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 의사가 말하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

"보통 사람들에게는 인간성이 좋은데, 애인이 조금만 내 뜻대로 해주지 않으면 참을 수가 없어요. 절충이라는 것이 없죠. 내 의견을 따르느냐 다르지 않느냐 둘중의 하나에요. 나만 생각해 주기를 바라는 것이지요. 저도 내 마음이 얼마나 유치한지 않아요. 그러나 알면서도 잘 안 고쳐져요. 나라는 사람은 왜 이렇죠?" 대학생인 K씨는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 면에서 뛰어났다.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사람들을 이끌기도 좋아해서 인기가 높았다.

부모님도 외동 아들이라 해달라는 것은 다 해주며 애지중지 키웠다. 당연히 자신에 대한 높은 자부심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문제는 자부심이 지나치다 못해 우월감이 팽배해 졌다. 그렇다보니 평소에는 별 문제가 없었지만 자신이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자신이 원하는대로 되지 않으면 크게 스트레스를 받았다.

이런 문제는 성인이 되어 연애를 하면서 더욱 드드러졌다. 그를 처음 보는 이성은 자주 그에게 호감을 느꼈다. 능력도 있고 매너도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와 사귀면 사귈수록 어느 순간 부터 일방적인 그의 성격을 알고 오래 버티지 못한다. 자신의 뜻과 입장만을 지나치게 강요하기 때문 이었다.

# 인간정신의 코페르니쿠스 혁명

옛날 사람들에게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었다. 사람들의 눈에는 해와 별이 지구를 중심으로 움직이므로 지구가 천체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코페르니쿠스는 천체관측을 통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도는 것을 밝혀냈다. 이는 학자들에 의해 세상에 퍼지게 되었고 인류는 어마어마한 충격에 빠졌다.

그동안 철썩 같이 믿고 있었던 지구중심적 천체관과 인간중심적 사고관을 버려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혼돈과 충격을 거쳐 이를 받아들이고 사고의 대전환을 이루었기에 인류사와 문명은 한층 더 발전할 수 있었다. 이러한 코페르니쿠스 전환은 사실 인간의 정신세계 안에서도 일어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긴다. 특히 7세 이전의 아이들은 인지발달의 미숙으로 인해 이러한 자기중심성이 무척 강하다.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을 한다. 예를 들면, 여러 위치에서 보면 다르게 보일 수 있는 복합적인 물체를 보여주고 다른 위치에 있는 아이들이 어떻게 볼 것인지 물어보면 자신이 보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도 볼 것이라고 대답한다.

즉,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만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으며 상대도 그렇게 볼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시기의 아이들은 상대의 처지를 이해하지 못하고 상황에 상관없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장하고, 자신이 경험한 것을 상대도 경험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는 설명이나 요구를 하지 않아도 자신이 뭘 원하는지 상대가 알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만일 이 아이들에게 부모가 좋아할 선물을 골라보라고 하면 어떻게 할까? 아이들은 결국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고르고 부모가 기뻐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러한 마음은 이기적인 것과는 차이가 있다. 이기적이라는 말은 자기와 타인과의 구분이 가능한 상태에서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것이지만 유아기의 자기중심성은 자기와 타인의 경계구분이 덜 이루어진 미분화된 상태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시기 아이들의 마음에는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자신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일종의 ‘세동설(世動說)’을 믿고 있는 것이다.

#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날 때 어른이 된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와 타인의 경계를 구분하고 자신의 시야 외에 다른 사람의 시야가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적절한 좌절을 통해 자신이 완전하지도 않고 자신이 모든 면에서 뛰어나지 않으며 세상은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연결되어 존재한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물론 이는 유쾌한 경험만은 아니다. 유아적인 전지전능감이기는 하지만 이 역시 자기 존중감에 상처를 받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상처는 코페르니쿠스 전환처럼 꼭 거쳐야 할 상처이며 혼란이다. 유아기에 자기우월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친밀한 관계를 맺을 수 없고 실패나 좌절을 견뎌낼 수 있는 건강한 자기존중감으로 진화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이러한 유아적인 자기우월감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들이 꽤 있다. 여전히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고 자신의 뜻대로 세상이나 타인이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흔히 자신이 빠지면 아무 일도 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져 산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보다 특별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의사는 유독 가치 있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여긴다. 이러한 양상이 심한 사람들을 정신의학에서는 ‘병적 자기애’ 혹은 ‘자기애성 인격장애’라고 부른다.

# 어른이 된다는 것

유아적 자기우월감에서 벗어나지 못한 사람들은 사실 겉으로만 자신감이 강할 뿐, 안으로는 매우 유약하다. 이들은 작은 실수나 타인의 작은 비판도 견디지 못하고 상대를 비난하거나 자신에 대한 깊은 모멸감에 빠지고 만다. 그러므로 이들은 실패를 거쳐 성공하지 못한다. 이들은 초기에는 타인에게 매력 있고 우호적인 인물로 보이기 쉽다. 하지만 이들은 깊이 있는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다. 서로 가까워질수록 유아적 우월감이 되살아나서 타인의 우위에 서기 위해 일방적인 관심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존재만큼 타인의 존재가 중요하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 부른다. 세상이 자기 뜻대로만 움직이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세상의 흐름과 자신의 뜻 사이에 균형을 잡으려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 부른다. 자신의 입장이 있듯이 상대 역시 다른 입장이 있다는 것을 존중할 수 있어야 어른이다. 사랑을 시작할 수 있는 사람을 어른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라 시작한 사랑을 발전시킬 수 있는 사람을 우리는 어른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