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영록 선수 어머니가 부럽습니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뇌수막염을 앓던 훈련병이 행군 복귀 후 타이레놀 2정만 처방받고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해 숨졌다는 연합뉴스 단독 보도 이후 사흘이 지난 19일 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이날도 육군 전방부대에서 잠자던 현역 병사가 갑자기 숨진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화를 건 사람은 숨진 김모(20) 일병의 어머니였다.
김 일병의 어머니는 지난달 27일 아들을 떠나보낸 후 지금까지 정신과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전화기 너머서 흐느끼던 김 일병 어머니는 "기사로 아들 일을 접하는 것도 너무 힘듭니다. 더는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가족의 슬픔이 너무 큽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통화를 마치고 잠시 뒤 김 일병 어머니가 보낸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지금 내가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이 누군지 아세요? 축구선수 신영록 어머니랍니다. 김○○일병엄마 드림'이라고 적혀 있었다.
프로축구 K리그 제주 유나이티드의 공격수인 신영록 선수는 8일 경기 중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신 선수는 여전히 의식불명 상태지만 가족의 목소리에 눈물을 흘리고 손가락을 조금씩 움직이는 등 병세가 호전되고 있다.
아들을 떠나보낸 자신에게는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들 곁을 지켜줄 수 있는 신 선수의 어머니가 세상에서 가장 부럽다는 절규였다.
다음날 아침 이메일 받은 편지함에는 김 일병의 누나가 오전 2시께 보낸 이메일이 도착해 있었다.
김 일병의 누나 역시 "왜 아픔을 들쑤시는지 화가 났습니다. 저희는 너무 아픈데 어떤 이들은 이를 두고 가볍게 말하는 게 너무나도 싫고 마음이 찢어졌습니다"라며 비통한 심정을 털어놨다.
김씨는 이어 "할 수만 있다면 군 전체를 바꿔서 동생 같은 사례가 나오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김 일병의 누나는 "동생의 죽음이 헛되이 되는 것은 정말 바라지 않습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아 저같이 슬퍼하는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일회성 기사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라"라며 부실한 군 의료체계를 심층적으로 파헤쳐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대한민국의 성인 남성은 누구나 국방의 의무를 지닌다. 한창인 나이에 2년간 나라를 지키는 것이 국민의 의무라면 이들을 건강하게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군의 의무다.
그러나 김 일병은 지난달 27일 취침 중 호흡곤란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지 약 3시간 만에 숨졌고 김 일병이 숨지기 사흘 전에는 육군훈련소에서 노모 훈련병이 뇌수막염을 앓다가 세상을 떠났다.
지난 2월에는 노 훈련병과 같은 소대 소속의 정모 훈련병이 중이염을 앓다가 부대에서 외진을 보내주지 않는다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 일병 가족의 바람처럼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연합뉴스는 허술한 군 의료체계의 문제점을 집중 조명하기로 했다. <연합뉴스 kind3@yna.co.kr>
"무기엔 수십조..무기들고 싸우는 병사건강엔 1%도 안써"
원유철 국방위원장 "군 의료예산 대폭 확충하겠다"
(서울=연합뉴스) 김승욱 기자 = 31조4천31억원 대 2천247억원.
올해 총 국방비와 의료 예산이다. 1%가 채 되지 않는 비율이다.
최근 잇단 군내 사망사고로 허술한 군 의료체계가 도마위에 오른 가운데 사각지대인 의료분야의 현실을 고스란히 드러낸 수치다.
눈에 보이는 전력 강화와는 거리가 먼 의료분야 투자에는 인색한 군이 양질의 의료 서비스를 요구하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라는 지적마저 나오고 있다.
29일 국방부가 작성한 '5년간 군 의무예산 현황'에 따르면 올해 국방예산 중 의료분야에 책정된 예산은 총 2천247억원으로 전체의 1.03%에 불과했다. 작년 의료분야 예산은 전체 국방비의 1.09%였으며 2009년 0.93%, 2008년 0.87%, 2007년은 0.72%에 그쳤다.
더구나 국방부는 의료예산 비율을 계산하면서 총 국방비 중 방위력개선비를 제외한 경상운영비만 분모로 잡았다.
무기 구입금액에 해당하는 방위력개선비는 2011년 기준 9조6천935억원에 달한다. 경상운영비 21조7천96억원에 방위력개선비를 더한 올해 국방비 총액 31조4천31억원을 분모로 놓고 의료분야 예산의 비율을 다시 계산하면 0.72%에 불과하다.
마찬가지 방식으로 계산하면 2010년 의료분야 비율은 0.76%(29조5천627억원 중 2천247억원), 2009년은 0.65%(28조9천803억원 중 1천889억원)로 떨어진다.
최근 5년 중 한 해도 의료예산의 비율이 국방비의 1%를 넘지 못한 것이다.
얼마 되지 않는 의료 예산도 세부내용을 들여다보면 꼭 필요한 항목임에도 해가 갈수록 금액이 줄어든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의료예산 중 '의무장비획득' 항목에 배정된 금액은 2009년 543억원에서 2010년 485억원, 2011년 460억원으로 3년 연속 줄어들었다.
특히 군 의료의 핵심인 응급의료 지원을 위한 '의무기동장비획득' 항목에 배정된 금액은 지난해 194억3천700만원에서 올해 164억1천100만원으로 약 16% 감소했다.
반면 '일반의무장비획득' 예산은 지난해 290억1천300만원에서 올해 295억5천800만원으로 증가했다.
96억원이 책정된 올해 '의무시설개선' 예산은 지난해의 절반 수준으로 삭감됐다. 2010년 `의무시설개선' 예산은 196억원이었으며 2009년은 153억원, 2008년 293억원, 2007년 178억원에 달했다.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은 "병사는 군인이기 이전에 국민이다. 무기 사는 데는 수십조원씩 쓰는 군이 무기를 들고 싸워야 하는 병사의 건강을 위해서는 그 100분의 1도 쓰지 않으려 한다"고 비판했다.
원유철 국회 국방위원장은 "허술한 군 의료체계를 개선하고 병사의 진료 접근권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하겠다. 특히 정기국회에서 '의무장비획득' 분야와 '의무시설개선' 분야 등 부족한 군 의료예산을 대폭 확충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