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일보 기자가 간다] 해병대 교육훈련단 공수기본훈련
그들의 강인함, 그들의 자신감, 그들의 열정에 손들 수밖에…
국방일보 기자가 간다 - 19. 해병대 교육훈련단 공수기본훈련
2주 차 훈련 150번 교육생으로 합류
6㎞ 뜀걸음·11m 모형탑 훈련 등 실시
산악복 착용까지도 쉬운 과정 없어
해병대 교육훈련단 공수교육대 256차 교육생들이 낙하산을 분리해 회수하는 ‘송풍훈련’을 받고 있다.
조수연 기자가 11m 높이 모형탑에서 뛰어내리는 모습.
조수연 기자가 팔벌려뛰기 127회를 소화하는 모습.
조수연 기자가 착지 동작을 숙달 중인 모습.
대학 시절, 해병대 출신 동창이 복학했다. ‘순둥이’ 같았던 그의 외모에서는 강인함이 뿜어져 나왔고, 눈빛도 180도 바뀌어 있었다. ‘소수 정예’ ‘무적’ ‘신화를 남긴’…. 해병대 정신은 뭘까? 질문의 답을 찾을 기회가 주어졌다. 해병대 세계를 직접 체험하기로 한 것. 해병대 교육훈련단(교훈단) 공수교육대 교육생이 돼 공수기본훈련을 함께했다. 글=조수연/사진=한재호 기자
127명 전우들 응원 덕분에 이겨낸 한계
국방일보 기자로 전국의 야전부대를 취재한 지 18개월. ‘미필’ 여성 기자이지만 이제는 군복에 부착된 휘장의 의미를 알게 됐다. 특히 최정예 공정요원을 상징하는 낙하산 모양의 공수 휘장은 자부심 그 자체다.
지난 7일 찾은 해병대 교훈단. 취재 지원으로 함께한 공보정훈참모 장유진 소령도 수년 전 취득했다며 공수 휘장을 가리키며 자랑스러워했다.
해병대 교훈단의 공수기본훈련은 3주에 걸쳐 진행된다. 1주 차는 지상 동작(착지, 공중 동작, 모형문) 반복 숙달, 2주 차는 모형탑·조종술 시뮬레이터·송풍훈련, 3주 차에는 네 차례의 실제 강하가 이뤄진다.
기자는 256차 공수교육대 150번 교육생으로 합류했다. 훈련은 2주 차에 접어든 상황. 극한의 훈련과 혹독한 평가 기준을 넘지 못한 16명의 교육생이 퇴교했다. 최정예 공정요원으로 거듭날 교육생들은 긴장과 자신감이 뒤엉킨 표정이었다. 기자도 엉거주춤 대열에 합류했다.
훈련은 악명 높은 PT체조로 문을 열었다. “8번! 5번! 3번!” 교관의 불호령에 머리가 하얘진다. 한 번 조교 시범을 보여주고 암기했는지 질문하는 교관이 내심 원망스러웠다. 기어들어 가던 목소리가 악에 받친 듯 절로 커졌다.
동기 수(127명)만큼 팔벌려뛰기를 할 때는 눈앞이 캄캄했다. 점점 세지는 기자의 목소리를 들은 교관은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악’이 올라야 성장할 수 있다”고 했다.
무아지경으로 PT체조를 하다 보니 6㎞ 뜀걸음 순서. 달린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 함께 뛰던 조에서 낙오됐다. ‘방금 지옥 PT 받은 사람들이 맞나?’ 우렁찬 군가를 부르며 멀어져가는 교육생들에게 존경심이 생겼다. 턱 끝까지 차오르는 숨을 부여잡고 다시 달리니 희미하게 종점이 보였다. “동기야 힘내라!” 교육생 127명이 응원의 박수와 함성을 보내줘 가슴이 벅차올랐다.
VR 기기 활용 훈련 너무 실감나
본격적으로 시작된 훈련. 특수복장(산악복)을 착용하는 것도 초보에겐 쉽지 않은 일이었다. 어찌나 무겁던지 온몸에 땀이 좔좔 흘렀다. 공기 통할 구멍 하나 없는 산악복을 벗으니 바람이 시원했다. 옆에 있던 동기가 건네준 물 한 통을 눈치도 없이 벌컥벌컥 비워버렸다. 하지만 땀을 식힐 호사까지 부리진 못했다. 교관의 호통에 “해병! 공수!”를 외치며 집결지까지 뛰었다.
바로 착지훈련에 돌입했다. 착지할 때 받는 체중의 5배에 달하는 충격을 장딴지·허벅지·엉덩이 등으로 분산시키기 위함이다. 교육생들은 이미 온몸이 멍투성이가 되도록 착지 동작을 숙달했다. 어설픈 동작에 열외된 기자는 흙바닥에 별표(*)를 그려두고 사방으로 구르고, 또 굴렀다.
이어 기계식 주차장을 닮은 공중 동작 훈련장으로 향했다. 검은색 산악 헬멧을 쓰고 하네스에 매달려 낙하산 산개검사, 방향 판단, 전방위 경계, 조종줄을 이용한 공중 이동, 착지 동작을 익혔다. 몸이 뻣뻣한 기자는 동작 하나하나가 어설펐다. 하지만 실전(?) 같은 훈련을 반복한 덕인지 마음속에서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도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실내 훈련도 받았다. 가상현실(VR) 장비로 항공기 이탈부터 착지까지 모든 동작을 숙달하는 조종술 시뮬레이터 훈련. 2010년 교훈단이 전군 최초로 도입한 시뮬레이션 장비를 활용한다.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감 있는 훈련이 가능하다.
VR 장비를 착용하고 몸에 하네스를 연결했다. 곧 VR 기기에서 공수 전 과정이 눈앞에 펼쳐졌다. 곧이어 몸이 붕 뜨더니 세찬 바람이 불어왔다. 항공기 안에는 함께 뛸 강하자 캐릭터들도 보였다.
앞선 지상훈련에서 반복한 공중 동작들을 떠올리며 조종줄을 당겨가며 기지에 착지했다. 기지가 가까워지는 화면과 함께 기자의 발도 훈련장 땅에 닿았다. ‘그저 게임하는 느낌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마지막 일정인 모형탑 훈련만 남았다. 인간이 가장 공포심을 느낀다는 11m 모형탑 꼭대기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밑을 보면 안 된다는 교관의 당부는 잊은 지 오래였다. 평소 “돈을 줘도 번지점프는 하지 않겠다”던 겁많은 기자였다.
바닥이 돋보기를 댄 듯 생생히 들여다보였다. 일반적인 흙바닥이라는데, 기자의 눈에는 촘촘한 가시밭길처럼 보이고 다리는 덜덜 떨렸다. 배도 간질간질 아파왔다. 프로의 세계는 비정한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회사에 잘 뛰고 오겠다고 호언장담했는데…. 후회가 밀려왔다. 등 뒤에선 “퇴사할래? 뛸래?” 하는 교관의 매정한 독촉 소리가 들려왔다.
“(전방에 함성 3초간 발사!) 으아아악 (좋습니다. 뛰어!) 아악!!!!”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다. 모형탑 끝에 서서 주춤주춤 망설이는 기자를 교관이 과감히 밀어버린 것. 지상에서 배운 기체 이탈 동작은 떠오르지 않았다. 그 와중에 기계처럼 ‘일만, 이만, 삼만’ 하는 강하 구호가 터져나왔다. 반복숙달의 힘이었다. 착지 지점에 다리가 닿자마자 힘이 확 풀려 주저앉고 말았다.
‘악’에 받친 이틀…정신 무장 제대로
교훈단에서의 훈련 체험은 짧지만 강렬했다. 그야말로 ‘악’에 받친 이틀이었다. ‘귀신 잡는 해병’이라더니 사람 마음까지 사로잡는 해병대였다. 강인함 뒤의 유머러스하고 인간적인 모습은 기자를 감동시켰다. 땀과 모래가 뒤엉킨 몰골, 괴상한 비명과 어설픈 동작, 우스꽝스럽게 망가진 모습도 격려해준 전우들에게 정이 듬뿍 들었다.
부대를 나서는 길, 전날 입구에서 봤던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라는 표어도 왠지 다르게 다가왔다. 고작 이틀이었지만 해병대 정신으로 무장한 인간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았다.
“해병! 공수!” 구호도 입에 붙어버렸다. 빨간색 조립식 컨테이너에 ‘해·병·대’라고 쓰인 간판을 보면 반갑게 달려가 경례할 것만 같다.
며칠 동안 앓은 근육통보다 ‘공수요원 코스프레’ 후유증이 만만찮다. 고난도 훈련을 받은 군인은 강인할 것이라는 신뢰를 받는 것처럼, 공수 휘장을 내 마음에 품고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256차 전우들에게 전하고 싶다. 싫은 내색 하나 없이 도와줘 고맙다고. 해병대 정신 최고라고! “필승!”
국방일보 2023.06.16 https://kookbang.dema.mil.kr/newsWeb/20230616/3/ATCE_CTGR_0010040000/view.d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