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 UDT/SEAL<해군특수전전단>전설은 영원하다” / 국방일보 2012.3.29
내일(30일)은 천안함 46용사를 구조하기 위해 차디찬 백령도 바닷속으로 몸을 던졌던 고(故) 한주호 준위의 순국 2주기를 맞는 날. 고 한 준위의 지인들은 그를 따뜻한 성품을 지닌 인격체로, 가족에게는 한없이 자상했던 아버지로, 임무에 있어서는 강인한 책임감으로 무장한 천상 군인으로 기억한다. 고 한 준위와 8년을 함께 근무한 UDT/SEAL전우회 오영달(예비역 중령) 자문위원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3일 오 위원을 만나 알려지지 않은 고 한 준위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교육생에게 ‘아버지 같은 교관’ 명성 자자 천안함 46용사 구조 위해 바다에 몸 던져 투철한 군인정신 우리 가슴에 새겨졌으면"
2006년 10월 해군2함대에서 해양차단작전을 전개했을 당시의 오영달(뒷줄 맨 왼쪽) 자문위원과 고 한주호(뒷줄 맨 오른쪽 |
2001년 UDT/SEAL 47기 교육생들의 한라산 강행군 훈련 당시 정상에 오른 한주호 준위. |
오영달 자문위원과 한주호 준위가 교육대장과 교육반장이었던 2004년 진해만을 배경으로 기념촬영한 모습. |
▶천안함 46용사 구조작전 자원
“천안함 피격 소식을 듣자마자 해군특수전전단(UDT/SEAL·당시 해군특수전여단) 관계관에게 전화를 걸었어요. 구조작전이 중요하고 위험한 임무인 만큼 최고의 베테랑을 보내야 한다는 뜻과 함께 한 준위를 추천했죠. 그러자 그 관계관은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본인이 벌써 지원했다’고 말하더군요. 한 준위는 그런 군인이었습니다.”
1988년 7월 해군사관후보생(OCS) 80기로 임관한 오 위원과 한 준위의 인연은 이듬해 5월 오 위원이 UDT/SEAL 기초과정 35기 교육생으로 입소하면서부터 시작됐다.
당시 한 준위는 특전일반학 담당 교관(상사)이었다. 이들은 이후 작전지원대장과 대테러 종합훈련장 담당으로 2년, 교육대장과 교육반장으로 4년, 대테러 특수임무대장과 작전관으로 2년 등 8년 동안 한솥밥을 먹었다.
오 위원은 2010년 3월 28일 오전 한 준위가 백령도로 떠나기 직전의 전화통화 내용을 들려 줬다.
“영감님! 절대 들어가지 마세요” 했더니 “저도 나이가 있는데 그래야죠”하고 응답했다고 한다. “그 짧은 통화가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다음날부터 전화 연결이 되지 않았어요. ‘바다에 들어가면 안 되는데, 정말 위험한데’하는 생각이 뇌리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오 위원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구조작업 나흘째인 30일 오후. 아들 같은 장병들을 구하기 위해 내가 가야 한다며 동료들의 만류를 뿌리친 그는 결국 주검으로 돌아왔다.
잠시 생각에 잠긴 오 위원은 다시 말문을 열었다. 한 준위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열성적이었다. 현재의 UDT/SEAL 대테러 종합훈련장은 그런 부지런함에서 태어났다.
“해군의 대테러 종합훈련은 후발 주자였기 때문에 시설 준공 경험이 없었어요. 대테러 종합훈련장 담당이었던 한 준위는 육군특수전사령부 예하 관련 대대를 수차례 방문해 훈련장의 장점을 벤치마킹하고, 단점은 보완했죠. 그의 노력이 대한민국 최고의 훈련장을 완성하는 데 일등공신이 됐습니다.”
▶교육생 피고름 입으로 빨아낸 교관
한 준위의 솔선수범은 교육훈련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항상 극한을 가정하라’며 교육생들을 긴장시킨 호랑이 교관은 육상훈련이든, 해상훈련이든 언제나 선두에 섰다. 40m 심해잠수 때는 가장 먼저 입수해 장애물을 제거하고, 조류를 파악하는 등 안전을 확보한 가운데 훈련을 진행했다.
스파르타식 교육을 강조했지만 교육생에 대한 애정도 넘쳤다. 6개월 동안 계속되는 혹독한 훈련으로 봉와직염이 생긴 교육생의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고, 발목염좌 치료를 위해 직접 침술을 배우는 등 아버지 같은 교관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이뿐만 아니다. 교육 전에는 그날의 기온·습도 등 기상조건을 일일이 파악하고 대처방안을 수립함으로써 안전사고를 철저히 방지했다. 또 방글라데시 장교 수탁생들이 추운 날씨를 견디지 못하고 자진 퇴교를 희망했을 때는 이들을 직접 이끌고 훈육해 수료시킨 사례도 있다.
“교육대장 재임 시절 4년 동안 단 한 건의 안전사고도 일어나지 않았어요. 특수전 교육 부대가 무사고 부대를 4년 동안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한 준위의 숨은 노력 덕분입니다.”
한 준위는 35년의 UDT/SEAL 생활 중 교육대 근무기간이 가장 길다. 각급 부대 또는 사회에 진출한 ‘애제자’가 2000여 명에 달한다. 그의 제자가 다수 포함된 청해부대 6진 검문검색대의 아덴만 여명작전 활약상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그가 제작한 습격사다리는 성공적인 작전의 밑거름이 됐다.
“2006년 4월 5일 동원호가 소말리아 해적에게 피랍됐을 당시 특임대장이었던 나는 원양에서 발생한 자국민 테러 대비책과 구출작전을 세우고 싶었어요. 모든 대원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지만 작전관이었던 한 준위는 즉각 시행에 들어갔습니다. 그때 침투용 습격사다리를 연구·제작했죠. 2개월 동안 선박등반 및 장악, 해적제압, 인명구조 훈련 등을 수십 차례 반복했습니다. 극비리에 추진된 작전계획은 군 수뇌부까지 보고됐고, 검열을 나온 관계자들로부터 극찬을 받았습니다. 작전은 비록 실행되지 못했지만 UDT/SEAL의 뛰어난 작전수행 능력을 알리는 결정적인 계기였습니다.”
▶세계 최강의 전사와 자상한 아버지
한 준위는 의리도 강했다. 하지만 그로 인해 큰 역경을 겪어야 했다. 친구의 빚보증으로 가정생활이 매우 힘들어진 것이다.
“한 준위는 교관임무를 수행할 당시 제주도 생활을 많이 했고, (제주도의) 매력에 푹 빠졌어요. 은퇴 후에 이곳에서 살고 싶다고, 같이 살자는 말을 여러 번 했어요.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작지만 땅까지 매입했어요. 그러나 소박한 꿈은 빚보증으로 산산이 부서졌죠.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 부대 내에서는 전혀 내색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임무에 더 매진했습니다.”
오 위원은 비가 내리는 차창 밖을 바라봤다. 그리고 오늘 처럼 비가 내리던 날의 한 준위 전화를 떠올렸다.
“딸 슬기가 공부의 매력에 푹 빠졌다고 자랑하던, 이보다 더 행복할 수 없다는 한 준위의 들뜬 음성이 아직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는 세계 최강의 전사였지만 누구보다 자상했던 아버지였고, 인정이 넘치는 교관이었습니다. 한 준위의 투철한 군인정신과 희생정신이 국민들 가슴속에 영원히 새겨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