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2024.05.26] 강화도에서 서쪽으로 7㎞ 떨어진 볼음도는 북한 땅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최접경지역이자 한강 하구 중립수역이 시작되는 군사 요충지다. 남북을 가르는 철책만 없을 뿐 육지의 최전방처럼 섬에도 1년 365일 긴장감이 흐른다. 볼음도는 해군과 해병대 부대가 함께 주둔하는 우리나라 몇 안 되는 섬이기도 하다. 해군·해병대는 이곳 볼음도에서 원팀을 이뤄 우리 영토와 영해를 굳건히 수호하고 있다. 이들의 모습을 직접 확인하기 위해 지난 23일 낯선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올랐다.   글=이원준/사진=이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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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초소에서 북쪽을 응시하고 있는 볼음도 감시대 장병.

 

한강 하구와 NLL이 만나는 볼음도 

볼음도에 입도하기 위해선 강화도 선수선착장에서 여객선에 탑승해야 한다. 선착장과 볼음도를 오가는 여객선은 하루 3번 운항한다. 다른 섬과 달리 볼음도에 입도하려면 별도의 승선신고서도 작성해야 한다. 모든 승선자는 인적 사항, 방문 목적, 체류지를 상세히 적어 낸다. 최전방지역임을 의미하는 절차다.

 

오전 8시50분 출항하는 첫 여객선에 승선하니 한 시간쯤 지나 볼음도 선착장에 도착했다. 볼음도라는 이름은 조선 인조 때 명나라로 가던 임경업 장군이 풍랑을 만나 이곳에 체류하던 중 보름달을 본 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선착장에서 섬 반대편까지 직선거리는 약 5㎞, 해안선 길이는 총 16.2㎞다. 내륙에는 모내기를 갓 끝낸 푸른 논이 펼쳐져 있고, 해안가 쪽으론 고동색 갯벌이 발달해 있다. 주민 대다수는 농업 종사자다.

 

선착장에서 하선한 뒤 울퉁불퉁 비포장도로를 따라 먼저 해군인천해역방어사령부(인방사) 볼음도 해상전탐감시대를 찾았다. 1965년 창설된 볼음도 감시대는 다른 섬에 있는 해군 감시대처럼 감시장비를 운용하며 책임해역의 감시·조기경보 임무를 수행한다. 특히 볼음도는 한강 하구 중립수역 기점이자 수도권 서측 해역의 끝인 군사 요충지다. 볼음도 서쪽 말도에서부터 서해 북방한계선(NLL)이 시작된다.

 

볼음도 감시대는 수도권 길목에 자리 잡은 핵심 부대로 24시간, 365일 전장 감시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인근 항로를 오가는 어선과 여객선의 NLL 월선을 방지하고, 적 해역의 동향을 확인하는 것이 주 임무다. NLL을 따라 불법조업을 일삼는 중국 어선의 한강 하구 침입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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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2사단 볼음소초 장병들이 볼음저수지 일대를 정밀탐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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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특기 교육을 하고 있는 볼음소초 장병들.

 

임형석(소령) 볼음도 감시대장은 “모든 부대원이 적과 마주한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똘똘 뭉쳐 있다”고 소개했다. 육지와 떨어진 격오지라 근무환경과 병영생활에 다소 불편한 점도 있지만, 전 부대원이 단결해 어려움을 이겨 내고 있다고 그는 설명했다. 감시대장을 중심으로 부대원이 하나 된 결과 볼음도 감시대는 올해 해군2함대 최우수 감시부대로 선정되는 성과도 냈다. 

 

“함정 근무도 해 봤지만, 격오지 부대에서만 느낄 수 있는 자긍심이 있습니다. 활기찬 부대를 만들기 위해 평소 부대원과 많이 소통하고 있습니다. 30대 초중반 ‘MZ세대 지휘관’으로서 장병들의 애로사항을 가까이서 청취하고자 노력 중입니다.”

 

볼음도 감시대 가장 높은 곳에는 북쪽을 향해 설치된 감시초소(OP)가 있다. 부대엔 레이다를 비롯한 첨단 감시장비가 있지만, 경계 임무에 만전을 기하기 위해 병력이 이곳에서 24시간 교대근무한다. 초소 위에 오르니 저 멀리 북한 연백평야가 한눈에 들어왔다. 동쪽으로는 교동도와 석모도, 서쪽으로는 말도가 가깝게 자리 잡고 있다. NLL 이북 함박도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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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리와 다리가 까만 천연기념물 저어새. 부리를 좌우로 저으면서 먹이를 찾는 습성에서 이름이 유래됐다.

 

병영생활은 즐겁게, 대민지원도 앞장 

매 순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는 임무의 연속이지만, 병영생활만큼은 보다 즐겁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볼음도 감시대는 올해부터 ‘한마음 투어’라는 프로그램을 새롭게 운영 중이다. 간부·병사들이 조를 이뤄 볼음도 곳곳을 둘러보고, 관사에서 맛있는 음식을 조리해 먹으며 스트레스를 훌훌 털어 내자는 취지다.

 

장병들은 이따금 부대 밖을 나와 볼음도 해안을 걷기도 한다. 볼음도는 최근 나들이객 사이에서 ‘힐링 산책’ 명소로 떠오르고 있다. 섬 둘레길을 거닐다 보면 솔향이 가득한 자연을 느낄 수 있다. 길을 따라 계속 걷다 보면 800살 된 서도은행나무(천연기념물 304호), 광활한 갯벌이 펼쳐진 조개골해수욕장과 영뜰해변을 지난다. 특히 이맘때엔 세계적인 멸종위기종 저어새(천연기념물 205호)를 섬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감시대는 볼음도 주민과 민·군 화합에도 앞장서고 있다. 볼음도 주민 대부분이 고령층인 점을 고려해 농번기 일손을 돕는 대민지원 활동이 대표적이다. 마침 이날 감시대와 가까운 논에서 모내기 대민지원이 이뤄지고 있었다. 장병들은 논 한쪽에서 모내기에 사용할 모판을 부지런히 옮기며 일손을 보탰다.

 

상황장교로 매일 바쁘게 임무 수행 중인 임훈규 중위는 휴식시간을 반납하고 대민지원에 자원했다. 그는 “지역주민과 상생하는 군(軍)의 모습을 실천하고자 자원해 일손을 돕고 있다”며 “인천 도시 출신이라 모내기를 하는 것도, 이양기를 보는 것도 처음인데 마치 농촌 체험을 하는 것 같아 즐거운 마음으로 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밖에 감시대는 매해 바다의 날이면 볼음도 해변 해양 환경정화 활동도 펼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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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정상에서 바라본 볼음도 전경. 섬에는 논을 비롯한 경작지가 많고 해안 주위로 갯벌이 발달해 있다.

작지만 강한 볼음소초 

 

볼음도 감시대를 떠나 다음으로 해병대2사단 볼음소초로 향했다. 볼음소초는 감시대에서 차량으로 10분가량 떨어진 곳에 있다. 볼음소초 역시 다양한 감시장비를 운용하며 해상침투를 비롯한 적 위협에 맞서고 있다. 볼음도 도서방어 임무 역시 소초가 담당한다. 하루 2차례 해·강안 수색정찰을 하며 섬을 굳건히 지키고 있다.

 

해군 볼음도 감시대, 해병대 볼음소초는 ‘원팀’을 이뤄 책임해역·도서방어 임무를 맡고 있다. 가령 감시장비로 이상징후를 포착하면 즉각 통신·문자망을 활용해 상황을 공유하고 대응에 나선다. 두 부대 상황실에는 상호 연락업무를 하는 전담인력도 있다. 이를 통해 수도권 서쪽 해역에 대한 빈틈없는 감시태세를 유지하고 있다.

 

서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볼음소초 헬리패드에서는 장병들의 주특기 교육훈련이 진행되고 있었다. 이곳 장병들도 최전방에서 임무를 수행한다는 자긍심으로 똘똘 뭉친 모습이었다. 주특기 훈련을 비롯해 매일 반복되는 일과이지만, 장병들의 눈빛에서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 굳은 결의를 엿볼 수 있었다.

 

장현서(중사) 부소초장은 이번이 3번째 볼음소초 근무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의 하루는 캄캄한 새벽시간에 시작된다. 해가 고개 드는 아침까지 감시·경계 임무를 수행하고 취침을 한 뒤 다시 오후에 일어난다. 그렇지만 그는 “자신을 비롯한 부대원이 가족과 국민의 생명·안전을 지킨다는 생각으로 책임감 있게 맡은 임무를 처리하고 있다”며 “누구보다 강한 전투력으로 도서방어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일몰시각이 가까워지자 볼음소초 장병들은 개인화기와 전투장구를 챙겨 차량에 탑승했다. 부대는 매주 한 차례 볼음도 일대 해안선을 따라 정밀탐색작전을 전개한다. 이날도 장병들은 2인 1조로 주요 해안선을 샅샅이 살피며 경계태세를 공고히 했다. 바다를 붉게 물들인 서해 낙조가 이들의 조명이 돼 줬다.

 

어둠이 찾아온 볼음도, 주민과 관광객은 하루를 마무리할 채비를 한다. 볼음도 감시대·볼음소초의 일과는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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