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제59주년 재향군인의 날
충북 청주 거주 김태연 예비역 병장
빨간 명찰을 달고 귀신을 잡을 군기를 갖고 있는 해병대. 강군(强軍)의 상징인 해병대가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히어로에 서 빨간 명찰을 달게 된 배우 현빈과 지난 7월 강화도 해병2사단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으로 전국을 강타하며 각종 언론매체를 수놓았다. 이런 해병대의 희노애락을 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지켜본 이가 있다. 주인공은 충북 청주시에 살고 있는 올해 83살의 김태연 할아버지. 김 할아버지는 바로 청춘은 물론 노년까지도 해병대 사랑을 이어오고 있는 충북은 물론 전국에서도 유일무이한 해병대 1기생이다. ‘제59주년 재향군인의 날’을 이틀 앞둔 6일 김 할아버지로부터 해병대 창설부터 재향군인으로의 삶에 대해 들어봤다.
▶어떻게 해병대에 입대하게 됐나.
“6ㆍ25 한국전쟁 발발 1년 전인 1949년 4월 5일 해군으로 입대했다. 이후 함께 입대한 1천200명의 해군 중에서 해병대를 창설하기 위한 인원 착출이 있었고 나를 포함해 300명의 해병이 선발돼 자랑스런 해병대 1기생의 삶을 살게 됐다.”
▶해병대원으로 선발돼 어떤 삶을 살았는지 이야기 해주신다면.
“처음에는 신병으로 해병대가 무엇인지도 몰랐던 시절 1년 동안 훈련만 받았다. 그 당시 훈련을 받으면서 기합을 받기도 했지만 최강 군인이 되는 길이라 생각하고 묵묵히 견뎌냈다. 기합은 1957년 8년간의 해병대 생활을 마칠 때까지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것도 훈련의 하나라고 생각하니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았다.”
▶훈련이 혹독했었다는데.
“훈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실시됐고 분대장과 소대장들은 강군을 만들기 위해 우리들을 들볶았지. 정말이지 그때는 상사들을 모두 죽이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그런 상사들과 6ㆍ25전쟁 때는 한없이 다정하게 지냈지. 상사들과 떨어지면 삽시간에 죽을 수도 있었으니까.”
▶힘든 해병대 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해병대 3대대 11중대 소속으로 훈련하면서 일주일을 넘게 굶어본 적도 있었어. 그 때는 젊은 혈기에 견뎠지만 지금이라면 한 시간도 못 넘길꺼야.”
▶6ㆍ25 전쟁을 치르면서 위험했던 일은.
“파주 장단 31고지전이 가장 기억에 남아. 여기서 사랑하는 해병대 후임 6명을 잃었거든. 당시는 인해전술을 펼치던 중공군이 진지로 밀려들고 있었고 이를 막기 위해 아군은 쉼없이 포격을 가하고 있던 급박한 상황이었어. 나를 포함해 후임 등 7명은 벙커에 들어가 있는 힘을 다해 중공군을 막다 잠시 밖으로 나왔고 이 때 아군 포가 벙커를 덮쳐 가까스로 죽을 고비를 넘겼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나는 후임들의 얼굴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 뿐이야.”
▶해병대를 전역해 좋은 점은.
“첫번째로는 활발하다는 것이고 두번째는 의리가 있다는 것이다. 해병전우들이 제대 후에도 각종 봉사활동은 물론 주민들을 위한 행사를 위해 솔선수범하는 것은 해병대를 나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동기들이 하나둘 세상과 작별할 때 기분은.
“할 수 없잖아. 사람은 태어나면 언젠가는 죽게 되니까. 하지만 아직 남아있는 전우들과 후임들이 있기에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것 같아.”
▶해병대는 의리빼면 시체인데 총기사건에 대해 한 말씀 하신다면.
“그 일은 정말 이해가 안가는 사건이야. 요즘 젊은이들의 생각이 달라졌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함께 땀 흘리며 의지하고 살아가는 동료를 죽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되는 일이지. 솔직히 지금 훈련은 우리 때랑 비교하면 ‘누워서 콩 먹기’로 우리처럼 훈련받았으면 다 죽여야 한다. 동료를 살해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해병대 입대를 앞둔 후배들에게 충고의 말을 전한다면.
“빨간 명찰, 팔각모의 자부심을 생각하면 자신의 행동 하나하나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정신이 건강한 사람이 됐으면 좋겠어.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데 최강 군인인 해병대에서 몸과 마음을 수행할 길을 만들었으면 하는 소망이야.”
▶무공훈장 수훈자로 재향군인의 삶을 살아가시고 있는데 어려운 점은.
“전쟁에 참여해 나라를 지켰다고 훈장을 주고 매달 일정액의 돈도 주는데 더 바랄 것이 없지. 해병대 전우회에서도 1기 선배라고 깍듯이 모시니까 바랄 것은 없어. 하지만 상이군경은 물론 참전용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한 것은 정말 가슴이 아파.”
▶어떤 관심이 필요한가요.
“병원치료도 무료로 받고 있지만 나는 아직 건강해서 병원 신세를 별로지지 않지만 다른 참전용사들은 정해진 일정액을 넘기면 자신이 부담해 병을 치료해야 하는데 지원액을 조금 늘려줬으면 하고 다음으로는 학자금 지원 등 각종 혜택이 있지만 이에 대한 홍보가 제대로 되지 않아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 보훈청이 바쁜 곳이라는 것은 알지만 조금만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어.”
▶마지막으로 하실 말씀이 있다면.
“아직 살아 있으니까 이런 인터뷰도 할 수 있고 오래 살 일이지만 이 나라가 이만큼 성장할 수 있는 토대에는 목숨을 바쳐가며 전쟁을 치룬 선배들이 있다는 생각을 잊지 말아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이뤄졌으면 한다.”
<출처 : 충청매일 http://www.ccd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447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