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담배의 추억

by 슈퍼맨 posted May 1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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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논설위원

 

1950년 말 가수 현인이 불렀던 <전우야 잘 자라>는 서정성과 비장미가 절묘하게 어우러진 우리 전쟁가요의 백미다. 인천상륙 직후 낙동강-추풍령-한강-38선의 북진 경로를 따라 지은 4절짜리 가사를 국방부 연예중대원이던 유호가 쓰고 박시춘이 곡을 붙였다. 이 노래는 종전 10년 뒤 이만희 감독명화 <돌아오지 않는 해병>의 OST로 부활해 아이들 고무줄 놀이에서도 불릴 정도의 국민가요가 됐다. 특히 2절 끝 대목'달빛 어린 고개에서 마지막 나누어 먹던/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는 지금 음미해도 가히 절창이다.

▦사실 담배는 군과 떼어놓고 얘기하기 힘들다. 19세기 초 나폴레옹 전쟁 때 벌써 담배는 병사들의 사기 진작에 효과적인 물품으로 인식되기 시작했고, 1914년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뒤에는 적십자사가 직접 나서 전쟁터로 향하는 군인들에게 담배를 지원했다. 마침내 2차 대전에 이르러서는 모든 참전국 군대에서 담배가 필수보급품이 됐다. 작전 돌입 전 충분한 담배 확보는 지휘관들의 중요한 임무였다. 죽음의 공포로 뒤덮인 전장에서 병사들끼리 나눠 피우는 담배는 심리적 안정감과 함께 결속감과 전우애를 높이는 효과가 큰 것으로 간주됐다.

▦우리도 마찬가지여서 1949년 군 창설 직후 곧바로 군담배 '화랑'이 병사들에게 지급됐다. 워낙 저급원료로 만들어 쓰디썼던 화랑은 74년 종이필터로 업그레이드된 뒤 81년 제조 중단될 때까지 32년간 병사들의 고달픈 심신을 달래주는 친구 역할을 해왔다. 이듬해부터는 고급 사제 담배인 '은하수' '한산도' '백자' '솔' '88라이트''디스'가 차례로 군납 담배의 맥을 이었다. 하지만 창군 때부터 유지해온 보급량인 1인당 월 15갑이 점차 줄어 재작년부터는 5갑이 됐고 그나마 올 들어선 영내에서 아예 사라졌다.

▦병영 금연캠페인과 군납 면세담배 폐지로 장병 흡연율이 올해 처음 50% 밑으로 떨어졌다고 한다. 전체 성인남성 흡연율보다는 10% 가까이 높지만 군의 특수성을 감안하면 큰 진전이다. 군의 금연정책에 이의를 달 순 없지만, 아직 금연 못한 입장에서는 공연히 군생활 추억 한 켠이 탈색되는 것 같아 슬며시 투정을 부리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그럼 <전우여 잘 자라>는 그렇다쳐도 '한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하는 <전우>니, '잠깐 쉴 때 담배 피며…'하는 <행군의 아침>이니, 하여간 담배 나오는 군가들이 꽤 되는데 이건 다 어떻게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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