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하 국유단, 단장 이근원)은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6·25전쟁 당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하다가 입대한 지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전사한 두 명의 호국영웅을 73년 만에 가족의 품으로 모신다고 13일 밝혔다. 이로써, 2000년 4월 유해발굴이 시작된 이래 신원이 확인된 전사자는 총 219명으로 늘었다.
고(故) 이영조 하사(현 계급 상병)는 지난 2005년 3월경 경북 포항시 도음산 일대에서 발굴하여 218번째로 신원을 확인했다.
유해의 발굴은 6·25 전쟁 당시 부역으로 동원됐던 지역주민들의 ‘흩어져 있던 전사자 유해를 도음산 정상 부근에 매장했다’는 증언을 토대로 2005년 3월 전문발굴요원에 의해 실시되었고,그 결과, 도음산 일대 지역에서 400여 구의 유해를 수습했고 이 지역에서만 현재까지 고인을 포함하여 총 12명의 신원을 확인했다.
신원확인 과정에서는 특히, 2021년 대구·경북지역에서 실시한 「민·관·군 협업 유가족 집중 찾기」기간 중 육군 제50보병사단 소속, 대구시 중구의 남산 1동대 오희찬 예비군 지휘관의 활약이 컸다. 오 지휘관은 국유단에서 받은 지역별 전사자 명부를 통해 고인의 막내 여동생 이숙자(75세) 님을 찾은 후 직접 방문하여 유전자 시료를 채취하였고 이후 고인의 유해와 채취한 유가족의 유전자 시료를 정밀 분석하여 가족 관계임을 최종 확인했다.
고(故) 이영조 하사는 국군 수도사단 소속으로 인천상륙작전의 발판을 마련한 낙동강 방어의 동부 축선인 「기계-안강 전투」(’50. 8. 9. ~ 9. 22.)에 참전 중 전사하셨다.
1931년 11월 5일, 대구광역시 남산동 일대에서 3남 2녀 중 둘째로 태어난 고인은 유가족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입대 전 생활고로 학업을 포기하고 공장에 다니며 생계를 유지하였다고 한다.
이후 고인은 낙동강 방어선이 구축되어 격전을 벌일 때인 1950년 8월 입대해 국군 수도사단에 배치되었으며 이후「기계-안강 전투」에 참전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던 중 안타깝게도 1950년 9월 4일, 19세의 꽃다운 나이에 산화하셨다.
「기계-안강 전투」는 국군 수도사단이 동측방의 국군 제3사단과 함께 국군의 동부전선을 돌파하여 안강∼경주를 거쳐 부산을 조기에 진출하려던 북한군 제2군단의 공격을 저지함으로써 낙동강 동부지역 작전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하는 새로운 국면을 마련한 전투이다.
다른 한 분인 고(故) 손명만 일병은 지난 2016년 11월, 경북 경주시 강동면 다산리 일대에서 발굴하여 219번째로 신원을 확인하였다.
지역주민이 건물 공사 도중 유해를 식별하여 제보한 지역을 대상으로 국유단 전문발굴요원이 주변을 확장하여 발굴하였다. 그 결과 혼재된 상태로 매장되어 있던 다수의 유해를 찾았고, 고인의 유해는 정밀 감식 결과 머리뼈부터 발뼈까지 대부분의 골격이 남아 있었다. 또한 유해와 함께 발견된 다량의 M1탄과 카빈탄 등의 유품을 통해서도 당시 치열했던 전투상황을 짐작할 수 있었다.
고인의 신원은 병적자료 등을 바탕으로 유가족 기동탐문을 통해 확인했다. 국유단 기동탐문관은 고인의 병적자료에서 본적지를 경남 거제시로 파악한 후, 이 지역의 제적등본과 비교해 지난해 8월 고인의 조카로 추정되는 손판철 님(70세)을 찾았다. 이후 손판철 님의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발굴된 유해와 대조하여 정밀 분석한 끝에 고인과의 가족 관계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故) 손명만 일병도 고(故) 이영조 하사와 같은 국군 수도사단 소속으로 함께 「기계-안강 전투」에 참전 중 전사하셨다.
1928년 2월 10일, 경남 거제시 두모동 일대에서 2남 1녀 중 셋째로 태어난 고인은 거제도에서 중학교까지 졸업하였으나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고향을 떠나지 않고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결혼까지 하였다. 전쟁이 발발하자 고인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아내를 남겨 두고 1950년 9월 입대해 수도사단으로 배치되었고 이후「기계-안강 전투」에 참전하여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던 중 안타깝게도 1950년 9월 20일, 22세의 나이로 장렬히 산화하셨다.
두 전사자에 대한 ‘호국의 영웅 귀환 행사’는 어제(12일) 경남 창원과 오늘(13일) 대구에 있는 유가족 자택에서 열렸다.
고인의 신원이 확인되었다는 소식에 고(故) 이영조 하사의 친여동생 이숙자 님은 “얼굴도 모르는 오빠지만 늘 그리웠는데 유해라도 이렇게 만나게 되어 다행입니다.”라고 군(軍)에 감사를 전했다.
또한 고(故) 손명만 일병의 친조카 손판철 님은 “할머니 유언으로 고인이 살아계실 때 좋아하셨던 녹두 고물 인절미를 매번 제사상에 올리는데 하늘이 감복해서 돌아오신 것 같습니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국방부유해발굴감식단 관계자는 6·25 전사자 신원확인을 위해 국민 여러분의 동참이 절실하다며, 전국 어디에서나 가능한 유전자 시료 채취는 6·25 전사자의 유가족으로서, 전사자의 친·외가를 포함해 8촌까지 신청 가능하며, 제공하신 유전자 정보를 통해 전사자의 신원이 확인될 경우 1,000만 원의 포상금이 지급된다며, 발굴된 유해의 신원확인을 위한 ‘시간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는 만큼, 국민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동참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살명했다.
도한, 국유단 탐문관들은 각지에 계신 유가족을 먼저 찾아갈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으며 유전자 시료 채취를 희망하고 계시지만 거동 불편, 생계 등으로 방문이 어려우신 유가족께서는 대표번호 1577-5625 (오! 6·25)로 언제든 연락 주시면 직접 찾아뵙고 유전자 시료를 채취해 드린다고 덧붙였다.
▲ 고(故) 손명만 일병 유품
▲ 고(故) 손명만 일병 유해
▲ 고(故) 이영조 하사 유해
▲ 발굴 당시 고(故) 손명만 일병 유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