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조선 5월회에 해병대 망치부대 기사실려

by 운영자 posted May 16,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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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金正友 月刊朝鮮 기자 (hgu@chosun.com)의 관련기사 일부내용입니다.

 

[秘話] “28년 전 백령도 海上에서 對北 보복作戰계획 있었다”

⊙ 1981년 8월 北 미그機 백령도 상공 침공 등 도발에 대응해 작전계획 수립

⊙ 작전명 ‘망치’, “백령도 인근 북한 3개 섬 기습·초토화 목적”

⊙ 1982년부터 2년10개월간 해병대 정예요원 선발해 백령도 현장에서 특수훈련·작전 실시

⊙ 작전 참가 장교 “NLL 근방에서 기만작전 펼쳐 北 도발행위 억제했다”

 

 

1980년대 초 북한군의 잦은 도발에 대응, 백령도 인근 해상(海上)에서 구체적인 북한 침투 작전 계획이 수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망치작전’으로 불리는 이 계획은 1982년 1월부터 2년10개월 동안 해병대 요원들을 선발해 백령도 인근 NLL(북방한계선) 해상에서 기만(欺瞞)작전을 펼치며 북한의 월례도(島) 등 3개 목표지역에 침투해 ▲군사시설 파괴 ▲요인 암살

 

▲납치·교란 등 2시간 만에 작전을 마무리하는 것이다.

 

이 작전계획은 1980년 11월 전남 횡간도 무장간첩 침투, 1981년 8월 북한 미그기(機) 백령도 상공 침공 및 미(美)정찰기 SR-71(블랙버드) 격추 시도 등 고조된 남북(南北) 대치 상황에서 수립된 것으로 전해진다.

 

1981년 10월 전두환(全斗煥) 대통령은 국군의날 행사에서 “단순히 적의 도발을 물리칠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도발에 대한 철저한 응징력도 함께 갖춰야 한다”면서 “특히 도발의 대가가 더없이 비싸다는 사실을 증명할 막강한 군사력의 유지가 필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망치작전에 관여한 한 관계자는 “무장공비 및 간첩선(船) 침투 등 북한의 잇따른 도발에 대응하기 위해 해병대 정예요원을 선발해 포항에서 집중 훈련을 한 후 백령도와 연평도에 배치해 인근 NLL 해상에서 훈련 및 기만작전을 실시했다”고 말했다. 그의 설명이다. “해병대 각 부대에서 1차로 선발된 요원들은 1982년 4월까지 포항에서 훈련을 받은 후, 백령도로 이동해 소대 규모로 훈련 및 작전을 펼쳤습니다.

 

주로 공수교육 또는 특수수색교육 이수자와 무술유단자 등이 신원조회를 거쳐 선발됐습니다.”

 

 

철저한 신원조회 거쳐 요원선발

1981년 9월 UDT, 공수교육 등 이미 특수 교육을 이수한 인원 중 최정예 대원을 뽑는 것으로 1차 요원 선발이 시작됐다.

이들은 기본 교육 후 이듬해 1월부터 ‘망치교육’이라 불리는 ‘특수침투훈련’을 받고 백령도로 파견됐다. 같은 해 8월엔 백령도에 이어 연평도에도 소대 규모 병력이 추가됐다.

작전에 참여했던 한 장교는 “공황장애 또는 내부혼란을 막기 위해 사단계획 수립 당시 ‘단순 전지훈련’이란 용어를 불가피하게 사용했지만, 지휘관들은 정확하게 작전의 목적을 알고 있었고 장병들도 대부분 눈치로 파악했다”고 밝혔다.

 

소대규모로 편성된 ‘망치부대’는 3개월 단위로 교체돼 훈련 및 작전을 수행했고, 1983년 10월 말까지 총 300여 명의 요원이 6차례에 걸쳐 투입됐다.

 

작전 관계자는 “장기간 배치될 경우 고도의 특수훈련과 심리적 압박 등의 이유로 작전능력이 떨어질 수 있다”면서 “3개월마다 현장 인원을 교체하는 한편 포항에선 다음 기수를 위한 훈련이 진행됐다”고 했다.

신원조회 결과 문제가 있는 요원은 곧바로 복귀 조치했다. 당시 작전을 담당했던 고위급 장교는 “신체검사나 경력에서 결격사유가 없는 대원인데, 상급부대의 지시로 훈련 중 제외된 인원이 다수 있었다”며 “친인척 관계까지 정밀하게 신원조회를 실시한 듯하다”고 했다.

 

특히 백령도에 배치된 이들이 훈련 및 작전을 펼친 곳은 지난 3월 26일 침몰한 해군 초계함(哨戒艦) 천안함의 함수(艦首)가 가라앉은 지점 부근이다.

 

백령도 앞바다에서 주야(晝夜)를 가리지 않고 해상침투훈련을 반복했던 부대원들은 28년 후 벌어진 사건에 대해 남다른 소회를 밝혔다. 한 관계자의 설명이다.

 

“당시에도 물이 혼탁하고 조류가 빨라 훈련 강도가 굉장히 높았습니다. 훈련은 정말 죽을 만큼 힘들었습니다.

이번 천안함 사고가 나는 순간 구조 및 인양 과정이 분명 쉽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고(故) 한주호 준위의 희생도 참 안타까웠고요. 망치부대가 지금까지 존재했더라면, 좀 더 익숙한 바다에서 구조작업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부대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망치작전은 일명 ‘812 계획’에 의해 탄생했다고 한다.

1981년 8월 12일 북한의 미그21기 편대가 백령도 상공에 침공해 저공비행을 실시한 사건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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