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파월 장병 묘역에 묻어달라”- ‘베트남전 영웅’ 채명신 장군 유언… 장군이 사병묘역 안장 현충원 사상 처음
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27일 고(故) 채명신 장군의 빈소가 마련된 서울아산병원을 방문, 헌화한 뒤 묵념하고 있다. 육군본부 제공 |
지난 25일 별세한 채명신(육사5기ㆍ예 중장) 초대 주월한국군사령관의 유해를 장성묘역이 아니라 베트남참전용사들이 안장돼 있는 국립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27일 “장군 신분으로 장군묘역 안장 혜택을 스스로 포기하고, 죽어서도 베트남전 참전 전사자와 함께하겠다는 고인의 유언에 담긴 숭고한 뜻과 베트남전에서의 공적을 높이 평가해 서울현충원 사병묘역에 안장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유족들로부터 고인의 유언을 전해 듣고, 그 뜻을 존중하기로 결정한 뒤 사병묘역 안장 결정 사실을 유족에게 이날 정식으로 통보했다. 이날 빈소를 찾은 김관진 국방부 장관은 “채명신 장군은 군의 정신적 지주”라면서 “파월 장병들과 같이 묻히고 싶다고 유언을 남겨 그 유지를 받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국립서울현충원의 묘역은 법에 따라 장성ㆍ장교ㆍ사병묘역으로 구분돼 있으며, 이번 결정에 따라 채 장군은 사병묘역의 기준에 따라 3.3㎡ 크기의 묘지에 묻히게 된다. 장군이 자기 신분을 낮춰 사병묘역에 안장되길 희망한 것은 현충원 설립 사상 최초로 알려졌다.
김형기 국립서울현충원장은 “고인의 묘지와 비석 크기는 일반 사병과 같다”면서 “파월참전자회장을 맡아왔던 고인이 추모행사를 해왔던 2번 사병 묘역에 안장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날 서울 아산병원에 마련된 고인의 빈소에는 베트남 참전용사 등 노병들이 연이어 찾아와 채 장군을 추모했다. 최윤희 합참의장 등 군 수뇌부들도 빈소를 찾아 영전에 조문하고 숭고한 뜻을 기렸다. 커티스 스카파로티 한미연합군사령부 사령관도 이날 오후 빈소를 찾아 고인에게 헌화하고 묵념했다.
채 장군을 추모하는 열기는 미국 등 재미교포 사회에서도 뜨겁다. 미국 동부의 워싱턴 D.C와 미 서부 LA에 설치된 빈소에는 참전용사와 예비역들이 찾아와 거수경례로 고인에게 마지막 경의를 표했다. 고인의 장례는 28일 국립서울현충원에서 권오성 육군참모총장 주관 아래 육군장으로 치러질 예정이다.
1949년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채 장군은 6ㆍ25 전쟁 당시 유격부대의 지휘관이자 베트남전 당시 주월한국군사령관으로 뚜렷한 공적을 남겨 “대(對)게릴라 전의 명장”이라는 칭송을 받았다. 베트남전에서 한국군이 거둔 중요한 전술적 승리로 손꼽히는 육군맹호부대의 듀코전투나 해병대의 짜빈동전투의 승리의 바탕에는 채 장군이 창안한 중대전술기지 방어전술이 있다는 평가도 있다.
특히 채 장군은 주월한국군사령관 재임시절 “100명의 베트콩을 놓쳐도 1명의 양민을 보호하라”는 엄명을 내리는 등 이념 전쟁에서 민ㆍ군 관계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실천한 장군으로 평가받는다. 한 육군 관계관은 “오늘날 우리 군이 해외파병에서 대민지원의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출발점에는 채명신 장군의 가르침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