19
두 눈에 박혀있는 2010년 11월 23일은
계속 정지 한 채 두 눈에서 잠자고 있다.
그 날의 우리 모두는 최고였고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군인
대한민국의 아들이었다.
- 연평부대원들이 남긴 그 날의 기록 중에서-
▶우리는 용감했다!
2010년 11월, 맑은 초겨울 23일. 연평부대 포7중대 대원들은 한 해를 마무리하는 정기 사격훈련 중이었다. 평소 수없이 반복해 오던 절차대로 민첩하게 움직였고 K-9 자주포의 포신은 사격구역을 향해 불을 뿜어냈다. 사격훈련이 거의 끝나갈 무렵, 대원들은 마지막 사격을 위해 포를 정비하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차가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방탄모 아래로 먼지가 뒤섞인 적갈색 땀방울이 쉼 없이 흘러내렸다. 낯선 정적이 흐르더니 갑자기 엄청난 굉음과 함께 충격이 포상을 때렸다. 적의 기습적인 포탄사격이었다.
“꽝 소리와 함께 지면과 사지가 흔들렸고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는 화염이 어깨 선상까지 포 내부로 올라온 상태였다. ‘이러다 진짜 죽겠구나. 하지만 난 해병이다. 그래 내가 할 수 있는 한에서 최선을 다해 보자’는 생각이 스쳐갔다. 화염과 굉음 속에서도 적에게 즉각 대응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여기저기서 파편이 튀었고, 적의 포격으로 화염이 포 내부까지 올라와 방탄모 외피와 턱끈에 불이 붙어 타들어 갔지만 대응포격의 방아쇠를 놓을 수는 없었다.” 포격과 화염의 공포 앞에서도 굴하지 않은 임준영 상병의 이야기이다.
“군복무 중 마지막 휴가를 위해 선착장에서 여객선이 출발하기를 기다리던 마음은 다급해져만 갔다. 평소와는 다른 포성과 여러 곳에서 동시에 올라오는 연기를 보니 무엇인가 이상하다! 휴가계획으로 들떠 있던 마음은 이미 한 시라도 빨리 부대로 복귀해 전우들과 함께 대응사격을 해야 한다는 조급함으로 바뀌었다. 주변을 둘러봐도 부대로 돌아갈 차편은 보이지 않았다. 방법이 없다. 가까운 초소까지 가면 부대로 데려다 줄 것이라는 생각에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뛰기 시작했다. 포성이 점점 가까워지고 몸을 울리는 진동도 그만큼 강해졌다. 어느 순간, 눈앞에서 하얀 섬광이 번쩍하며 몸이 길 옆으로 튕겨져 나갔다. ‘빨리 부대로 가야 한다’는 생각뿐. 그러나 다리에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다. 정신은 조금씩 혼미해져만 갔다.” 故 서정우 하사는 이렇게 우리 곁을 떠났다.
“지통실에서도 ‘쿵’ 하는 소리와 함께 건물 전체가 흔들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걸 직감하고 1층으로 뛰어 올라가 포상을 바라봤다. 바로 눈앞에 보이는 연병장과 포상이 시꺼먼 연기로 뒤덮여 있었다. 순식간에 주둔지 주변과 인근 마을까지 파열된 포탄이 날아가고 화염이 치솟는 걸 볼 수 있었다. 즉각 병력들에게 소산명령을 내리고 이상 유무를 파악했다. 지통실에 다시 내려오니 몇몇 병사들이 어찌할 바를 몰라 나를 바라보았다. 그들의 눈은 당혹스러움과 긴장감이 가득 차 있었다. “뭘 긴장하고 그래? 사격해 싸워서 이기면 될 거 아냐?” 하면서 씨익 웃었다. 대원들도 따라 웃었다. 즉각 대응사격을 명령하고 다시 상황을 파악했다.” 침착하게 대응사격을 이끌었던 포7중대장 김정수 대위의 이야기이다.
“포탄이 떨어지는 그 순간에도 너나 할 것 없이 자신의 몸을 아끼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 부상자들을 안으로 끌고 들어왔다. 전원이 들어오지 않아 봉합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지만 전우들이 흘린 피로 바닥이 흥건하게 젖어 가는데 손을 놓을 수는 없었다. 건물 바로 옆 유류탱크에 불이 붙고 포탄의 파편이 건물 안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도 피하지 않고 부상병 치료에 전념했다. 한 명이라도 더 살려야 했다. 함께 생활하던 장병들이 부상을 당한 것을 보자 억울함과 분통함이 치밀어 올랐다.” 아비규환 속에서 부상자들을 치료한 외과군의관 권두원 대위의 이야기이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적의 포성이 멎었다. 그러나 평화롭던 연평도는 이미 황폐한 마을로 변해 있었다. 포격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도 연기와 화염으로 뒤덮인 마을에서 대피시킨 주민들의 안전과 인원수를 확인하고 긴급물자를 지원했다. 그날 밤 대부분 주민들이 병원선, 해경정 및 개인선박을 이용해 섬을 빠져나갔다. 남아 있던 민간인들은 선착장으로 이송하여 해군함정에 탑승시켜 인천으로 대피시켰다. 마치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를 연상시켰다. 인천으로 몸을 피하던 한 주민은 내게 연평도를 끝까지 지켜 달라고 당부하며 눈물을 흘렸다. 정말 너무나 마음이 아팠다. 우리가 좀 더 강했더라면 주민들이 왜 삶의 터전인 고향을 등지고 떠나야만 했을까. 그런 모습을 보고 우리가 더욱 강해져야 주민들을 지킬 수 있다고 다짐했다.” 포격을 뚫고 마을로 달려가 주민들을 대피시킨 김찬호 상사의 이야기이다.
▶우리 안에 잠재된 전투정신
연평도 포격도발은 6ㆍ25전쟁 이후 우리 영토에 대해 직접적인 공격을 해 온 최초의 도발이었다. 우리 모두가 다양한 유형의 도발에 대비하여 실전적인 훈련을 수없이 반복해 왔지만 실전경험은 처음이었다. 1년에 300여 회를 반복한 전투배치훈련으로 동작 하나하나가 습관처럼 몸에 배었지만, 적의 포탄이 쉼 없이 떨어지고 화염이 치솟는 실제 전투상황과 같을 수는 없었다.
그러나 포7중대원들은 모두가 하나같이 ‘지금 나가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을 과감히 떨쳐내고 각자 맡은 바 임무에 충실했다. 무엇이 이들로 하여금 극한상황 속에서도 즉각 대응사격을 할 수 있도록 만들었을까? 이는 바로 장병들이 끊임없이 반복해 온 숙달훈련의 결과이며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전투의지의 발현인 것이다. 적의 포격에 진지가 불타오르는 것을 본 순간, 동고동락하던 전우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모습을 본 순간 내 안에 잠들어 있던 차가운 분노가 죽음의 공포를 누르고 적진을 향해 두려움 없이 돌진하게 만든다. 위기의 순간을 승리로 전환하도록 만들어 주는 ‘전투정신’은 우리 장병 모두의 뜨거운 심장 안에 내재되어 있다. 우리가 지향하는 ‘전투형 군대’의 핵심은 우리 안에 내재되어 있는 전투정신을 일깨워 한계를 극복하는 전투력으로 발현시키고자 하는 데 있다. 연평부대 해병전우들은 북한의 기습적인 포격도발에도 침착하고 용감하게 응전하여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모두의 귀감이 되었다.
▶우리는 승리했다!
지난 10월 18일 연평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연평부대에 오니 마음이 든든하다. 북한이 다시 도발하면 여지없이 반격하라”며 격려하셨다. 기습적인 포격도발을 감행했던 북한군은 우리보다 더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났다. 故 서정우 하사와 故 문광욱 일병 등 해병전우들은 단 한 번도, 누구도 경험하지 못했던 적의 포격도발을 극복하고 승리한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공격했던 연평도는 “그래! 북한 놈들아 한판 붙자!”며 소리치는 우리 장병들이 확고한 대응태세를 갖추고 지키고 있으며, 연평도 주민들이 여전히 평화를 누리며 살고 있다. 또한 위험이 따른다는 것을 알면서도 젊은이들의 해병대 지원율은 이전보다 오히려 더 높아지고 있다.
포격에 부서지고 불에 탄 고향 연평도를 등지고 떠나야만 했던 주민들도 모두 돌아왔다. 연평도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은 이전보다 더 강해졌다. 잃었던 삶의 터전을 되찾은 주민들은 또다시 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도망가지 않고 장병들과 함께 지키겠다고 말한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도발에 맞서 우리는 승리했다.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순간이 온다면 일전불사의 전투의지로 적의 도발원점과 지원세력까지 초토화시켜야 한다. 우리는 싸워 이길 수 있다!
“조국 수호를 위한 뜨거운 염원을 가슴에 품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젊은 영웅들이여, 그대들의 숭고한 희생으로 인하여 우리가 이곳에 편히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조국은 절대 잊지 않을 것이니, 부디 저 하늘에서 평화의 수호신이 되어 우리를 굽어보며 편히 쉬소서.”
-연평도 전사자 위령탑 추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