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축구의 의미

by 박인식 posted Sep 09,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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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경석 대위
해군2함대 청주함
전투정보관

 

‘서해 NLL’. 적 경비정과 대치하는 이 서해 바다가 나의 일터이자 군인으로서의 싸움터다. 구름 사이로 수줍게 얼굴을 비추는 일출과 밤하늘을 수놓는 별빛과 함께 바다에 비추는 달빛을 따라 항해하다 보면 그 평화로움에 문득 나의 본분을 잊기도 한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곳에서 적은 끊임없이 도발을 감행했고, 가슴 아프게도 나의 전우들은 서해를 수호하다 전사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우리의 의지와 희생에도 불구하고 적은 아직도 그 붉은 이빨을 감추지 않고 있다.

 그래서 우리 청주함은 ‘오늘 一戰이 있다’는 각오로 하루하루를 준비하고 있다. 그런 우리에게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가 더 있다. 바로 ‘전투축구’다. 이는 2함대 21전대를 나타내는 하나의 특색이기도 하다. ‘전투축구’라고 얘기하면 ‘군대에서 하는 축구’ ‘전투처럼 치열하게 하는 축구’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하지만 우리는 전투축구에 담긴 의미를 알고 있기에 누구보다 진지하게 축구경기에 임한다.

 전투축구를 활성화시킨 전대장님께서는 제1연평해전을 비롯한 수많은 실전을 겪으신 분이며, 평소 철저한 분석과 훈련을 한다 하더라도 실전은 훈련과 다르다는 점을 항상 강조하신다. 왜냐하면 전투는 객관적인 전력과의 대결이 아닌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므로 심리적 요인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고, 게다가 생과 사라는 극단적인 갈림길에서 올바른 판단과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실전 경험이 풍부한 지휘관이나 대원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겠지만 이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까? 그래서 나온 것이 ‘전투축구’다. 우리는 전후반 1시간 반 동안 적과의 전쟁이라는 생각으로 축구를 한다. 그렇게 되면 날아오는 공을 피할 수 없으며, 턱 끝까지 숨이 차오르고 다리에 힘이 풀려 도저히 뛸 수 없을지라도 정신력으로 공을 상대편으로부터 따낸다.

 왜냐하면 실전에서는 날아오는 포탄에도 꿋꿋이 제 위치에서 전투에 임하고, 제 몸 하나 가눌 수 없는 상황에서도 정신력으로 버텨야 하기 때문이다. ‘아 힘들다. 나 하나쯤이야 안전한 곳에서 숨거나 쉬어도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 우리는 패하게 돼 있다. 자, 생각해 보자. 축구하는 동안에는 전투처럼 죽을 염려가 전혀 없는데, 2시간도 채 안 되는 이 시간을 견딜 수 없다면 과연 실전상황에서는 어떻게 그 극한의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까?

 실제로 전투축구는 우리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 사실 우리 청주함 대원 개개인은 축구를 잘하는 편이 아니지만, 우리는 연승을 거듭하고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전투축구의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실전 경험이 풍부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는 정말 죽기 살기로 뛴다. 하지만 조건이 있다. 절대 다치지 않는 것!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축구는 단순히 축구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한정된 우리의 무기체계(축구선수의 개인 실력)를 바탕으로 전장에서 적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하고, 전력을 효과적으로 배치(선수 포지션)해 이에 대한 구체적 전술을 짜는 일련의 과정이 녹아들어가 있다.

 그래서 우리 청주함 대원들은 이상하게도 적과의 대치 상황에서도 매우 침착하다. 즉, ‘전투=축구’라는 생각에 우리는 어느새 전투 경험이 풍부한 군인이 됐고 이제는 언제, 어떤 상황이 벌어지든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마음가짐으로 해야 할지 알기 때문이다.

 전투축구! 어떻게 의미를 부여하는지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거친 축구경기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제 우리 청주함에는 너무나 값진 의미가 되고 있다. 오늘도 우리는 전투에 임한다. 그리고 하루하루 더 노련해지며 강한 해군이 돼 간다. <국방일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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