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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서울 용산의 코레일 서울본부 강당에 수백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80대로 보이는 노년의 신사들이었다. 60여 년 전 6.25전쟁 당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목숨을 바쳤던 동료․선배들을 추모하는 자리였다.

이들이 이날 이곳에 왜 모였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지난 6월의 한 모임을 되돌아아 보아야 한다.

<뉴데일리 전경웅기자> http://www.newdaily.co.kr/news


#1. 2012년 6월 26일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

지난 6월 26일 서울 용산 한미연합사 안에 있는 드래곤 힐 호텔 2층 메자닌 홀. 한미 연합군의 수뇌부, 정부 관계자 등이 모였다. 이 자리는 한 ‘전사자’의 유가족에게 美국방부가 민간인에게 주는 최고의 훈장을 수여하는 행사였다.

주인공은 故김재현 기관사. 1923년 충남 논산에서 태어난 그는 당시 대전운전사무소 기관사였다. 그는 1950년 7월 19일 당시 북한군에 포로가 된 美육군 제25사단장 딘 소장 구출작전(일명 대전 전투)에 美특공대 33명과 함께 참여했다 북한군의 매복에 걸려 후퇴하면서 가슴에 8발의 흉탄을 맞고 전사했다. 전사 당시 나이는 28살. 그는 죽는 순간까지도 열차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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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 26일 용산 미군기지 내 드래곤힐 호텔에서 故김재현 기관사의 유가족이 연합사 참모장으로부터 훈장을 받고 있다.

故김재현 기관사의 동료․후배들은 그의 명예를 찾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노력했다. 대전 코레일 본사에 위령비를 세워 후배들에게 그의 애국심을 본받도록 교육하고, 유가족들을 돕고자 십시일반 손을 보탰다.

나중에 국방부와 월터 샤프 前주한미군 사령관이 故김재현 기관사의 명예회복을 위해 힘을 보태면서 이제야 훈장을 받게 된 것이다.

故김재현 기관사는 전사한 지 62년 만에 공훈을 인정받았지만 그렇지 못한 전사자 수가 무려 280여 명이다. 이들을 추모하는 사람들도 철도 관계자들뿐이다. 국방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그들을 ‘전쟁영웅’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했을 때 반대하는 사람들이 정부 안에 있었다고 한다.

다시 7월11일 서울 용산 코레일 모임으로 돌아가 보자.


#2. 팔순 넘긴 ‘6.25 참전 철도전사자’ 동료들의 회상

‘6.25참전 철도전사자 287위 추모식’에 모인 ‘노병’들은 숙연했다. 사단법인 철도참전유공자회 유기남 회장이 추념사를 낭독할 때 참석한 ‘노병’들은 고통스러웠던 당시를 회상하는 듯 했다.

“철도참전 호국영령께 올립니다.

오늘 우리는 6.25 참전철도전사자 287위의 호국영전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또한 사랑하는 혈육을 잃고 슬픔과 고통으로 평생을 살아오신 유가족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이 순간까지도 전쟁의 후유증으로 고통을 겪고 계시는 참전전우들과 그 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와 존경의 말씀을 드립니다.

무엇보다 6․25남침전쟁에서 휴전 시까지 757일 동안 우리 전우들은 군무원의 신분으로 참전하여 국군 및 UN군과 하나가 되어 군사수송작전과 수백만의 피난민 수송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함으로써 자유 대한을 수호하는데 불멸의 공을 남기셨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참전전우 여러분께 진심으로 경의를 표합니다.”

유기남 회장은 추념사를 통해 ‘살아남은 사람들’과 후손들에게도 ‘철도 참전 전사자’의 애국심이 전해졌으면 하는 바램을 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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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1일 코레일 서울본부 강당에서 열린 '6.25참전 철도전사자 추모식'에 선 유기남 유공자회 회장.

“유명을 달리하신 6․25 철도참전 호국영령과 백발이 성성한 참전용사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은 전쟁의 폐허를 극복하고 세계선진 12개국 대열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번영을 지켜봐 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이 자리는 6․25 철도참전 영령들을 추모하는 성스러운 제단 앞에 오늘의 국가안보 상황을 직시하고 ‘안보불감’에서 깨어나는 자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중략)…

벌써 님들께서 참혹한 전장에서 유명(幽明)을 달리 하신지도 62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님들께서 목숨을 바쳐 지키신 우리 조국은 산업화-민주화를 거쳐 마침내 번영된 선진국의 길로 접어들었습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도 한층 높아졌습니다. 이 모두가 님들의 돌보아주심이 있었기 때문이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우리 모두 6․25철도참전 호국영령들의 숭고한 뜻과 조국애를 자손만대에 전하고자 합니다. 

…(중략)…

후손들에게 오늘의 대한민국의 자유와 번영, 선진국 진입이 호국영령들의 피로써 이뤄진 것임을 잊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삼가 호국영령들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존경과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6.25참전 전사자의 후배들 “그 분들 희생 절대 잊혀지지 않도록 하겠다”

정창영 철도공사 사장 등 철도 관계자들도 추모사를 통해 ‘잊혀진 영웅들’의 뜻을 기렸다. 정창영 철도공사 사장의 추모사다.

“오늘 우리는 6․25전쟁의 포염 속에 사선을 뚫고 전후방을 넘나들며 조국의 안위와 국민의 생명을 사수하기 위하여 철도수송의 사명을 다 하시다 순직하신 287위 애국선열들의 숭고한 넋을 기리는 엄숙한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당신과 당신의 가족을 돌보기 이전에,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국권회복을 위해 목숨을 바치신 고귀한 애국충정 앞에 삼가 머리 숙여 경의를 표합니다.

우리 철도가 113년의 장구한 역사를 이어오면서 국가 경제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성실히 수행해 낼 수 있었던 것은, 수송현장을 피땀으로 물들인 순국영령들의 값진 희생 덕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날 우리 후손들이 누리는 자유와 번영이 이런 선배님들의 숭고한 희생의 과실임을 어느 누구도 부정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호국영령들의 헌신적인 희생이 헛되이 잊혀지지 않도록 우리 철도인들이 더욱 성심을 다하여야 하겠습니다.”

철도시설공단 수도권 본부장은 짧게나마 6.25전쟁 당시 1만9천여 명의 철도 관계자들이 참전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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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에 참전한 기관사들. 당시 1만9,300여 명의 철도인들이 참전, 287명이 전사했다.

“6.25전쟁 발발 직후 긴급국무회에서 철도인의 참전이 결정되어 1만9,300여 명이 군무원 신분으로 참전하여 757일간 수송작전을 펼쳤습니다. 당시 거의 유일한 대규모 교통수단이었던 철도는 많은 피난민들을 후방으로 안전하게 수송하는데 전력을 다했고, 군 병력과 물자에 대한 수송작전을 충실히 수행하였습니다.

이에 따른 철도인의 희생도 컸는데 287명이 전사, 60여명이 부상을 당하는 등 참전 공무원 중 군인과 경찰 다음으로 많이 전사했습니다.

매년 6.25 참전 철도전사자 합동추모제를 맞이하여 그 넋을 기리는 이유는 국가를 위한 희생은 결코 잊을 수도 잊어서는 안된다는 각오와 다짐을 가슴깊이 되새기기 위한 것입니다.

한국철도시설공단 임직원 모두는 6.25 전쟁에 참전하여 고귀한 목숨을 바친 선배 철도인의 희생정신과 애국투혼을 기리고 그 숭고한 역사를 가슴에 담아 철도인의 자부심과 소명의식을 갖고 지켜 나갈 것입니다.”

추모식은 추모사와 추모시 낭송으로 막을 내렸다. 6.25 전쟁 당시 참전했다 전사한 철도인들은 그나마 후배들의 추모로 기억하는 이들이라도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 존재 자체가 부정되기도 한다.

 

#3. 철도 관계자와 유가족, 국방부도 바라는데...알려지지 않은 영웅 홀대-멸시하는 현장 

6.25전쟁은 군인만 싸운 전쟁이 아니다. 재일교포와 어린 학도병, UN군 소속의 첩보부대인 KLO, 동키부대 등이 있었고, 수많은 민간인이 지게를 지고 유엔군을 도왔다. 경찰, 공무원, 열차 기관사들도 참전해 목숨을 바쳤다.

그 중 ‘A부대’로 알려진 민간인 수송부대도 희생은 컸지만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다. 당시 유엔군 사령부는 도로망이 거의 없는 한반도에서 군수물자를 나르기 위해 민간인 ‘지게꾼’을 고용해 탄약, 물자 등을 보급하게 했다. 유엔군은 이들을 ‘A부대’라고 불렀다. 2만여 명에 가까운 ‘지게꾼’이 목숨을 걸고 유엔군을 도왔고 수많은 인명피해가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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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11일 코레일 서울본부에서 열린 '6.25참전 철도전사자 추모식'의 모습. 모두 철도 관계자들이었다. 언론은 보이지 않았다.

이 일에 대해 국방부 관계자에게 물었다. 그도 “이제는 6.25 당시 목숨을 바쳤던 민간인들을 찾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6.25참전용사들에 대한 명예회복이나 무공훈장 찾아주기는 이제 조금씩이나마 성과를 보이고 있다. 우리 정부가 대외적으로 스스로를 ‘선진국’이라고 말하는 만큼 이제는 군인이 아니었음에도 국가와 국민을 위해 목숨까지 바친 민간인들을 기억하고,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일을 시작해야 한다.”

국방부도 이렇게 생각하는데 왜 쉽게 되지 않을까. 자세한 부분은 말해주지 않았지만 ‘사회 지도층’ 중 그들의 공적을 기리는 것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전했다.

몇 년 전에 김태영 국방장관도 이 일로 고위직 공무원인 A씨와 크게 다툰 적이 있다. 당시 김 장관이 ‘아니,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분들께 최소한의 대접을 해드리는 게 뭐가 그리 힘든 일이냐’고 묻자 A씨가 ‘민주화 유공자들 챙기기에도 바쁜데 뭐 그런 사람들까지 신경 써야 하느냐’는 식으로 답해 김 장관이 강하게 항의한 적이 있다. 당시 분위기가 살벌했다.”

결국 철도 전사자나 민간인 전사자들에 대한 보상 및 서훈 문제는 유야무야됐다고 한다. 이 관계자는 보훈 관련 정부부처의 ‘복지부동’ 또한 문제라고 전했다.

“보훈처의 행태를 보면 답답해 미친다. 그 곳에는 군 출신인 사람과 공무원 출신인 사람이 함께 있다. 그런데 공무원 출신들은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몇몇 문제 있는 공무원이 일부 보훈단체와 ‘결탁’한 정황에 대해 군 출신들이 문제제기를 해도 꿈쩍 앉는다.”

이런 것을 놓고 몇몇은 “우리나라 지도층, 역시 문제야”라고 말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4. 전사한 미해병대원과 만삭의 부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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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초 커뮤니티 사이트에 올라온 퓰리처상 수상작 중 하나. 美해병대가 전사자 부인의 요청을 받은 뒤 시신 옆에 잠자리를 마련해줬다. 그녀는 남편이 생전에 가장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밤을 지샜다.

지난 7월 초 ‘일베저장소’ ‘유용원 기자의 군사세계’ 등 유명 인터넷 커뮤니티에 한 게시글이 떴다. 내용은 퓰리처상을 받은 한 기자의 ‘포토 에세이’(출처 http://www.pulitzer.org/)였다.

美해병대 스티브 벡(Steve Beck) 소령은 아끼던 부하를 전쟁 중 잃었다. 그의 아내는 만삭이었다. 이후 부하의 전사소식을 전하면서부터 장례식 전까지를 사진과 짧은 설명으로 묘사한 내용이었다.

국가를 위해 목숨 바친 영웅 추모, 비용 문제일까

이 글을 올린 네티즌의 다음과 같은 글은 모든 일의 책임을 ‘지도층’에게 미루는 자칭 시민단체, 지식인, 언론들이 꼭 새겨야 할 내용이었다.

천안함 폭침당시 몇몇 유가족들은 아들의 실종사실을 뉴스를 통해서 알았다.
지난 연평도 포격사건때 우리나라 해병대원 두 명이 전사한 일이 있었다.
그 때 두 해병대원의 유가족들은 전화로 전사통지를 받았다.

미국은 전사자의 유가족들에게 운구담당 장교가 직접 방문하여 전사를 통보하고 美국방장관의 서명이 들어간 전사통지서를 전달하게 된다. 시신운구부터 장례까지 모두 책임지고 실행한다. 또한 유가족들에게 전사를 통보하고 난 후에야 언론보도를 할 수 있다.

언론보도로 아들의 실종사실을 알게 된 우리나라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미국의) 국방비가 560조여서 가능한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국방비가 30조여서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경험의 부재는 변명일 뿐이다. 우리나라도 6.25와 베트남전을 거쳐 왔다. 이는 국가에 충성한 군인을 대하는 국가의 마음가짐에 대한 문제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을 예우하는 데 있어 우리는 미국의 발 끝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관료들이 특히 그렇다.

다행히 일부 민간인들의 노력으로 철도참전용사들의 ‘희생정신’이 이제야 조금씩 대중들에게 알려지고 있다. 이들과 함께 ‘잊혀진 영웅들’을 찾아내 추모하는 것이야말로 정치인과 관료들, 언론이 늘 말하는 ‘국격’에 맞는 일 아닐까.

아래는 이날 용산 코레일 모임에서 '잊혀진 영웅'들에게 헌사된 추모시다.

[추모시]

용사여, 철도참전용사여
 - 6.25철도참전전사자 합동추모제에 부쳐

김  구  부  지음

 

그대는 여기 돌아와 서 있다.
287위 그때의 꽃다운 영혼들이
여기 마치 거목처럼 서있다.
여기 마치 전진의 순간을 기다리는 철마처럼 당당히 서있다.

어디서 이제 돌아와
그대들의 눈은 아직도 형형하게 불타고 있는가.
쉰 여섯해 전 그 충절의 의지가 다시 살아나
저 남산의 푸른 솔처럼 꿋꿋하고 싱싱한가?

1950년 조국이 위태로웠을때
그대는 나라의 동맥을 잇기 위해 젊음을 던졌다.
겨레의 수난이 막바지로 치달았을때
그대는 우리들의 수호신이 되었다.
조국이 부르기 전에 그대는 철마를 지켰고
겨레가 부르기 전에 그대는 스스로 요새가 되었다.
장하지 아니한가! 거룩하지 아니한가!
287위의 철마의 용사들이여!

밀고 밀리는 싸움에서 그대는 피어린 투혼으로
승리를 향해 돌진했다.
대전에서, 영천에서, 순천에서
그대들은 용약 분전했다.
빗발치는 탄우가 어찌 두렵지 않았으리오마는
그보다는 역사의 소명이 앞섰고
그보다는 순국의 기상이 더욱 앞섰나니―.
그리하여 반세기를 하루같이 절규하며, 포효하며
그리워하던 이름!
아! 우리의 땅 대한민국이여!

내 이제 돌아가 온몸을 다시던져 조국 앞에 버티고 서리라.
비록 이름없는 풀씨로 사라지더라도
겨레의 편한 잠을 지키기 위하여
다시 철도인이 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 암흑을 뚫기위해 뜻을 다졌고,
평양으로, 신의주로, 저 멀리 간도땅 너머까지
민족의 혼을 실은 통일열차를 몰리라.

이제 그대의 이름으로
천년 만대의 영화를 증거할 차례다.
이제 그대의 이름으로
굳건한 애국혼을 가슴에 새겨야 할 차례다.
그대 287위의 아름다운 영혼이여!
그대가 던진 56년의 세월이
부강조국의 오늘을 이룩해 냈음을.
그대의 피어린 순국의지가
선진 조국의 오늘을 만들어 냈음을.

이제 우리들 모두의 마음의 뜰에
무더기로 무더기로 무궁화 꽃을 피워
그대들을 영접하나니.
장한 용사여! 늘 푸른 철도참전용사여!
겨레의 영원을 위해 다시 우리 앞에 서시라!
다시 우리들의 거울이 되시라!

                             2012.  7.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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