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은 2012년 11월 16일 성남시 동원동에서 국유단과 육군 52사단 장병들의 노력으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가 고(故) 안승원 일병으로 확인되었다고 11일 밝혔다.
고 안승원 일병의 신원확인은 국민의 ‘6·25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 참여와 국유단이 기동탐문을 통해 고인의 여동생인 안창순 님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면서 이루어졌으며, 이번 신원확인으로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개시된 이후 총 184명의 6·25전사자 신원이 확인되었다.
고인의 유해 발굴은 어린 시절 6·25전사자 유해 수습을 목격했던 국민의 제보에서 시작되었다.
2012년, 제보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더듬어 “6·25전쟁 초기에 장작을 얻으러 오르던 야산에서 6·25전사자들의 유해를 매장하는 것을 보았다.”는 6·25전사자 유해의 소재 관련 목격담을 국유단에 제보하였습니다. 국유단은 목격담을 토대로 52사단 장병 30여 명과 함께 성남시 분당구 동원동 소재의 야산에서 제보자가 지목하는 지역에 대한 유해발굴 작전을 시작하였다.
그 결과, 발굴 작전 11일 차에 일괄유해(같은 장소에서 타인의 유해와 함께 발굴되는 유해)형태로 좁은 구역에 함께 묻혀 있던 6·25전사자의 유해 3구가 62년 만에 후배 국군 장병들을 통해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유해는 발굴 당시 수분을 머금고 있어 붓과 같은 발굴 도구에도 쉽게 손상될 수 있을 만큼 약화 되어 있었다.
이때 수습된 3구의 유해 중 1구는 지난해 12월 신원이 확인되며 안타까운 사연이 세상에 알려졌던 고(故) 박동지 이등상사의 유해였다.
특히, 고인의 신원확인은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 채취’가 있었기에 가능하였다.
1사단 소속으로 6·25전쟁에 참전한 고인은 ‘과거 대량 유해발굴지역 자료 재분석’ 지역인 ‘다부동 전투’에 참가한 것으로 분석되었고, 국유단 기동탐문관은 자료 분석을 통해 고인의 유가족인 여동생 안창순 님을 찾아내어 2021년 12월에 자택을 직접 방문해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였다.
하지만 안창순 님의 유전자 시료를 분석 및 비교한 결과, 당초에 예상되었던 ‘다부동 전투’의 발굴 유해가 아닌 2012년 성남시 동원동에서 발굴된 유해가 남매 관계로 판정되며 고 안승원 일병의 신원이 확인되었다.
고인은 1949년 군에 입대하여 1사단 12연대 소속으로 ‘수원 북방 전투’(1950.7.3.~4.) 중에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은 24세의 나이로 6·25전쟁이 발발하기 한 해 전인 1949년 8월 7일 1사단 12연대에 입대하여 개성에서 복무하던 중, 북한군의 남침을 받아 6·25전쟁 초기에 전투를 치르며 남하하다가 수원 북방 전투에서 전사한 것으로 추정된다.
‘수원 북방 전투’는 6·25전쟁 개전초기, 한강 방어선에서 철수하는 아군을 엄호하기 위해 1사단이 수원 북방 일대에 축차 방어진지를 편성하고 북한군의 이동을 지연시켰으나, 병력과 장비의 열세로 하루 만에 수원 이남으로 물러난 전투다.
고인은 1926년 12월 25일, 전북 정읍에서 4남 2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여동생 안창순 님은 고인에 대한 기억이 없지만, 생전의 부모님이 “잠시 휴가를 나왔다가 들어간 후 전쟁이 나면서 영영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씀하셨고, 고인의 어머니께서는 차남이 군에 가서 전사하자 화병이 들어 답답함을 못 이기실 때마다 전사자의 사진을 꺼내놓고 한없이 우셨다고 기억하셨다.
유가족은 고인의 유해를 찾은 것에 대해 “오랜 세월이 흘렀는데 찾았다고 하니 꿈만 같다.”면서도,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오빠의 유해를 확인했으면 화병도 안 걸리고 건강하게 사셨을 텐데 아쉽다.”는 표현을 하시기도 하였다.
고 안승원 일병의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3월 11일 전북 정읍시에 위치한 여동생 안창순 님의 자택에서 고인의 참전 과정과 유해발굴 경과를 설명하고 ‘호국의 얼 함’을 유가족 대표에게 전달하는 등 약식으로 진행됐다.
6·25전사자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국민 여러분의 참여가 절실하다.
이번 고 일병 안승원 님의 신원확인은 어린 시절의 기억을 그냥 지나치지 않은 국민의 6·25전사자 유해 소재 제보 참여와 국유단의 적극적인 유가족 기동탐문의 결과이기 때문이다.
6·25전사자 유해발굴은 영농, 등산과 같은 일상 활동이나 공사 간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 또는 유품을 발견하였거나 들은 내용 등 국민 여러분이 알고 계시는 사소한 제보로도 참여 가능하다.
특히 이번 사례와 같이 6·25전사자 유해발굴은 전방지역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통념과 다르게 전쟁 초기전투는 전국 곳곳에서 이루어진 만큼 국민 여러분이 생활지역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전사자 유해의 작은 흔적을 제보하는 것도 6·25전사자 유해발굴사업에 참여하는 고귀한 실천이 될 수 있다.
또한 발굴된 6·25전사자 유해의 유전자 비교를 위해 가내에 6·25전쟁에 참전하셨으나 미수습되신 친인척이 계시지는 않는지 확인이 필요하며, 유가족(친·외가 8촌까지)이 확인되셨다면 국유단 대표번호(1577-5625)로 연락 주시거나 보건소, 보훈병원, 군병원 등에서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하실 수 있다.
유해소재 제보 시 최대 70만원 포상금이 지급(6·25전쟁 국군 전사자 및 경찰, 학도병, UN군)되며, * 6·25 전사자 유해 신원확인 시 최대 1,000만원 포상금 지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