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전(實戰)의 무대 ‘육군 과학화 전투훈련장’을 가다

특전사·해병대 깨고 ‘27전 전승’ … ‘대항군’은 눈빛이 달랐다

 

전투는 밤에 시작된다

 

경상으로 분류돼 가슴에 붕대를 감는 훈련군 병사. 경상자는 응급조치를 하면 10분 후 전투를 재개할 수 있다.

식사를 마칠 때쯤 비가 그칠 조짐을 보였다. 달도 없고 별도 없는 하늘. 그래서 땅과 하늘이 구분되지 않는 이곳에 1000명에 이르는 젊은이가 양쪽으로 갈려 모여 있다. 이들은 대대장이 어떤 전술을 구사하는가에 따라, 그들 스스로가 얼마나 주의 깊고 끈질기게 행동하는가에 따라, 그리고 그의 운에 따라 전사할 수도 있고 영웅이 될 수도 있다.

양쪽은 이미 침투조를 투입했을 것이므로 좀 지나면 양측의 포 사격이 시작될 것이다. 포 사격은 양쪽 대대 뒤에 연대와 사단에서 나온 포병부대가 해주는 것으로 가정한다. 포 사격은 무성(無聲)으로 이뤄진다. 즉 침투조가 타격 지점을 불러주면 잠시 후 그곳으로 포탄이 떨어지는 것으로 가정하는데, 이때 포탄 낙하 예상지점 60m 반경에 있는 병사들의 마일즈 유닛에는 일제히 포탄 낙하를 알리는 신호가 울린다.

병사들은 숨을 공간을 찾는데, 이때 은폐를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전사나 중상을 입은 것으로 처리돼 더 이상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다. 작렬하는 폭음이 아니라 팔뚝에 찬 마일즈 유닛의 가는 소리에 병사들은 귀를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침투하는 정찰조와 포탄을 피하기 위해 움직이는 병사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으려면 플래시를 터뜨려야 하지만, 이렇게 되면 훈련이 엉망이 되고 만다.

취재진은 취재를 접기로 했다. 쌀쌀한 날씨 탓에 오늘 밤 병사들은 거의 잠을 자지 못할 것이다. 병사들에게는 상대뿐만 아니라 날씨를 포함한 자연조건도 거대한 적이 된다. 그 거대한 적은 오늘 밤 양쪽의 대대장 가운데 한 사람을 운 좋은 지휘관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제2부 둘째 날 - 초월공격 개시, 병사는 없고 연막만 피어올랐다

다음날 오전 7시쯤 취재진은 훈련장으로 들어갔다. 날씨는 개어 있었지만 온도는 여전히 낮았다. 궁금한 게 많았다. ○○사단 대대는 어디로 주공과 조공을 보냈을까. 양쪽 침투조는 밤새 어디까지 접근했을까.

훈련장으로 달려가는 지프에서 본부와 교신한 정훈장교는 “훈련군 대대장이 한 중대본부를 방문했을 때 대항군 침투조가 포 사격을 유도하는 바람에 대대장을 비롯한 다수가 전사했다. 훈련군 대대장이 너무 일찍 전사하는 바람에 다시 그를 살려줘 공격을 개시하게 했다”는 소식을 전해주었다. 역시 훈련군은 대항군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가. 과훈단에서 훈련군 대대장 전사는 비일비재하다고 한다.

 

초전에 전사한 훈련군 대대장

지프가 달리는 도로 좌우 풀밭은 밤새 내린 눈이 살짝 얼었고 그 위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대항군을 상대하는 ○○사단이 저런 처지일까. 정훈장교는 “임무 수행을 재개한 ○○사단 대대장은 두 개의 개울이 만나 넓은 개활지가 펼쳐진 곳으로 주공을 투입했다. 그런데 대항군은 철조망을 쳐놓은 곳으로 훈련군이 올 것으로 예상하고 그 쪽에 많은 병력을 포진해놓았다. 개활지 쪽에는 1개 소대 정도뿐이라는데 잘 하면 훈련군이 대항군의 1참호선을 뚫을지도 모른다”고 설명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사단 대대장은 철조망이 쳐진 곳으로 2개 소대의 조공만 보내고 나머지 3개 중대 병력의 주공은 개활지 방향으로 투입했다. 3대 1, 4대 1의 비율로 증강한 주공을 적은 숫자의 적이 지키는 곳으로 집어넣은 것이다. 취재진은 가장 큰 전투가 벌어질 개활지 부근으로 지프를 몰았다. 오전 7시30분쯤이었다.

공기는 날카로울 만큼 상쾌했다. 청명한 햇살이 대항군이 있는 산쪽을 비추고 있었다. 그 덕분에 산 아래 숲 속에서 ‘어정거리는’ 대항군 병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반대로 훈련군이 넘어오기로 한 쪽은 완전히 응달이어서 대항군 쪽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다. 하늘은 훈련군을 돕고 있었다. 그런데 8시가 넘어도 ○○사단 병사들이 나타나지 않았다.

무료했다. 이따금 멀리 떨어진 산 위에서 “빵” 하는 소리와 함께 연막이 치솟았다. 포탄이 떨어진 것을 가정하기 위해 관찰통제관이 권총으로 연막탄을 쏜 것이다. 그 소리마저 없다면 전쟁터라는 느낌이 들지 않았을 것이다. 그 순간 가벼운 폭음이 들리기에 돌아보니, 사진기자가 껄껄 웃으면서 “대인지뢰 실을 건드렸어. 진짜로 대인지뢰에서 ‘펑’하고 폭음이 나네”라고 말했다. 사진기자가 ○○사단 병사 대신 대인지뢰를 건드려 전사했다, 칠칠찮게시리.

 

심심해진 취재진은 개울을 건너 대항군을 찾아갔다. 대항군 병사들은 A텐트를 쳐놓은 곳에서 한가로이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일전을 앞둔 긴박감을 느낄 수 없었다. 한 병사를 붙잡고 “왜 ○○사단은 진격해오지 않느냐”고 물으니, 그는 “지난 밤 우리 편 단도화기사격조에 걸려 그들 대부분이 궤멸됐습니다. 저들은 절대로 우리 선을 돌파하지 못합니다. 저들의 선두는 30분 정도 지나야 겨우 도착할 겁니다”라며 여유를 부렸다.

북한군은 습격조와 단도화기사격조 두 개의 침투조를 사용한다. 습격조는 적진 깊숙이 침투해 적정(敵情)을 살피고 공격준비사격을 유도한다. ○○사단 대대장이 초전에 전사한 것은 대항군 습격조의 활약 때문이다. 습격조는 포 사격 유도가 주임무인지라 적과의 교전은 최대한 피한다.

대항군이 설치한 1참호선을 휴전선에 비유해 설명하면 GOP 경계부대들이 늘어서 있는 남방한계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남방한계선 앞에 비무장지대가 있는데 그곳에는 수색중대가 포진한 GP가 있다. 이곳 훈련장에서 GP 부대와 유사한 기능을 하는 것이 단도화기사격조다. 이들은 제1참호선 600~800m 앞에서 적군을 기다린다. 이들은 적이 나타나면 바로 교전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 통과시킨 다음 뒤에서 공격한다. 이러한 기습이 시작되면 상대 병사들은 방향을 바꿔 응전하느라 공격대형이 와해된다.

단도화기사격조는 게릴라처럼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고 저격수처럼 정확한 사격을 하기 때문에, 공격준비 사격으로 타격을 입은 상대는 다시 적잖은 병사를 잃게 된다. 경험 많은 대항군 병사는 이러한 상황을 설명한 것이다. 대항군은 제1참호선에서 훈련군의 공격을 기다리지 않고 침투조를 투입해 공격을 방불케 하는 방어전, 종심(縱深) 깊은 방어전을 펼친다. 그러니 제1참호선은 주전투선이 될 수 없다. 취재진은 이것을 몰랐기에 제1참호선 앞에서 전투를 기다린 것이다.

 

단도화기사격조의 위력

지프를 몰고 훈련군이 넘어오고 있는 산 쪽으로 난 도로로 들어가보니 교전 과정에서 전사해 헬멧을 벗은 대항군과 훈련군 병사들이 터덜터덜 걸어 나오고 있었다. 2005년 28사단 GP에서 총격사고가 일어나 많은 병사가 희생됐을 때, 적잖은 정치가가 비무장지대 안의 GP를 철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내놓았다. GP는 웬만한 폭격에도 무너지지 않도록 만든 철옹성이다. 유사시 북한군은 포격을 퍼붓고 보병을 진격시키지만 GP를 점령하기 어렵다.

북한군 선두가 GOP선에 이를 때쯤 GO에 있던 수색중대원들이 나와 그 후방을 공격하고, 포 사격을 유도해 북한군 공격대형을 무너뜨린다. 놀랍게도 GP는 대항군의 단도화기사격조처럼 종심 깊은 방어전을 펼치는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은 GP 부대 덕분에 안전하게 살고 있는데 정치인들은 사고가 났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이 부대의 철수를 요구했다.

한국군도 침투조를 운영한다. 군사령부 차원에서는 특전사, 군단에서는 특공연대, 사단에서는 수색대대, 연대에서는 수색중대가 그들이다. 대대 전투에서는 연대 수색중대 소속의 수색소대가 대대에 배속돼 침투조 임무를 맡는다. 대항군과 훈련군은 침투조 대결도 벌인다. ○○사단 대대도 배속받은 한 개 수색소대를 소대장조와 부소대장조로 나눠 야음을 틈타 사전에 침투시켰다.

이때 ○○사단 대대장은 멋진 기만전술을 구사했다. 철조망과 지뢰를 설치한 쪽에 17명으로 구성된 부소대장조를 침투시킨 것. 그러나 이들 가운데 한 명이 지뢰가 터져 전사하는 등 16명이 철조망과 지뢰지대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교전으로 전사했다. 부소대장조는 소대장조보다 인원이 훨씬 많았다. 이들 부대가 밤새 격렬한 교전을 벌였고, 이 교전으로 대항군은 애초 예상한 대로 훈련군이 이곳으로 주공을 투입할 것이라는 생각을 굳혔던 것 같았다.

12명으로 편성된 소대장조는 장애물이 없는 개활지로 접근했으므로 7명이 전사한 상태에서 대항군이 설정한 1참호선을 통과해 적진 깊숙이 들어가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이 침투한 곳엔 대항군이 적어, 이들은 습격조처럼 유효한 포 사격을 유도하지 못했다. 적과 조우해 교전하는 것을 최대한 회피하는 것이 특징이므로, 이 부대는 대항군 단도화기사격조처럼 상대의 방어선을 무너뜨리는 ‘휘젓기’도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대항군 습격조의 포사격 유도와 단도화기사격조의 종심방어작전으로 인해 공격을 개시한 훈련군 보병 전력의 절반 정도가 1참호선에 도달하기 전에 궤멸해 있었다. 1참호선에 있는 대항군 병사는 이러한 훈련상황을 반복했기에 햇볕을 즐기며 “저들은 절대 여기를 못 넘어간다”고 여유를 부린 것이다. 취재 불능을 이유로 취재를 포기한 밤 사이에 승부는 사실상 결정돼 있었다.

 

“여기가 어디쯤입니까”

 

끊임없이 포 사격을 유도하며 정확한 사격을 가하는 대항군 분대장. 대항군은 지휘권 이양이 매우 원활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천시(天時)와 지리(地理)를 타야 한다는 말이 있다. 현대전에서 천시란 그 전쟁을 지지하는 국민의 의지이고, 지리는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이용하는 것이다. 대항군과 훈련군 침투조의 결과 차이에 대해 본부측 관계자는 경험을 토대로 이렇게 분석했다.

“대항군 병사들은 훈련장에서 살다시피 하므로 이곳 지리를 훤하게 알고 있다. 서울의 북한산 국립공원이 매우 넓지만 1년쯤 주말등산을 하다보면 속속들이 알게 되지 않으냐. 대항군 병사들은 그 이상으로 이곳 지리를 꿰뚫고 있다. 깜깜한 밤에도 산짐승처럼 산을 넘을 수 있고, 상대가 어디에 본부를 설치할 것인지 정확히 예측할 수 있는 것이다.

반면 훈련군은 지도를 보고 지리정보를 얻어야 하므로 대항군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침투할 수 없다. 지리를 알고 전투하는 것은 대단히 유리한 장점인데, 이 점에서 훈련군은 대항군을 도저히 따라올 수 없다.”

시곗바늘은 오전 8시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다시 도로 쪽으로 나온 취재진은 1참호선 근처까지 온 훈련군을 찾기 위해 훈련군 주력이 넘어오기로 한 산쪽으로 올라가보았다. 가파른 절개면을 타고 30여m를 올라가 숲 속으로 진입하자 얼굴에 위장약을 칠한 일단의 훈련군 병사들이 앉아서 전투식량을 먹고 있었다. “왜 싸우지 않고 밥을 먹느냐”고 묻자 그들은 “어제 저녁부터 밤새 아무것도 못 먹고 여기까지 기어왔는데 그만 포 사격을 받아 전사했습니다. 허무하네요. 죽었으니 이제 밥 좀 먹어도 되겠죠?” 하며 웃었다.

1참호선 바로 앞에서는 상당한 포격이 있었지만 취재진은 마일즈 유닛이 없어 사태를 짐작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 병사들은 산 아래로 내려올 수 없으므로, 관찰통제관의 도움을 받아 다른 훈련군이 접근해오는 쪽으로 찾아가보기로 했다. 관찰통제관은 아마 그들이 대형을 유지해 접근해오는 마지막 훈련군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들은 쉽게 발견됐다. 10여 명이 넘는 생존부대였는데, 밤새 시달린 탓인지 도로로 내려갈 생각을 하지 못했다. 그들은 자신이 있는 곳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한 듯 지휘자로 보이는 한 병사가 지도를 내밀며 “여기가 어디쯤입니까”라고 물어왔으나, 대답을 해주지 않았다. 지휘자는 산을 내려가는 것을 포기하고 우회하기 시작했다. 계곡을 내려가 옆 산으로 꽤 오래 이동한 것인데 이들을 따라가보기로 했다. 옆 산으로 이동한 이들은 다시 산등성이를 타고 아래로 향했다. 이때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됐다.

 

“악! 아군 총에 맞았다”

훈련장에서는 거의 매주 훈련이 반복되므로 병사들이 자주 다닌 곳에는 자연스럽게 길이 나 있었다. 마지막 훈련군은 이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이었다. 대항군은 이곳 지리를 잘 알 터이니 길가에 매복할 수가 있다. 침투할 때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지쳤기 때문인지 훈련군은 길을 따라 이동한 것이다. 아니나다를까. 그렇게 10여 분을 가자 “따당~” 하는 소리가 울리고 훈련군은 산지사방으로 흩어져 엎드렸다. 취재진도 덩달아 포복을 했다. 길목을 지키고 있던 단도화기사격조가 이들을 보고 총을 쏜 듯했다. 훈련군 병사들은 소리를 질러가며 총소리가 난 곳을 알렸다. 그리고 갑자기 세 명이 일어나 산등성이 쪽으로 뛰어오르기 시작했다. 취재진도 뒤따라 뛰어올라갔다.

3명은 유리한 위치를 찾아 제각기 낙엽더미에 몸을 던지고 바로 사격에 들어갔다. 그때 한 병사가 “어! 뭐야. 또 총알이 안 나가네. 어! 내가 맞았네. 이게 뭐야? K-2잖아. 3312. 우리 편이 쐈구만. 야! 네가 3312번이지”라고 소리쳤다. 지명을 받은 병사는 고개를 돌려 “아닙니다. 4235입니다”라고 대꾸했다. 아군 총에 맞은 병사는 약이 오른 듯 “금방 대항군을 봤는데, 잡을 수 있었는데, 미치겠네, 미치겠어” 하며 탄식했다. 그리고 다시 유닛을 들여다보더니 “아니, 경상이다 경상! 경상이면 응급조치를 하면 10분 후 다시 사격할 수 있잖아. 야, 의무낭 가져와” 하고 소리를 쳤다. 그의 유닛에는 좌측흉부 경상이라고 찍혀 있었던 모양이다.

의무낭에서 붕대를 꺼낸 동료병사가 사진기자에게 “그런데 좌측흉부가 어디에요?”라고 물었다. 사진기자가 왼쪽 가슴이라고 답해주자 그는 선배의 왼쪽 가슴에 붕대를 감았다. 이를 본 사진기자가 “거기는 오른쪽이야”라고 소리치자 둘은 붕대를 고쳐 감았다. 그때 병사들이 차고 있던 유닛이 일제히 울렸다. 유닛을 들여다본 병사들은 “60m 떨어진 곳에 포탄이 떨어진다”를 외치며 일제히 구덩이로 몸을 날렸다. 왼쪽 가슴에 붕대를 감은 병사도 바닥에 엎드렸다.

 

잠시 후 전원 안전하다는 표시가 나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붕대를 감은 병사가 “10분, 정말 더럽게 기네. 아직도 6분을 기다려야 하잖아” 하고 투덜거렸다. 이윽고 유닛에서 10분이 지났다는 신호가 나오자 병사는 “됐다 됐어”를 외치며 총을 들고 신나게 달려갔다.

그때 그의 유닛이 또 울렸다. 유닛을 들여다본 병사는 절망적으로 “뭐야. 또 맞았네. 중상이래. 중상!”이라고 외쳤다. 후송될 길이 없는 곳에서 중상을 입으면 2시간 후 전사로 처리된다. 코미디 활극 같기도 했지만, 마지막 훈련군은 확실히 전투에 몰입해 있었다.

감정이 격해지게 하는 것은 가장 쉽게 초인을 만드는 방법이다. 감정이 격해지면 집중이 되고 용기와 집착과 돌파력이 생긴다. 군대에 간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듣는 말 가운데 하나가 “악으로, 깡으로!”이다. “악으로 깡으로!”는 감정을 일으켜 집중하라는 군대식 주문이다. 과거의 군대는 구타와 얼차려로 “악으로 깡으로”를 유도했다. 그러나 현대의 군대는 실전을 방불한 연습으로 이를 뽑아올려야 한다. 훈련은 경험이 아닌 과학으로 이뤄져야 한다.

집중도가 높아진 만큼 병사들은 사격에 최선을 다했다. 그들의 집중을 방해한 것은 다름 아닌 K-2 소총의 격발 불량이었다. 훈련군 병사들은 사격을 하다 말고 총알이 나가지 않는다며 탄창을 치거나 뽑아내 다시 실탄을 하나하나 점검하기도 했다. 다급한 상황에 벌어지는 격발 불량이 답답한지 몇몇 병사는 뽑아낸 탄창을 헬멧에 두드려보기도 했다.

K-2 소총의 격발 불량은 대항군에서도 똑같이 발견됐다. 그러나 대응 방법에 차이가 있었다. 대항군 병사들은 격발 불량을 다반사로 겪은 듯 가볍게 탄창을 치는 것 외에는 다른 동작을 하지 않았다. 탄창을 뽑아 총알을 다시 삽탄하는 불필요한 동작을 하지 않고도 이들은 문제를 해결했다. 덕분에 훈련군보다 사격에 대한 집중도가 높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격발 불량은 탄피받이 때문에 생겨났다. 미군도 야지(野地) 훈련에서는 공포탄을 사용하지만 이때 발사한 공포탄의 탄피를 회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군은 탄약유출 사고를 막기 위해 사용한 탄피를 전량 회수한다. 야지를 달리면서 사격하는 병사에게 떨어진 탄피를 주우라고 할 수 없으므로 소총에 탄피받이를 달아주었다.

 

‘했다 치고’가 가져온 결과

탄피받이는 작은 주머니다. 이 주머니 입구에 먼저 나온 탄피가 걸리면 다음 탄피가 K-2의 약실을 빠져나오지 못해 격발이 멈춰지는 것이었다. 탄피받이만 떼어내도 병사들의 사격 집중도는 현저히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과훈단측은 “탄피 회수라는 육군의 방침이 바뀌지 않는 한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방침 때문에 일부 병사들은 교전이 끝나거나 전사한 다음 지나온 곳을 더듬어가며 잃어버린 탄피를 찾았다.

대항군 단도화기사격조를 놓친 훈련군 병사들은 1참호선이 보이는 산마루로 내려와 사격하기 시작했다. 한 병사는 K-2기관총을 걸어놓고 콩 볶는 듯한 연발사격을 퍼부었다. 그 총소리에 끌렸는지 이곳저곳에서 각생을 해오던 병사들이 몰려와 제법 큰 세를 만들었다. 그중에는 소대장도 있었으나, 각자의 소속이 다른 때문인지 소대장은 이들을 통솔하지 못했다. 훈련군은 통일된 지휘체제를 갖추지 못한 것이다.

건너편 산에서 쏘는 대항군의 사격솜씨는 대단했다. 구덩이에 들어가 사격하던 훈련군 병사들이 “어 내가 맞았네” 하며 사격을 중단했다. 이 마지막 훈련군은 대항군측이 포 사격을 가함으로써 결국 전멸하고 말았다. ○○사단 대대 주공은 1참호선에서 전멸하고 만 것이다.

흥미로운 것이 훈련군 병사들 중에는 안경을 쓴 사람이 많지만 대항군에는 거의 없다는 사실이다. 대항군은 화기중대 요원이 아니면 안경 쓴 사람은 뽑지 않는다고 했다. 밤새 1참호선 근처까지 달려온 훈련군의 안경은 뿌옇게 흐려 있었다. 그러나 긴박한 상황 탓으로 안경 닦을 여유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대항군이 한발 한발 조준사(照準射)를 한다면, 훈련군은 대략 방향만 맞추는 지향사(指向射)를 하는 경우가 많은 듯했다. 안경 쓴 젊은이가 많다는 점은 한국군이 풀어야 할 숙제일 수밖에 없다.

 

메두사의 머리

애초 ○○사단 대대장은 개활지 쪽으로 2개 중대를 밀어넣어 전선을 돌파하고 이어 예비부대로 갖고 있던 1개 중대를 투입하는 초월작전을 구사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주공이 산화하긴 했지만 훈련군은 아직 초월부대를 갖고 있다. 초월작전은 확실하게 전선을 넘는 것이라 적잖은 희생을 각오해야 한다. 은폐 엄폐할 곳이 적은 개활지를 통과하려면 뭔가 방어막이 있어야 한다. 초월부대는 언제 당도할 것인가.

 

미국 NTC와 한국 KCTC
미 11기갑기병연대 참조해 만든 대항군 11대대


 

KCTC로 불리는 육군 과학화훈련단(단장 이재완 준장·사진)은 NTC(National Training Center)란 이름을 가진 미 육군의 과학화훈련단을 모방해 만든 것이다. 미 육군은 1980년 10월16일 모자브 사막이 있는 캘리포니아주 포트어윈에서 NTC를 개장했다. 3750만평인 KCTC보다 10배 정도 넓은 1000평방마일(약 3억평) 규모의 NTC에서는 다양한 여단급 전투가 치러진다.
요즘 미군은 이라크를 안정화하는 평정작전을 벌이고 있다. 평정작전은 테러진압 작전처럼 실질적인 전투가 아니기 때문에 전문 용어로는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으로 불린다. NTC에서는 중무장 부대가 맞붙는 기갑전투에서부터 전쟁 이외의 군사작전까지 다양한 전투를 연습한다. 미군 병사들이 이라크에서 치르는 전투보다 NTC에서 치른 전투가 훨씬 더 힘들었다고 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이 반복된다.
일반적으로 대대 이하의 부대는 고유 번호를 갖고 있지 않다. 연대급 이상 부대는 1연대(또는 1사단), 7연대(7사단), 26연대(26사단) 식으로 고유번호를 갖고 있지만, 대대 이하 부대는 1대대(또는 1중대, 1소대), 2대대, 3대대를 반복할 뿐 고유의 숫자를 붙이지 않는다. 그러나 KCTC에 있는 대항군만은 ‘11대대’라는 고유 번호를 갖고 있다. 대항군 대대가 11이라는 고유 번호를 부여받은 것은 미국 NTC의 사례를 모방한 것이다.
미국 NTC에서 대항군으로 활동하는 부대는 11기갑기병연대이므로 한국은 KCTC에서 대항군으로 활약할 대대를 11대대로 명명했다. 한국의 11대대는 KCTC를 위해 창설됐으나 NTC의 11기갑기병연대는 1901년 2월 흑마(黑馬)를 마크로 삼아 창설된 유서 깊은 부대다. 전쟁위험이 줄어들면 해체됐다가 전운이 감돌면 재편성되기를 반복해온 부대는 포트어윈에 NTC가 만들어지면서 대항군 임무를 맡게 됐다.
KCTC를 만들기 전 많은 육군 관계자가 NTC를 견학했다. 그 때문에 한국군도 대항군을 만들면 11대대로 명명하자는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11대대원은 1군 예하 GOP 사단으로 배치될 장정을 훈련하는 102훈련소에서 신체검사 1등급을 받고 안경을 쓰지 않은 장정 가운데 지원자가 있을 경우 우선 선발한다. 11대대의 명성이 높아지자 요즘에는 이곳 배치를 지원하는 장정이 많아 심사를 해야 할 지경이라고 한다.
육군에는 보병 포병 공병 기갑 등 여러 병과가 있는데, 이러한 병과가 함께 참여해 치르는 전투를 ‘제병과 협동작전’이라고 한다. 제병과 협동작전을 치르는 최소 단위의 부대가 여단이다. 여단에는 보병연대와 기갑중대, 포병대대, 공병중대, 수색중대, 통신중대, 헌병소대 등 제병과 부대가 들어와 편제된다. 육군은 조만간 토지를 약간 더 수용해 KCTC를 여단급 훈련장으로 확대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

11시가 되자 개활지 쪽에서 흰 연기가 무럭무럭 솟아올랐다. ○○사단 대대장이 초월부대의 공격을 위해 연막탄을 투하한 것이다. 취재진은 초월공격을 보기 위해 재빨리 개활지로 내려왔다. 그런데 연막탄이 다 타 꺼질 때까지 예비부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투에는 성격이 다른 여러 부대와 수많은 인원이 참여하므로 이들의 움직임은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그러나 훈련군의 움직임은 이가 들어맞지 않는 듯했다.

과훈단 관계자들은 한국군의 오랜 병폐 가운데 하나로 ‘했다 치고’를 꼽는다. 하지 않은 것인데 한 것으로 치고 다음 문제를 풀어가는 것이다. ‘했다 치고’는 너무 뻔하거나, 귀찮은 일, 과거부터의 오랜 관행에 자주 적용돼왔다.

주둔지에서는 완전군장을 하고 시속 4㎞로 산악을 통과하던 부대도, 지도를 보며 가야 하는 낯선 곳에서는 날씨마저 나쁘다면 훨씬 속도가 느려진다. 날씨 나쁜 낯선 곳에서 독도법으로 길찾기를 해봐야 그러한 상황에서의 산악 돌파 속도를 추정할 수 있는데, 하지 않고 과거 경험을 토대로 적당히 추산해 작전계획을 짠다면 그 계획은 현실과 유리될 수밖에 없다. 전투는 과학이다. 훈련본부 관계자들은 훈련군 지휘관에게 “했다 치고를 배제하고 실제로 해본 결과만 작전계획에 반영하라”는 첫 번째 충고를 전하고 싶어했다.

‘과학화’라는 단어가 앞에 붙은 만큼 이 훈련장은 과학화된 자료를 적잖이 생산하고 있었다. 6·25전쟁 당시 우리 군에서는 소대장이 하도 많이 희생돼 ‘소모 소위’란 말이 생겨났다. 이러한 현상은 현대전에서도 반복되고 있을까. 과훈단은 그 정확한 대답을 들려준다. 자유 공방전에서 훈련군 분대장의 86%, 소대장의 44%, 중대장의 76%가 희생된다는 통계를 내놓은 것. 훈련군 병사의 평균 손실률은 52%이므로, 분대장과 중대장은 병사보다 더 많이 희생되고 소대장은 상대적으로 덜 희생되는 것으로 나왔다.

초전에 지휘관이 희생된 부대는 지휘할 사람이 없어 임무 수행에 중대한 지장을 받게 된다. 이 경우 다음 선임자가 지휘권을 행사해 임무를 수행해야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 이 문제에서도 훈련군과 대항군은 큰 차이를 보였다. 대항군은 경험이 많은 탓인지 지휘관이 희생돼도 메두사처럼 다음 머리가 나타나 부대를 지휘하지만, 훈련군에서는 이것이 여의치 않았다. 훈련군도 형식상으로는 다음 지휘자를 선정해놓았으나 실전에서는 거의 가동되지 않은 것이다. 지휘관이 희생된 훈련군에서 병사들은 대개 각생을 도모하거나 단독작전을 했다.

훈련군 병사의 손실률이 52%인 것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과훈단 훈련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훈련군은 주간방어 작전을 할 때 가장 손실률이 높고(64%), 이어 주간공격(56%), 야간공격(46%), 야간방어(42%) 순으로 손실률이 낮다. 주간작전에 희생자가 많다면 지휘관은 야간작전에 무게를 두는 것이 좋을 것이다.

전투는 실전이므로 ‘어쩔 수 없는’ 오인사격 등으로 우군이 우군에게 피해를 보는 사고가 일어난다. 훈련본부의 통계에 따르면 우군에 의한 피해는 2005년 25%였으나 2006년에는 15%로 떨어졌다고 한다. 이라크전에 투입된 미군이 우군에 의해 피해를 보는 비율이 17%라고 하니 한국군도 그와 비슷한 비율을 보이는 것이다. 아군끼리의 오인사를 줄이려면 그 비율부터 알아야 하는데, 과훈단의 자료는 그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훈련이 끝나면 과훈단은 각 병사에게 언제 누구를 사살했고, 자신은 언제 누가 쏜 총이나 아포에 의해 전사했으며, 자신을 쏜 우군은 누구였고 자신이 쏜 우군은 누구였는지가 적힌 ‘개인전투기록카드’를 전달한다. 확실한 성적표가 돌아오는 것이다. 자신의 실력을 제대로 알아야 발전할 수 있다. 한마디로 과훈단은 부대별 개인별로 ‘네 자신을 알라’를 가능하게 해주는 곳이다.

 

“약이 올라 참을 수가 없네요”

그 사이 연막탄이 꺼지면서 다시 고요가 찾아들었다. 그러자 헬멧을 벗은 훈련군 병사들이 도로로 내려와 정렬했다. 밤새 진흙탕을 뒹굴었기 때문인지 흙투성이가 많았다. 그새 더위가 느껴질 정도로 온도가 많이 올라갔으므로 전투복을 벗고 개울로 내려가 씻는 병사도 있었다.

그러나 병사 가운데 한 명이 대항군 쪽을 가리키며 “통제관님, 개울 건너가서 저놈들 좀 패주고 오면 안 되겠습니까. 약이 올라서 참을 수가 없네요”라고 소리를 높였다. 그는 마지막 단계에서 전사한 것이 못내 억울한 모양이었다. 전투 집중도가 올라가지 않으면 이런 말은 나올 수 없다. 다음 전투훈련 때 이 병사는 훨씬 더 영악해져 있을 것이다.

이들이 ‘죽음의 의례’를 치르기 위해 빠져나간 직후, 저 멀리 한 사람씩 절개면을 미끄러지듯 내려와 개활지로 내닫는 병사들이 보였다. 뒤늦게 도착한 초월부대인 것 같아 그쪽으로 달려갔다. 취재진이 달려가면 대항군의 시선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지만, 취재를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초월부대원들은 산에서 내려와 개울가에 은신했다.

그곳은 격류에 떠내려온 고사목이 엉켜 있어 건너편 산에 포진한 대항군이 보기도 쏘기도 힘든 곳이었다. 강력한 방어선을 뚫는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가 우회 침투다. 초월부대는 그것을 실현하고 있었다. 지휘관은 앞에 펼쳐진 넓은 자갈밭을 가리키며 “한 사람씩 지그재그로 뛰어가라. 나머지는 엄호를 하라”고 지시했다. 잠시 후 이들은 한 사람씩 30여m는 됨직한 자갈밭과 개울을 건너 그쪽 개울가에 엎드려 사격자세를 잡았다. 이렇게 건너온 훈련군은 대략 20명에 이를 것 같았다.

개울을 건너온 이들을 대항군은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대항군의 작전을 살펴보기 위해 대항군 뒤로 옮겨갔다. 그런데 이쪽에 있는 대항군은 1개 분대도 되지 않을 듯했다. 개활지는 넓은 데다 훈련군 병사들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갈대가 무성해 1개 분대로는 도저히 막아낼 수 없을 것으로 보였다. 훈련군은 마지막 공격에서 승기를 잡을 수 있을 듯했다. 이때 눈길을 끈 것이 대항군 분대장의 움직임이었다.

그는 고도로 집중한 듯 벌겋게 얼굴이 달아 있었다. 그는 훈련군을 향해 낱발 사격을 하면서 틈틈이 무전기로 포 사격을 유도했다. 그는 그곳 지리를 꿰뚫고 있는 듯 “○○지점 북서쪽 50m” “△△지점 서쪽 30m”식으로 포탄을 떨어뜨려야 할 위치를 정확히 불러줬다. 이것이 위력을 발휘했다. 훈련군의 개울 도하가 중단된 것이다.

지상전은 보병이 목표점을 장악해야 끝난다. 보병은 마지막 깃발을 꽂는 부대이기에 가장 중요한 병과로 여겨지지만, 포병 없는 보병은 사상누각이다. 사단이 작전을 할 때 유류와 탄약을 더한 사단 전체 물동량에서 80% 이상을 차지하는 것이 포병의 물동량이다. 사용하는 탄약이 워낙 많기 때문에 이러한 통계가 나오는 것이다. 연대장 이상의 고급 지휘관은 포병부대를 이용해 전투를 치른다. 연대나 사단, 군단 포병이 어떤 지원을 하느냐에 따라 보병대대의 승부가 결정된다. 칭기즈칸과 더불어 세계 최고의 전쟁 영웅으로 꼽히는 나폴레옹이 바로 포병 활용의 달인이었다.

포병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려면 전방에 나가 있는 보병부대에서 정확한 포 사격을 유도해주는 것이 중요하다. 대항군 분대장은 침착하게 정확한 포 사격을 유도했다. 1인2역을 하는 그의 움직임이 하도 기민해서 기자와 훈련을 참관하러 온 ○○사단 소속 장교는 그의 뒤만 졸졸 따라다녔다. 웬만한 사람이라면 불청객에게 신경이 쓰일 텐데, 그는 단 한번도 외부인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다. 사격을 하느라 떨어뜨리고 간 무전기를 주워줘도 고맙다는 말 한마디하지 않았다.

 

실력으로 불운을 이긴다

잠시 후 일부 훈련군 병사가 대항군이 있는 산 위로 올라가 뒤에서 총을 쏘기 시작했다. 그러자 분대장은 상병에게 무전기를 건네주며 “내가 저놈을 잡으러 갈 테니 여기를 맡아라” 하고 하고 단신으로 산으로 뛰어올라갔다. 적진이 아닌 자기 진영에서 단도화기사격조 임무를 수행하려고 달려간 것. 그런데 업무인계를 받은 상병도 기막힌 솜씨를 발휘했다. 포 사격을 유도하는 틈틈이 ‘서서 쏴’를 하던 그는 “맞았는데 왜 헬멧 안 벗어. 야 이상하네”를 연발하더니 기어코 개울을 건너오려는 훈련군을 전멸시켰다.

개활지를 크게 우회한 초월부대의 일부가 개울을 건너 대항군이 있는 산 위로 넘어간 것은 본부에서도 화제가 됐다. 훈련이 끝난 후 과훈단장인 이재완 준장(육사 33기)은 “대항군은 훈련군의 주공 방향을 완전히 잘못 예상했다. 초전에 전사했다가 살아나긴 했지만 훈련군 대대장은 머리싸움에서 대항군 대대장을 눌렀다”며 이렇게 말했다.

“훈련군에서는 모두 10명이 1참호선을 돌파했다. 수색소대조 5명과 초월부대원 5명이 그들이다. 수색소대조는 상당히 깊이 침투했으나 이들이 들어간 곳에는 대항군 주요시설이 없었다. 5명의 초월부대원들은 단일 지휘체제로 묶이지 못했다. 초월부대의 공격이 시작될 무렵 살아있던 초월부대원들이 후방을 공격하고 돌파에 성공해 지휘체제를 만들어 공격했다면, ○○사단 대대는 사상 최초로 2참호선을 돌파해 대항군 목표점을 공략하는 부대가 됐을 것이다. 상대의 전술을 헛짚었다는 점에서 대항군은 불운했지만 실력으로 불운을 극복했다.”

과훈단 관계자들은 명예심이 강한 부대일수록 전투 집중도가 높다고 말했다. 지난해 벌인 전투 가운데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해병대 1사단 대대와 벌인 훈련이었다고 한다. 전원 자원자로 구성된 해병대 1사단 대대는 패하긴 했지만 끝까지 포복하고 끝까지 달려가는 등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 “역시 해병대”라는 찬사를 받았다고 한다. 올여름에는 월남전에 참전했던 해병대 2사단(청룡부대)의 대대가 들어오는데, 과훈단 관계자들은 이 부대와 치를 전투를 올해 최고의 ‘빅 매치’로 꼽고 있었다.

 

KTCT가 한국군을 구한다

“실력으로 불운을 극복한다”는 말은 훈련본부에서는 화두처럼 떠도는 경구였다. 훈련본부 관계자들은 “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과훈단 훈련의 목표”라는 말을 자주했다. 이순신은 26번 싸워 26번을 이겼다. 이러한 전승은 세계 해전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이순신을 덕장으로 묘사한다. 수많은 모함을 받아 두 번이나 백의종군하고 사랑하는 아들을 왜군에게 잃은 그를 복장이라고 할 수는 없으니 덕장으로 그리는 것이다. 그러나 ‘난중일기’에서 드러나는 이순신은 덕장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그는 소집명령을 어긴 부하를 가차없이 베어내는 처형을 28번 반복했다.

과훈단의 대항군도 27번 싸우면서 여러 차례 불운을 만났을 것이다. 그런데도 전승을 기록한 것은 그들의 실력이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실력으로 불운을 극복한다’는 명제를 수립하기 위해 대항군은 명예심을 활용하고 있었다. 절대로 훈련군에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집중력을 일으키고, 집중력이 그들을 초인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명예를 지키겠다는 자기관리를 하면서 그들은 ‘전투 프로’가 됐다. 지리를 잘 알고 체력이 우수하다는 장점은 부차적인 요소일 뿐이다.

과학을 배제하고 경험만으로 펼치는 전투는 패배를 가져온다. ‘전투는 과학’이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고 있음에도 한국은 이를 배제한 국방 정책을 펼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북한군 병력은 117만인데 우리는 2020년까지 68만인 병력을 50만으로 줄이겠다고 한 것이다. 감군은 병력을 줄이더라도 국가 안보에 지장이 없다고 판단될 때 하는 것이다.

전사가(戰史家)들에 따르면 380여 개에 이르는 세계 주요 전쟁 가운데 적은 병력을 가진 군대가 많은 병력을 가진 군대를 이긴 것은 1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워게임으로 분석해보면 적은 병력을 가진 군대가 많은 병력을 가진 군대를 이길 비율은 4%대로 떨어진다고 한다. 소군(小軍)이 대군(大軍)을 이긴 사례가 경험상으로는 15%이고 과학적으로는 4%에 불과하다면, 주한미군의 감축이 확정된 상태에서 펼치는 한국군 감군 문제는 다시 검토해봐야 한다.

감군이 확정된 지금 전력증강을 도모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 모든 부대를 대항군처럼 만드는 것이다. 미 육군도 그들의 과학화훈련장에서 부대 수준을 높이는 훈련을 거듭하며 감군을 진행해왔다. 지금 한국 과훈단은 대대급 보병 전투만 치를 수 있다. 따라서 기동전을 비롯한 다양한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빠른 시간 내에 과훈단 능력을 확대하는 것이 절실하다.

육군은 과훈단을 여단급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확충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예산이 필요하다. 이러한 지원 없이 감군만 한다면 노무현 정부는 훗날 역사적인 책임을 져야 할지도 모른다. 기동전을 치를 수 있는 규모로 과훈단을 확대한 다음에는 대항군을 주한미 2사단 대대와 붙여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대항군이 미 2사단 대대를 꺾는다면 과훈단은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것이고, 한국은 좀더 편안한 마음으로감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전략가는 “과훈단이 한국의 미래 안보를 책임지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단언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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