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 같은 바닷속 맨몸으로 3시간… 전우와 함께 한계 넘는다. 국방일보 2021. 07. 04
SSU 67기 해난구조 기본과정 교육생이 핀 마스크 원영훈련에서 바다에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다.
해군특수전전단 해난구조전대(SSU) 67기 해난구조 기본과정 교육생이 지난달 30일 해군 진해기지 동도훈련장에서 열린 핀 마스크 원영훈련에서 횡영(옆으로 하는 수영)으로 바다를 건너고 있다.
SSU 67기 해난구조 기본과정 교육생들이 핀 마스크 원영훈련에 앞서 SSU 특수체조를 하고 있다.
SSU 67기 해난구조 기본과정 강전혁(22번) 교육생이 핀 마스크 원영훈련을 위해 뜀걸음을 하던 중 힘들어하는 김민규(6번) 교육생의 군장을 들어주고 있다.
SSU 67기 해난구조 기본과정 교육생이 바다에 뛰어든 뒤 힘차게 군가를 부르고 있다.
[국방일보 2021. 07. 04]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검푸른 바닷속. ‘미래 정예 심해 잠수사’를 꿈꾸는 젊은이들은 잠수경 하나와 이른바 ‘오리발’로 불리는 핀(FIN)에 의지해 망망대해를 건너고 있었다. 난관은 이뿐만이 아니다. 잠수복을 뚫고 독침을 쏘아대는 해파리, 온몸에 스멀스멀 파고드는 바닷물의 한기는 인간을 극한 상황으로 몰아간다. 이제 막 떠오른 태양 아래, 아직 채 달궈지지 않은 혹독한 바다를 건너는 청춘들을 보며 문득 궁금해졌다. 지금 저들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무엇이 저들을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일까? 3시간여에 걸친 사투를 이겨내고 무사히 해안에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지난달 30일 해군 진해기지 내 해군특수전전단 해난구조전대(SSU)는 67기 해난구조 기본과정에 입교한 교육생을 대상으로 핀 마스크 원영훈련을 했다.
아침 일찍 모인 교육생 53명의 얼굴은 이미 새카맣게 그을려 있었다. 12주 과정의 반환점도 돌지 않은 3주 차에 불과했지만 번쩍이는 안광과 굳은 표정에서 이들의 강인한 군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요즘 SSU를 지원하는 자원들을 보면 상당히 수준이 높습니다. 제가 교육을 받던 시절보다 입교 기준이 높아졌음을 느낍니다. 특히 요즘에는 SSU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경쟁이 더 치열해질 것 같습니다.”
해난구조교육훈련대대장 김영배 중령은 “최근 특수부대 관련 예능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SSU를 꿈꾸는 이들이 늘었다”며 이렇게 말했다.
하지만 우리 군의 최정예 심해구조사 자격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영 선수가 들어왔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 김 중령의 설명이다. “아무래도 정해진 환경에서 실력을 겨루는 수영과는 환경이 다르기 때문 아닐까요?” 훈련을 준비하는 교육생들을 바라보는 김 중령의 입가에는 흐뭇함이 가득했다.
김 중령의 미소와는 다르게 훈련을 진행하는 교관들의 표정에서는 독기가 느껴졌다. 작은 실수가 바로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엄격하고 강도 높기로 정평이 나 있는 SSU 훈련의 명성을 교관들의 얼굴만 봐도 알 수 있었다.
출타 등 외부 활동이 제한되는 교육생들의 상황과 매일 물에 들어가야 하는 훈련의 특성을 감안해 마스크는 쓰지 않았지만 훈련은 코로나19 방역수칙을 완벽하게 준수한 가운데 진행됐다.
본격적인 수영에 앞서 시행된 체력단련은 기자의 혀를 내두르게 했다. 교육생들은 앞으로 있을 3해상마일(5.556㎞) 수영도 힘겨울 텐데 저렇게까지 몸을 혹사시켜도 되는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혹독한 SSU 특수체조를 소화해 냈다. 놀라운 점은 보기만 해도 ‘곡소리’가 나는 체조를 함께하는 교관들의 얼굴은 교육생들과는 대조적으로 매우 평온해 보였다는 것이다. 평소 이들이 어떤 단련을 하고 있는지를 한눈에 알 수 있는 장면이었다.
잠시 휴식으로 몸을 추스른 교육생들은 곧바로 군장을 챙겨 정렬했다. 이제 훈련장까지 달려야 할 시간이다. 15㎏에 달하는 배낭을 짊어진 교육생들은 구령에 맞춰 뜀걸음을 시작했다. 약 2㎞를 10분도 안 돼 주파한 교육생들이 곧바로 잠수복으로 갈아입고 물에 뛰어들 준비를 하는 동안 또 의문이 생겼다. “그래도 사람인데 시작도 하기 전에 저렇게 체력을 소진하면 제대로 수영을 할 수 있을까요?” 기자의 질문을 받은 한 교관은 자신 있는 표정으로 답했다. “보시면 압니다.”
교육생들이 입수할 바다로 나가 잠시 손을 넣어봤다. 여름 초입이라고는 하지만 이른 아침인지라 손끝으로 냉기가 스며들었다.
“바다 수영의 가장 큰 적은 수온이죠. 찬 바닷물을 온몸으로 받아내다 보면 저체온증이 올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평소에 낮은 수온에 적응할 수 있도록 훈련을 진행하고 있죠.” 교관인 이범수 중사의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이날 바다의 수온은 23도. 민간 수영장의 온도가 27도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낮은 셈이다. 하지만 전단은 이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실내 수영장의 온도를 21도로 맞춰 교육 하고 있다고 한다. 일반 수영 훈련과는 차원이 다른 그들만의 전통이다.
53명 모두 바다에 입수하자 교관들의 격려가 이어졌다. 교육생들은 힘찬 목소리로 군가를 부른 뒤 서로에게 힘을 불어넣는 파이팅을 외치고 수영에 돌입했다.
“오늘 수영은 3개 팀이 기록을 겨루는 형식으로 진행됩니다. 모두가 다 들어오는 것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혼자만 잘한다고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없습니다. 오늘 훈련에서 교육생들은 전우애와 팀플레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핀을 활용해 3해상마일을 왕복하는 어찌 보면 단순한 훈련. 하지만 핀 마스크 원영 훈련은 SSU라면 누구나 소화해야 하는 필수 과정이다. 핀을 활용한 수영은 스쿠버 임무 과정에서 수면으로 이동할 때 반드시 필요한 기술인데다, 핀 수영을 통한 핀 킥 숙달은 수중 유영을 비롯한 잠수의 기본기를 갖추는 데 큰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멀리 보이는 수평선 외에는 아무 것도 의지할 것 없는 바다 위에서 교육생들은 끊임없이 발을 구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깊은 바닷속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찾을 때까지 기약 없는 잠수를 거듭해야 하는 SSU의 고독을 교육생들은 이번 훈련을 통해 느끼고 있었다.
“바닷속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수영장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들어가 보시면 아시겠지만 검푸른 바닷물로 인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은 물론 해파리 등 수중생물과 같은 변수도 수두룩하죠. 한 번 들어가면 언제 나올지 알 수 없어 그만큼 힘든 것이 SSU의 임무입니다. 이 모든 것들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극한의 체력은 물론 강철같은 정신력을 갖춰야 하죠.” SSU의 훈련이 고되기로 정평이 난 이유에 대한 교관들의 설명이다.
다행히 교육생들에게는 극한 상황을 이겨낼 버팀목이 있었다. 바로 ‘전우’였다. 서로를 격려하며 쉴새 없이 파이팅을 외치는 모습, 뒤처진 동료를 끌어주는 모습, 선두에서 상황을 알리는 모습 등은 훈련이 진행되는 내내 확인할 수 있었다.
“아까 제대로 수영을 할 수 있는지 여쭤보셨죠? 저는 오늘 훈련에서 단 한 명도 낙오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합니다. 아직 햇병아리 수준이기는 하지만 이미 교육생들은 어느 정도 생환능력을 검증받은 이들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렇게 서로에게 의지가 돼주는 모습을 보면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시지 않으십니까? SSU는 자신의 한계를 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명예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교육생들을 지켜보던 교관은 앞선 질문에 대해 그제야 답했다.
교관의 말처럼 이날 훈련에서 교육생들은 3시간여의 고된 바다 수영을 훌륭히 마치고 전원 귀환에 성공했다. 해냈다는 성취감 때문일까? 교육생들은 쇳소리 같은 목소리에도 아랑곳 않고 군가를 부르며 환희를 만끽했다.
“오늘 핀 마스크 원영을 위해 지난 일주일 동안 많은 훈련을 했습니다. 그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후배가 될 교육생들이 한 명도 낙오하지 않고 잘 따라와 기쁘고 자랑스럽습니다.” 훈련 내내 ‘매의 눈빛’을 보내던 교관 이범수 중사는 교육생들 몰래 웃으며 기자에게 말을 건냈다.
지난해 갑작스러운 맹장 수술로 중간에 퇴교한 뒤 다시 SSU에 도전한 황재진 중위는 “바다를 건너며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해낼 수 있다는 결의와 전우들의 응원 덕분에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어 기쁘다”면서 “이번에는 꼭 교육을 수료해 세계 최강의 SSU 대원이 되도록 하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모든 훈련을 마치고 돌아가는 교육생들의 등 뒤에서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직접 작사했다는 ‘67기가’가 귓가에 맴돌았다.
“물을 차며 맨몸 수영하는 우리. 악으로 깡으로 앞으로 헤쳐간다. 빛이 없는 어두운 심해 끝이 없지만, 67기 가는 길 밝은 미래가 있다. 더 깊은! 더 넓은! 딥 씨 다이버(DEEP SEA DIVER) 67기 다이버!”
글=맹수열/사진=양동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