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 안용현 기자 | 입력 2011.05.30 03:14 | 수정 2011.05.30 17:06
1999년 정보사령부 정모 중령이 북한 핵 시설이 모여 있는 영변에 침투해 흙과 물을 가져오는 데 성공했으나, 이후 중국 에서 북한 미인계에 걸려 납북(拉北)된 적이 있다고 29일 정부 소식통이 전했다. 정 중령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2000년대 초 남북 간 물밑 접촉 덕분에 풀려난 것으로 알려졌다. '작계 5027' 등 군사기밀을 북한에 넘긴 혐의로 기소된 박채서(57·일명 흑금성)씨의 지난 19일 재판에서 "1999년 우리 영관급 장교 4명이 북한에 납치됐다"는 전 언론인의 법정 증언이 나왔지만, 사실은 정 중령 1명이 납북됐다가 석방됐다는 것이다. 국방부도 "영관급 4명이 납북된 적은 없다"고 밝혔다.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당시 정 중령 등 영관급 장교와 부사관들은 영변 핵 시설 주변의 방사능에 오염된 흙과 물을 가져온 공로로 무공훈장을 받았다. 정부는 그들이 가져온 시료를 분석해 북한의 핵개발 상황에 대한 정확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고 한다. 정 중령은 이후 납북 과정에서 미인계에 당한 데다 우리 군사기밀을 토해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됐다. 하지만 영변의 철통 경계를 뚫고 흙과 물을 가져온 공이 워낙 커 귀환 이후 특별한 문책을 받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정 중령은 평북 구성시 용덕동의 고폭(高爆·고성능 폭약)실험장 흙도 가져온 적이 있다고 한다. 고폭 실험은 플루토늄 핵폭탄을 만들 때 필수적인 과정이다. 소식통은 "그는 현재도 군에서 근무 중이며 곧 전역할 예정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차 핵위기 당시인 1990년대 초 북한은 영변 원자로에서 나온 폐연료봉을 한 차례만 재처리해 핵무기 원료가 되는 플루토늄을 80g 추출했다고 국제 사회에 신고했었다. 그러나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사찰 과정에서 채취한 영변 흙을 분석한 결과, 세 차례에 걸친 재처리로 킬로그램(㎏) 단위의 플루토늄을 확보한 사실을 적발했다. 당시 북한은 소량의 흙만으로도 고도의 분석이 가능하다는 점을 간과했다고 한다.
1990년대 남북은 북·중 국경에서 치열한 첩보전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과 정보사 등은 북한 핵심 인물의 탈북에 개입하거나 평양의 고급 정보를 직접 입수했다고 한다. 대북 소식통은 "1997년 2월 황장엽 노동당 비서의 탈북과 같은 해 8월 이집트 주재 북한 대사였던 장승길의 미국 망명, 1998년 2월 국제식량기구 북한 대표부 김모씨의 한국 망명 등에 우리 정보 당국이 개입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김정일은 국가안전보위부의 '반탐(反探·간첩색출)요원'들을 중국에 파견해 우리측 활동에 대응하면서 중국측에 강력 항의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중국이 우리 대북 정보망 거점이던 랴오닝성(遼寧省) 선양시의 모처를 급습해 우리측 요원들을 대거 붙잡은 사건도 이 무렵 일어났다. 정보 소식통은 "당시 큰 타격을 입었던 중국 내 대북 정보망은 지금까지 완전 복구가 되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