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포리 기동대 소속 해군·해병대 장병들이 ‘혼성팀’을 구성, 체력단련 일환으로 기마전을 하고 있다. 멀리 보이는 바지선이 기동대원들이 동고동락하는 생활관이다. |
해군·해병대 병사들이 바지선 생활반에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30여 명의 병사들은 좁은 바지선에서 ‘짝’을 지어 활동하며 전우애를 고취하고 있다. |
서해 바다의 거친 물살이 흐르는 인천시 강화군 외포리는 석모도·주문도·볼음도 등 서측도서로 들어가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길목이자 수도 서울을 지키는 관문이다. 이곳에는 해군·해병대가 동고동락하며 전우애를 쌓는 생활관이 있다. 해병대2사단 외포리 기동대가 주인공이다. 800톤급 바지선(YPK)에서 ‘한솥밥’을 먹으며 전우애를 다지는 ○○명의 해군·해병대 장병들. 육지를 연결하는 유일한 통로인 100m 길이 도교(渡橋)를 건너가 이들의 생활상을 엿봤다.
우리는 한뿌리 공동운명체 … 바지선에서 함께 생활하며 밝은 병영문화 정착
외포리 기동대의 생활 터전은 해안에 투묘(投錨: 배를 정박하기 위해 닻을 내림)한 바지선이다. 가로 58m, 세로 18m 규모에 함정 내부와 동일한 구조로 제작됐다. 조류에 따라 위치가 달라지며, 작은 파도에도 흔들림이 크게 느껴지는 해상 전진기지다.
그러나 해군·해병대의 전우애는 흔들리지 않는다. 30여 명의 병사들은 비좁은 2개의 생활반에 혼성 편성돼 24시간 몸을 부대끼며 생활한다.
아침 기상부터 취침 시간까지 식사·근무는 물론 바지선 보수 작업도 함께 하고 체육활동 시간에 ‘짝’을 지어 활동하며 한뿌리 공동운명체 의식을 키우고 있다.
해병대는 상황이 발생하면 적을 유인·차단·추적·격멸하는 기동대의 핵심 전력이다. 적 도발 대응·타격을 위해 고속단정(RIB)과 항만경비정(YUB) 등을 운용한다. 또 해상 매복이라는 독특한(?) 작전을 전개한다.
해군은 해병대원들이 임무를 원활히 수행할 수 있도록 바지선 운영에 심혈을 기울이고, 계류선박에 대한 군수지원 임무를 병행한다.
해군·해병대 병사들은 가족보다 더 끈끈한 정(情)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자랑한다. 전투복은 달라도 적극적인 소통과 화합으로 밝은 병영문화를 정착시켰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해군은 해병대 특유의 군기(軍紀)를, 해병대는 해군의 신사(紳士) 정신을 본받는 등 서로의 장점을 결합함으로써 합동성 강화의 표본이 됐다는 것.
근무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도 한마음 한뜻이다. 이들은 일주일에 2~3회씩 합동 전투체육을 하며 결속력을 다진다. 이러한 단결력은 전투형 군대를 완성해 나가는 자양분이 되고 있다.
부대도 병사들의 사기·복지 증진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월 1회 삼겹살 회식, 2개월마다 3박4일 포상휴가, 연 2회 부모·가족 초청 부대개방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부대개방 행사는 장병과 가족들의 호응도가 높아 분기 1회로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외포리 기동대는 강화도 반잠수정 침투사건 계기로 창설 … 국지도발 대비작전 등 임무
외포리 기동대는 1998년 11월 20일 발생한 강화도 반잠수정 침투사건을 계기로 99년 1월 1일 창설됐다. 한강하구 중립 구역에서 남방 ○○㎞ 지점에 위치한 최전방 부대다. 해병 대위가 지휘하며, 해병대 고속단정 소대와 해군 해상근무지원반이 편성돼 있다. 해군인천해역방어사령부 항만경비정도 ○주일 단위로 순환 배속된다.
기동대는 교동·석모 수로(水路) 일대 국지도발 대비작전, 서측도서 및 해상세력 군수지원, 특이 부유물 확인·인양, 긴급구조, 해상 매복, 적 도발 차단·추적·섬멸 등을 주 임무로 한다.
해상 매복은 적 반잠수정 침투에 대비하는 작전이다. 바다 한가운데에 기점을 표시해 두고 주·야간 경계작전을 펼친다. 기점은 조류와 취약시기에 따라 변경된다. 기동대는 불시 긴급출항 훈련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정기적인 해상사격으로 전투력을 높이면서 적의 침투·도발에 완벽히 대비하고 있다.
‘명품 전우’를 소개합니다
외포리 기동대는 결원이 생기면 상급부대에서 우수자원을 가장 먼저 차출하는 ‘우선권’을 갖고 있다. 이에 따라 모범장병이 부지기수다.
서세광(해병 대위) 기동대장은 해병가족이다. 해병대2사단 정보대에서 근무하는 아버지 서대곤 원사는 군 경력 30년이 넘는 베테랑이다. 동생은 병1090기로 입대해 백령도를 거쳐 해병대사령부에서 전역했다.
서 원사는 아들의 임관식에서 장교인 아들에게 거수경례를 했다. 서 기동대장은 그때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물을 봤다.
서 기동대장은 “어려서부터 아버지 전투복에 붙은 빨간명찰을 봐와서 그런지 해병대를 꼭 가야 한다는 의지가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며 “아버지께 부끄럽지 않은 해병, 언제 적이 도발해도 즉시 대응할 수 있는 부대 확립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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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준(해병) 일병은 초등학교 6학년 때 필리핀으로 이민을 갔다. 시민권을 취득할 수 있었지만 대한민국 국적 유지를 위해 포기했다. 그리고 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지난해 11월 24일 입대했다.
해병대2사단에 배치된 그는 외포리 기동대를 자원, K-6 중기관총 부사수로 근무 중이다.
소 일병은 “어차피 해야할 군 복무라면 멋지게 하고 싶어 해병대를 선택했다. 수색대를 지원했지만 ‘색약’ 때문에 고배를 들었다. 그러나 지금 생활에 만족한다. 우리 기동대는 해군·해병대가 하나로 뭉쳐 주어진 임무를 100% 완수하는 멋진 부대”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이관후(해군) 상병. |
소 일병은 자신의 생활반장인 이관후(해군) 상병이 군 생활 조기 적응에 많은 도움을 줬다며 최고의 모범병사로 손꼽았다.
기관병인 이 상병은 ‘계속복무 서약’을 통해 전역 때까지 외포리 기동대에서 근무할 예정이다.
그는 바지선 수리·보수 작업이 생기면 언제나 선두에 선다. 생활반원의 애로사항을 해결하고, 일체감 조성에도 솔선수범해 후임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이 상병은 “군대는 나를 변화시켜준 고마운 존재다. 타인과의 대화에 어려움을 겪을 정도로 내성적이던 나를 활발하고 능동적으로 바꿔놨으며, 긍정의 마인드로 무장시켜 줬다. 이제는 그 어떤 난관도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전역하는 순간까지 해군·해병대 화합에 노력하는 생활반장이 되겠다”고 다짐했다.
<국방일보 윤병노 기자 , 사진 한재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