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을 거슬러 올라가 보면 그때 역시 백령도를 비롯한 서해 5도는 북한의 위협에 위기감이 높았었다. 특히 김일성의 회갑이던 1973~4년을 즈음해서는 그의 아들 김정일이 김일성에게 서해 5도를 바치겠다고 공언함에 따라 백령도 상공에는 북한의 미그 전투기가 공공연히 나타나 아군을 위협하는 실전적 상황이 전개되곤 했었다. 김정일은 74년 2월 노동당 5기 8차 전원회의에서 김일성의 후계자로 결정됐다.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국방과학연구소(ADD)가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로 추진된 ‘번개사업’의 일환으로 미군의 105㎜ 견인 곡사포를 모방 개발해 73년 시험사격에 성공했다. 이어 그해 12월 이 화포를 백령도에 첫 배치하며 동시에 운용시험을 치렀다. 우리 손으로 최초 개발한 화포는 이렇게 북한의 위협 속에 육군이 아닌 해병대에 첫 배치됐다.

 그후 26년이 지난 99년. 꽃게잡이철로 들어선 그해 6월, 서해상에 전례 없는 긴장이 고조됐다. 이른바 연평해전이 벌어진 것이다. 연평도 근해의 북방한계선을 넘어온 북한 경비정과 우리 해군 간의 밀고 밀치는 공방이 거듭됐다. 마침내 15일 오전 북한 경비정·어뢰정이 북방한계선 2.5㎞ 지점까지 침범하면서 또다시 우리 해군의 고속정과 충돌을 빚었다. 수세에 몰린 북한 경비정이 25㎜ 기관포로 선제사격을 가해 오면서 14분간 진행된 치열한 교전 결과 우리 해군의 완벽한 승리로 끝났다. 제1연평해전이다.

 이 해전에서 패배한 북한 군부는 천 배 만 배의 보복을 공언하면서 함포·해안포 실사격훈련, 기계화부대 기동훈련, 공군훈련을 강화하는 등 보복 준비에 절치부심했다.

제1연평해전은 종료됐으나 이 해역에서의 군사적 대결상태는 은연중 계속됐다.

 급박한 시기, 때마침 ADD는 89년부터 개발에 돌입, 근 10년 만에 최대 사거리 40㎞를 보유한 155㎜ 자주포 K-9의 개발을 완료했다. 군은 육군이 획득하려던 K-9 자주포를 해군(해병대)으로 전환 배치할 것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그해 12월 K-9은 상륙함에 실려 연평도로 향했다. 그런데 이 K-9은 양산품이 아니었다. 긴장이 고조된 상태에서 완제품이 생산돼 나오기를 기다릴 수만은 없었다. 그래서 선택된 것이 시험평가를 완료한 시제(XK-9)를 우선 배치했던 것이다. 105㎜ 견인포가 처음으로 백령도에 배치됐던 것처럼.

 다시 근 10년이 지나 김정일의 아들, 김정은이 북한정권 후계자로 결정돼 모습을 드러낸 것이 지난 9월 말. 그리고 두 달 후인 지난 23일 연평도 포격도발이 발생했고, K-9은 실전 상황에서 불을 뿜었다.

<국방일보 신인호 기자   idmz@dema.mil.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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