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에 함께 참전해 적군과 싸우다 전사한 ‘호국의 형제’ 고 최상락(형) 하사·최임락(동생) 일병이 73년 만에 넋으로 만나 국립대전현충원에 나란히 잠들었다.
23일 오전 국립대전현충원에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 주관으로 유가족, 국방부 인사기획관, 군 주요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 최상락 하사와 고 최임락 일병의 안장식을 엄수했다.
행사는 먼저 현충관에서 영현입장을 시작으로 고인에 대한 경례, 유해발굴 경과 및 참전전사 보고, 추모사,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을 실시하고 묘역으로 이동하여 두 형제의 고향인 울산광역시 울주군의 흙으로 허토를 한 후 조총 및 묵념 등의 순서로 진행되었다. 그리고 부득이하게 안장식에 참석하지 못한 신원식 국방부장관의 서신을 인사기획관이 유가족에게 전달하였다.
국립현충원 내 6·25전쟁 전사자 형제 묘역을 조성한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이다.
호국의 형제 안장 사례 - 1호 안장 : '11. 6. 6. / 국립서울현충원 / 故 이만우(형) 하사와 故 이천우(동생) 이등중사 - 2호 안장 : '15. 6. 4. / 국립서울현충원 / 故 강영만(형) 하사와 故 강영안(동생) 이등상사 - 3호 안장 : '23. 6. 6. / 국립서울현충원 / 故 김봉학(형) 일병과 故 김성학(동생) 일병 - 4호 안장 : '23. 6. 28. / 국립제주호국원 / 故 허창호(형) 하사와 故 허창식(동생) 하사 - 5호 안장 : '23. 11. 23. / 국립대전현충원 / 故 최상락(형) 하사와 故 최임락(동생) 일병 |
이번 안장식은 6·25전쟁 당시 두 형제의 숭고한 헌신에 대한 예우 차원에서 ‘호국의 형제’라고 명명하여 거행하였다.
아울러 이번에 조성된 ‘호국의 형제’ 묘가 국민 모두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숭고한 정신을 일깨워 주는 호국보훈의 명소가 될 수 있도록 묘비 앞에 고인들의 동생이 쓴 추모글과 전투 경로 등이 새겨진 추모석을 설치하였다.
형, 고 최상락 하사는 1929년 4월, 울산광역시 울주군에서 6남 2녀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과 함께 농사를 지으며 실질적인 장남 역할을 한 든든한 아들이었다.
광복 이후 남·북한 사이의 긴장이 고조된 상황 속에서 동생들에게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지켜주기 위해 1949년 2월, 사랑하는 부모님과 형제와의 이별도 마다하지 않고 부산에 있는 제5연대에 자진 입대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고인은 국군 제3사단 제23연대 소속으로 낙동강 방어 전선으로 이동하여 ‘울진-영해전투’에 참전하였다. 이후 동해안 최대의 병참기지인 경북 포항을 사수하기 위해 북한군 제5사단과 격전을 펼친 ‘영덕-포항전투’에 참전 중 1950년 8월, 21세의 꽃다운 나이로 장렬히 전사하였다.
동생, 고 최임락 일병은 1931년 1월, 셋째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열정적이고 책임감이 강하셨다.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부산에 사시던 외당숙의 식당에서 일을 배우며 집안을 부흥시키겠다고 밤잠을 설쳐가며 일하던 중 전쟁이 발발하자 형의 뒤를 따라 1950년 8월, 부산에서 입대 후 미 제7사단 카투사로 배치되어 일본 요코하마에서 군사훈련을 받았다.
이후 인천상륙작전에 참가하여 인천과 서울 등을 수복하고 북진 작전에 합류하여 북한 함경남도 이원항에 상륙하여 ‘장진호 전투’에 참전 중 안타깝게도 1950년 12월, 19세의 젊은 나이에 전사하였다.
고 최임락 일병은 긴 세월 동안 북한지역에 잠들어 계시던 중 1995년 미국 하와이에 있는 미국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에 인계되었다. 이후 한·미 양국의 끈질긴 노력으로 신원이 확인되었고, 올해 7월 현역 군인인 조카 최호종 해군 상사의 품에 안기어 대한민국 공군특별기(KC-330, 시그너스)를 타고 F-35A 전투기의 호위를 받으며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이번 행사를 주관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은 “73년의 긴 세월을 이겨내고 두 분 호국의 형제님을 함께 모셔 넋을 기리는 뜻깊은 자리를 갖게 되었다”며, “선배님들의 핏값으로 오늘도 태극기가 창공에 휘날릴 수 있으며, 우리 대한민국이 세계 속의 선진강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만큼, 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이 헛되지 않도록 확고한 대적관으로 무장하고 매 순간 이기는 것이 습관이 되는 ‘자랑스러운 육군, 승리하는 육군’을 만들어 가겠다”라고 밝혔다.
비록 고인이 되셨지만 두 분의 형님을 함께 국립묘지에 모시게 된 막내 동생 최용(79세) 씨는 “8남매 중 막내인 저만 남았는데 이렇게 두 형님을 넋이라도 한 자리에 모실 수 있어 꿈만 같습니다.”라며 “어려운 과정을 거쳐 형님들을 호국보훈의 성지에 안장할 수 있도록 고생하신 모든 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소회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