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06.20 11:47

축구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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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전쟁은 1970년 엘살바도르와 온두라스간에 벌어진 5일간의 전쟁이다. (100시간 전쟁) 이 전쟁은 1969년 월드컵 예선전에서 붙은 시비가 명분이 되었지만, 진짜 이유는 두 나라 간에 정치, 경제적 갈등 때문이었고, 축구 시합은 기폭제 역할이었다.  여기에 엘살바도르에서 온두라스로 간 이민자 문제도 포함되었다.

 

 

이 두 나라는 130여 년 전부터 국경분쟁으로 충돌이 잦았다. 평균 수명 27세인 불행한 나라 엘살바도르와 문맹률 60%가 넘는 후진국 온두라스. 그러나 땅이 넒은 온두라스에는 지난 60년간 30만명의 엘살바도르인이 이주해 살고 있었다. 130여 회의 혁명으로 온두라스가 불안과 빈곤에 허덕이는 사이 이민자들은 서서히 경제권을 장악했다.  이것은 온두라스인의 가슴에 깊은 증오심을 심어주었다.

 마침내 월드컵 예선이 벌어지던 1969년 온두라스 정부가 일을 내고 말았다. 새로운 농지개혁을 실시하는 과정에서 엘살바도르 이민자들에게 추방령을 내린 것이다. 정부도 할 말은 있었다. 이주민들 대부분이 불법적인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시기가 문제였다. 왜 하필이면 예선전이 벌어지는 그 예민한 시기에??

아무튼 이것으로 두 나라 사이의 감정은 더욱 악화되었다. 

 

분쟁의 불씨를 안고 월드컵 지역 예선은 1968년 5월부터 시작되었다.

북중미 예선 A지역은 중미 6개국이 혈전에 혈전을 벌인 끝에 온두라스와 엘살바도르가 최종전을 갖게 되었다. 장소는 온두라스 수도였다.

1969년 6월7일 엘살바도르 선수단이 묵고 있는 호텔 밖에서는 밤새도록 온두라스 응원단이 소란을 피웠다.
자동차 경적을 울리고 깡통을 두르리며 고함을 질러대 엘살바도르 선수들은 잠을 잘 수 없었다. 그 탓이었는지 이튿날 열린 1차전에서 엘살바도르가 1:0으로 지고 말았다.
엘살바도르에서 이 경기를 지켜보던 한 소녀가 그 충격으로 권총자살을 했다. 이것은 전 국민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어 소녀의 장례식에 대통령을 비롯한 전각료가 참석하고 대표선수단도 조의를 표하는 등 엘살바도르 전체가 요동쳤다. 

6월14일 온두라스 팀이 2차전을 위해 엘살바도르의 수도 산살바도르에 왔다. 경기 전날 밤 온두라스 팀이 묵고 있는 호텔 밖은 예상대로 난리 북새통이었다. 엘살바도르 응원단이 보복이라도 하듯 호텔 창문을 깨고 죽은 쥐를 던지며 난동을 피운 것이다.
역시 한숨도 자지 못한 온두라스 선수들은 엘살바도르에 3:0으로 지고 말았다.

경기장에서 열띤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동안 관중석에서는 이미 응원단끼리 패싸움이 벌어지고 있었다.

온두라스 응원단 차량 150여 대가 불타고 응원단 2명이 목숨을 잃었으며 많은 사람이 다쳤다.
같은 시각 온두라스 전역에서도 복수극이 벌어져 엘살바도르인 수십명이 살해됐으며 게다가 이주민에 대한 방화도 일어나 재산 피해만도 2천만 달러에 이르렀다. 온두라스 정부는 더 나아가 엘살바도르에서의 수입을 전면 금지 시켰다. 이에 화가 난 엘살바도르는 세계인권위원회에 온두라스 만행을 제소했다.

난폭했던 두 나라의 경기

6월 23일 극도로 감정이 악화된 두 나라는 국교를 끊었고 6월 27일 중립지역인 멕시코시티에서 두 나라의 최종전이 열렸다. 이 날은 관중보다 경찰이 더 많았으며 경기는 마치 목숨을 걸고 하는 것 같았다.

결과는 2:2 무승부가 되어 연장전으로 이어졌다. 여기서 엘살바도르가 결승골을 터뜨렸다.

 그러나 이 한골이 바로 전쟁의 신호탄이 되었고 7월 14일 엘살바도르 전투기가 선전포고와 동시에 온두라스 4개 도시를 공습했다. 탱크를 앞세운 보병부대는 온두라스 국경을 넘어 25마일이나 진격했다.

이에 온두라스도 즉각 대응했다. 낙하산 부대를 엘살바도르 후방에 투입해 교란작전을 펼쳤다. 

                                                       전쟁을 선포한 엘살바도르 육군 

반격에 나선 온두라스 특수부대

 이 전쟁은 사흘간이나 계속되다가 미주기구와 이웃나라들의 중재로 7월18일 정전에 들어갔다.
피해는 온두라스가 더 커 온두라스는 축구에도 지고 전쟁에도 져 더 큰 상처를 입었고 이 전쟁으로 3천 명이 죽고 1만2천여 명이 부상했으며 15만 명이 집을 잃었다. 

 이렇게 전쟁까지 벌이며 월드컵에 나간 엘살바도르는 본선에서 처참하게 깨졌다.

유럽의 강팀들에게 10:1 대패를 당하며 3전 전패로 최하위로 탈락했으나 이것으로 끝난게 아니었다. 

 온두라스 경제를 휘어 잡았던 엘살바도르인들은 전쟁 중에 마구잡이로 살해당했으며 애써 모은 재산을 통째로 다 빼앗기고 엘살바도르로 쫓겨나야 했다. 이들이 보내온 돈으로 그나마 도움이 되었던 엘살바도르 경제는 파탄이 났으며 좁은 국토로 몰려든 인구와 실업자 문제로 경제난은 더욱 가중되었다. 온두라스 역시 국토가 초토화되고 수출이 막혀 경제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이후에도 적대 관계는 계속되었고 11년 후에야 겨우 수습되었다.

1980년, 양국은 영토 문제 해결 등을 포함한 평화조약에 합의했다. 

축구에 목숨거는 온두라스

출처 : Daum 지식 원문보기   글쓴이 : 긍~정적으로!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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