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9.11 12:56

상미판 - 개머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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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미판<床尾板>이 개머리판이 된 이유?

 

 

3-1.jpg<좌측 사진설명:우리말 군사용어 제정에 공헌한 고 장창국 육군대장(위).1951년 7월 전쟁 중 한 육군부대에서 잠시 시간을 내 한글 교육을 하고 있다.<국방일보 자료 사진>

 

3-1.jpg가늠자, 노리쇠, 방아쇠, 개머리판. 이제는 ‘짝대기’ 하나 이병부터 별 네 개 대장에 이르기까지 60여만 명의 대한민국 장병에게 익숙한 이 한글 표기 우리말 군사용어들은 언제 탄생한 것일까.

 

지금의 기준으로 보면 아예 처음부터 그 이름을 갖고 있었던 것처럼 무척이나 자연스러운 용어지만 100여 년 전 대한제국군 시절만 해도 사정은 달랐다.

 

광무11년, 서력으로 1907년에 대한제국 군부에서 만든 보병사격 교범에는 “食指(식지)의 第二節(제2절)을 引鐵(인철)에 拘(구)하야”라는 구절이 나온다.

 

‘집게손가락 두 번째 마디를 방아쇠에 걸고’라는 뜻이다. 이때만 해도 방아쇠는 ‘引鐵’(인철)이라는 어려운 한자로 썼던 것이다. 가늠자와 가늠쇠도 사정은 같다. 대한제국군 보병사격 교범에는 “照準機(조준기)는 照星(조성) 及(급) 照尺(조척)으로 成(성)하니”라고 적고 있다. 조준 부속은 가늠쇠와 가늠자로 구성된다는 뜻이다.

 

가늠자, 가늠쇠, 방아쇠 등 한자에 기댈 필요 없이 한글로 당당하게 적을 수 있는 우리말 소총 부속 용어들이 널리 쓰이게 된 것은 바로 대한민국 국군이 탄생하면서부터다. 1·2군 사령관과 합참의장을 역임한 고 장창국(1924~96·대장 전역) 장군은 1946년 육군의 전신인 조선경비대 1연대와 육군사관학교에 근무하면서 용어 번역 문제 때문에 고민한다.

 

미 육군이 제공해준 야전교범(FM)을 번역하면서 적당한 한글·한국어 용어를 찾는 것이 그의 몫이었기 때문. 일본식 군사용어를 그대로 쓸 수도 없고, 한자와 한자어 투성이의 대한제국 군사용어를 그대로 쓰는 것은 무리였다. 그렇다고 트리거·포어사이트 같은 영어를 그대로 가져와 쓸 수도 없는 노릇.

 

고민하던 장 장군은 이응준·신태영 장군 등 육군 원로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이들은 대한제국 무관학교를 다녔던 경험이 있는 만큼 적절한 한국어 군사용어를 알려주기엔 제격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한글학회 이사를 지냈던 고 한갑수(1913~2004) 선생을 비롯한 거물급 한글학자들의 자문과 도움도 받았다.

 

이처럼 창군 초기 군 원로와 한글학자의 자문을 받아 만들어 낸 것이 바로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우리말 군사용어들이다. 당시 군 원로들의 한글과 고유어 군사용어에 대한 관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 중 하나는 개머리판이라는 용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대한제국군 시절만 해도 개머리판을 뜻하는 소총 부속의 공식 용어는 한자로 ‘床尾板’(상미판)이었다.

 

하지만 독립신문 1898년 12월 15일자 보도 등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에서는 개머리라는 용어를 썼다. 개머리판 같은 한글 표기 고유어 용어들이 존재했음에도 이를 상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공식 책자에서는 상미판 같은 한자 표기 한자어 용어를 썼던 것이다.

 

그 때문에 대한민국 국군 탄생 이후에도 육교 제1호 FM22-5 훈련교범 등 일부 공식적인 책자에서는 어디까지나 ‘床尾板’(상미판) 같은 한자 표기 한자어 용어를 썼다. 그런 어려운 한자 표기 한자어를 버리고 개머리판처럼 더 쉬운 한글 표기 고유어 용어들이 공식용어로 자리잡기까지 장 장군처럼 한글과 우리말의 중요성을 잘 이해하고 있던 창군 초기 원로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사실 한글 보급에 대한 군의 기여는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군은 우선 자체 인력 활용을 위해서 입대자 중 문맹자에게 한글 교육을 실시했으며 1960년대까지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글 교육을 실시한 사례도 많았다. 육군사관학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건군 이후 1970년까지 군이 한글 교육을 통해 문맹 상태를 면하게 한 인원은 무려 58만7298명에 달한다.

 

2009년 10월 9일. 오늘의 대한민국 군대는 한글과 국어를 위해 어떤 기여를 할 수 있을까. 알파벳 약자 표기와 영문 군사용어들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에 오늘 하루만이라도 ‘개머리판’을 ‘개머리판’으로 부르기로 결정한 창군 초기 원로들의 정신을 되새겨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김병륜 기자   lyuen@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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