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덕 한국홍보전문가·독도지킴이·성신여대 교수와 해병대2사단 한승수 상병

by 배나온슈퍼맨 posted Mar 08,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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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고 싶었습니다-서경덕 한국홍보전문가·독도지킴이·성신여대 교수와 해병대2사단 한승수 상병 / 국방일보 2012.03.09

 

현대는 홍보와 PR 시대다. 개인이나 기업, 공공기관 등 사회 곳곳에서 홍보가 주목받고 있다. 내가 아무리 잘나고, 좋은 제품을 개발해도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이 곧 기업의 사활과 직결된다. 그래서 기업의 생살여탈권을 쥐고 있는 홍보가 뜨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은 “기업의 손익문제는 재도전의 기회가 있지만, 기업의 홍보는 곧바로 생사를 결정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기업 경영에서 홍보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이야기다. 이제 홍보는 단순히 기업이나 국가를 알리는 수단을 넘어 시대적 트렌드다. 최근 미국의 명문 보스턴대학을 휴학하고 해병대원으로 자원입대한 해병대2사단 52대대 한승수(24) 상병이 ‘호국의 전당’ 전쟁기념관에서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38) 성신여대 교수를 만나 한국 문화와 역사를 세계에 널리 알리는 홍보 철학에 대해 들어봤다.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전쟁기념관  6ㆍ25전쟁 조형물 앞에서 해병
대2사단 한승수 상병에게 국가안보의 중요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한국홍보전문가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가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 내 회의실에서 해병대2사단 한승수 상병에게 “독도의 가장
큰 적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우리 국민의 무관심”이라고 역설하고 있다.

 한 상병: 대한민국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생각한 계기는?

 서 교수 : 대학 시절 1990년대 초중반 세계화라는 단어가 떠오르기 시작했다. 언론에서만 세계화를 다룰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느껴 보고 싶어 유럽 배낭여행에 나섰다. 나는 한국사람인데 외국에 나가면 중국인이나 일본인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고 자존심이 상했다. 서울 올림픽도 치렀는데 대한민국을 너무 몰랐다. 그때 선진문화를 배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훌륭한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 상병 : 첫 해외 프로젝트를 왜 8월 15일 프랑스 에펠탑에서 모이자고 했나?

 서 교수 : 그날 사람들이 많이 모인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8월 15일이 우리에겐 광복절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제2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평화의 날’이었다. 당시 인터넷도 없었다. 여행 중 2개월 동안 입에서 입으로 한국 대학생을 만나면 모여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나는 20~30명쯤 모일 것으로 생각했다. 300여 명이 모였다. 깜짝 놀랐다. 에펠탑 광장에서 애국가를 목놓아 불렀다. 세상에서 그렇게 큰 애국가 소리는 처음 들어 봤다. 당시 너무나 큰 감동을 했다. 이후 대한민국 홍보전문가의 길을 걷게 됐다.

한 상병 : 한국을 알리는 일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 보람 있었던 것은?

 서 교수 : 학창시절 좋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아이디어만으로 해외 프로젝트를 수행하려면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을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았다. 당시 후원받는 게 가장 힘들었다. 예전에 그런 일이 있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뉴욕 현대미술관에 한국어 서비스를 하려고 정부기관과 기업홍보실 200여 군데를 다녔지만 허사였다. 정말 고생했다. 가장 보람된 순간은 뉴욕타임스에 독도 광고를 내고 처음 봤을 때 가장 보람됐던 것 같다.

한 상병 : 뉴욕타임스 광고 내용은?

 서 교수 : 독도는 한국땅이라는 거다. 왜 한국땅인지에 대한 설명도 넣었다. 독도가 분쟁지역화 돼서는 안 되니까 광고를 낼 때마다 우리나라 문화·한글·관광·스포츠 행사를 접목해 자연스럽게 세계인들에게 노출하는 전략을 구사했다. 왜냐하면 지리적으로나 역사적·국제법적으로 당연히 우리 땅이기 때문에 독도가 한국땅이라고 주장하기보다 한국의 문화와 융합해 자연스럽게 세계인들에게 홍보하는 게 가장 효과적이다.

 한 상병 : 한국 고유의 전통들이 많이 있는데 앞으로 홍보하고 싶은 것은 어떤 것이 있나?

 서 교수 : 지금까지 독도·동해·위안부·고구려·아리랑 등 한국의 역사 콘텐츠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올해는 한복을 콘셉트로 잡았다. 우리의 아름다운 한복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외국에 나가면 중국의 치파오나 일본의 기모노는 널리 알려졌는데 한국의 전통 의상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외국인이 많다.

한 상병 : 독도에 많은 관심을 두는 이유와 그동안 어떤 성과를 냈는지?

 서 교수 : 독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관심이 많다. 2005년 2월 22일 일본 시마네 현에서 독도를 다케시마로 둔갑시켰다. 이것은 국제법적으로 반칙이다. 일본인의 부당함을 세계인들에게 정정당당히 알리고 싶었다. 그래서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 저널 등 세계적인 유력 매체에 독도 광고를 내고 여론을 환기시켰다. 가수 김장훈 씨가 후원을 많이 해 큰 힘이 됐다.

 한 상병 : 독도지킴이라는 이유로 일본 입국을 거부당한 적이 있나?

 서 교수 : 입국을 거부당한 적은 없다. 광고할 때마다 일본 우익단체들로부터 살해 협박을 받는다. 나는 일본 우익단체의 블랙리스트 영순위다.(웃음)

한 상병 : 가수 김장훈 씨와의 인연은?

 서 교수 : 2008년 워싱턴포스트에 독도 전면광고를 내면서부터다. 당시 직접 공연장을 찾아 ‘미안하다 독도야’ 내레이터를 해 달라고 요청했고, 김가훈 씨가 흔쾌히 승낙하고 나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하겠다는 다짐도 받았다. 이로 이해 동해 표기 바로잡기 캠페인이 본궤도에 올랐고 워싱턴포스트·뉴욕타임스·월스트리트 저널 등 연속 세 번 전면광고가 김장훈 씨의 후원으로 성공했다. 최근에는 서경덕·김장훈 콤비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한 상병 : 최근 오대양 육대주 16개 주요 도시에 한글을 활용한 독도 포스터 1600장을 붙였다. 세계에 독도를 홍보하는 이유는?

 서 교수 : 홍보 의도는 세계적인 매체의 지면광고를 비롯해 뉴욕 타임스퀘어 광장에 독도 영상광고를 올린 것과 일맥상통한다. 일본 정부의 잘못을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언론을 통해 압박해 나가는 것이다. 그런 전략으로 포스터를 제작해 미국 뉴욕, 남아공 요하네스버그, 중국 상하이, 일본 교도 등 오대양 육대주 16개 도시 번화가에 현지 유학생 및 재외동포들의 도움으로 지역마다 100장씩 총 1600장의 포스터를 붙였다. 거리에 포스터를 붙임으로써 일본 정부의 부당함을 널리 알리는 효과를 노렸다.

한 상병 : 미국 친구들과 이야기하다 보면 한국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하면 세계에 한국을 잘 알릴 수 있을까?

 서 교수 : 여러 가지가 있다. 국방일보라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군인들이 세계 평화를 지키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 또 K-팝이 세계 곳곳에 많이 알려졌다. 어떤 음악, 한 장르로만 가는 게 아니다. 만약에 미국 뉴욕 공연장에서 공연이 열렸다고 가정하자. 그러면 거기 모인 사람들은 먹을거리도 필요하다. 동시에 공연 중간에 퓨전음악을 넣을 수도 있다. 같이 어울려 할 수 있는 부분이 많다. 한류 1세대가 드라마였다면 2세대는 K-팝이다. 세 번째는 복합적인 시스템의 문화융합시대를 열어야 한다. 그래서 한식과 우리 문화 코드가 융합된 다양한 새로운 문화를 창출해 세계에 알리는 게 중요하다.

 한 상병 : 독도홍보에 SNS도 활용하나.

 서 교수 : 많이 활용한다. 예를 들어 내가 월스트리트 저널에 광고를 올렸다. 그러면 그 파일을 트위터에 올려 무한 리트윗(RT)을 한다. 내 트위터의 팔로어는 세계 곳곳의 유학생들이 많다. 보스턴의 한 유학생이 RT 하면, 주변 친구들에게 확산한다. 파급효과가 엄청나다. 이번 포스터 프로젝트는 때로는 복고로 되돌아가려는 인간의 욕구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다음에는 전 세계 유명거리에 현수막을 걸어 볼까 생각 중이다. 온·오프라인이 절묘한 조화를 이뤄야 파급효과가 크다.

 한 상병 : 해외 활동하면서 외국분들에게 연락받은 때도 있나?

 서 교수 : 많이 받았다. 광고를 낼 때마다 맨 끝에 웹사이트를 공개한다. 예를 들어 한글 광고 ‘안녕하세요’를 냈을 때 유럽의 한 증권 매니저로부터 메일이 왔다. 나중에 한국사람 만나면 꼭 “안녕하세요”라는 한국말로 인사하겠다고 전해왔다. 외국인에게 피드백이 많다.

 한 상병 : 올해 런던 올림픽이 열린다. 어떤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나?

 서 교수 : 대학생 문화창조 동아리 ‘생존경쟁’팀과 대형 프로젝트를 구상하고 있다. 이 팀과 우리나라 올림픽 역사를 되돌아보고, 한국 대표선수들에게 응원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런던 한복판에서 대형 플래시 몹을 준비하고 있다. 성사되면 재미있을 것이다.(웃음)

 한 상병 : 국민들의 독도에 대한 인지도는?

 서 교수 : 독도, 모르는 사람이 없다. 독도의 가장 큰 적은 일본 정부가 아니라 우리의 무관심이다. 일본 정치인이 망언을 쏟아내면 2~3일 들끓다 수그러든다. 우리 국민이 할 수 있는 일은 독도를 방문하는 것이다. 거기서 우리 젊은이들이 스마트폰으로 독도를 촬영해 트위터에 올려 세계 친구들에게 알리는 꾸준한 사랑과 관심이 필요하다. 국외여행도 좋지만 가족들끼리 2박 3일간 독도를 방문하는 것, 그것이 실효적 지배라는 생각이 든다.

한 상병 : 남북 분단의 현실 앞에 서 있는 국군장병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서 교수 : 국군 장병이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가 존재한다. 최전선에서 국민을 보호하는 그 자체만으로 애국하는 것이다. 이왕 군대생활하려면 자부심을 갖고 맡은 임무에 충실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세계 평화에 공헌할 수 있는 국군이 됐으면 좋겠다. 


서경덕 교수는 누구

육군12사단 정훈병 출신인 서 교수는 지구촌을 누비며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세계에 알리는 민관외교관이다. 성균관대학교 조경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성신여자대학교 객원교수로 PR 분야 강의를 맡고 있다.

 아이디어가 풍부한 그는 미국 뉴욕의 메트로폴리탄 박물관과 현대미술관, 워싱턴 스미소니언 박물관 등에 한국어 안내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우리 국민에게 ‘한국홍보전문가’로 이름이 알려졌다. 독도·고구려를 비롯한 이슈 광고를 뉴욕타임스·워싱턴포스트·월스트리트 저널 등에 게재해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자존심을 지켰을 뿐만 아니라 일본과 중국 정부의 부도덕성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했다.

 2009년 안중근 의사 의거 100주년을 맞아 서울을 비롯한 미국·중국·일본·러시아 등을 다니며 손도장 3만2000여 개를 모아 ‘대형 안중근 손도장’을 재현해 국내외 언론에 집중 조명되기도 했다.

 특히 세계적인 설치미술가 강익중 씨와 함께 ‘세계분쟁지역 평화전파 프로젝트’ ‘한글 세계전파 프로젝트’를 실시하면서 국가브랜드 위원회 자문위원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등 일약 유명인사로 떠올랐다.


글·사진=김용호 기자   yhkim@dema.mi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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