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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관진 국방부 장관이 5일 성남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아 헌화하고 있다. 합동분향소에는 강화도 해안 소초에서 총기 사고로 숨진 해병대원 이승훈 중사, 이승렬 병장, 박치현 병장, 권승혁 상병(왼쪽부터)의 영정과 위패가 안치돼 있다. [강정현 기자]


“아빠, 엄마. 20년 동안 건강히 키워주셔서 이제 해병대로 입대하려 합니다. 주신 사랑에 비하면 1000만 분의 1도 안 되겠지만 제대하고 나면 효도하겠습니다.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입대일이었던 지난 3월 21일 새벽, 권혁(20·사진) 이병이 자신의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남긴 글이다. 그는 이 글을 쓰고 11시간쯤 뒤인 같은 날 오후 2시 경북 포항의 해병대 훈련소에 1138기로 입소했다. 권 이병은 지난 4일 강화도에서 벌어진 총기 난사사고 당시 가해자인 김모(19) 상병이 쏜 총알 세 발을 몸으로 막아 인명피해를 줄였다.

 권 이병은 다이어리에 남긴 글에서 부모님에게 “그동안 못난 모습 많이 보여드리고 속 많이 썩힌 것 알고 있다”며 “사랑한다는 표현 한 번 제대로 못해서 죄송하다”고 썼다. 글은 고등학교 1학년인 동생 권율(16)군에게로 이어졌다. 권 이병은 “너에게 용돈 쥐어주면서 다독여줄 수 있는 형이 못 돼 많이 힘들었다. 욕하고 때리고 자랑할 만한 형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힘들 때면 날 찾는 모습에서 네 형이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썼다. 권 이병의 부상 소식을 듣고 미니홈피를 찾은 네티즌들은 “입대를 앞두고 마음이 복잡한 남자가 쓴 전형적인 글이지만 그래도 가족에 대한 애정이 묻어난다”고 답글을 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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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혁 이병이 입대일인 지난 3월 21일 새벽 미니홈피 다이어리에 쓴 글. 권 이병은 글에서 부모님에게는 “사랑한다는 표현 한 번 제대로 못해서 죄송합니다”고 썼다. [미니홈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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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키 1m78cm에 통통한 체형이었던 권 이병은 영화배우가 되고 싶어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지난해 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에 입학했다. 교수와 주변 학생들은 권 이병을 “말이 없고 눈웃음이 많았던 학생”이라고 기억했다. 지난해 가을 열린 정기공연에선 술에 취한 사내 역할을 맡았다. 당시 그는 “연기에 살고 연기에 죽고 싶다”고 했다. 해병대를 지원한 이유도 연기를 위해서였다. 복잡한 감정을 표현해 내려면 해병대와 같은 극한의 경험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취미는 여느 대학생과 마찬가지로 사진 찍기였다. 2008년부터 그의 미니홈피에 올라온 사진 중에는 유독 친구들을 담은 사진이 많았다.

 동생 권율군은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만큼은 ‘짱’이었다”고 말했다. 동생에게 형은 “부모님의 결혼기념일 등 가족의 크고 작은 기념일을 잊어버린 적이 없는 기억력의 소유자”였다. 엄마와 동생이 싸울 때면 항상 엄마 편을 들어 동생을 서운하게 하기도 했다. 동생은 지난달 온 가족이 통닭과 피자를 싸들고 면회 갔을 때 살이 쏙 빠져 옛날만큼 많이 먹지 못하는 형이 안쓰러웠다고 했다. 몇 달 만에 만난 형제는 “잘 지내느냐”는 어색한 인사만을 나누고 헤어졌다.

 친구들은 그를 “함께 있으면 즐거웠던 사람”으로 기억한다. 김진영(20)씨는 “보통 땐 그저 재밌기만 했는데 가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라고 했다. 권 이병에게 연기를 가르쳤던 김용규(57) 동국대 전산원 영화영상학부 교수는 “연기를 하는 사람은 외향적인 성격이 많은데 권 이병은 묵직하고 소탈했던 학생이었다”고 말했다.
권 이병은 5일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다리에 박힌 총알을 빼내는 수술이다. 동생은 “형이 아픈 건 마음 아프지만 형이 원해서 해병대에 간 것이니만큼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글=이한길 기자·이보배 인턴기자(중앙대 신문방송학과)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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