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전등화의 위기에서도 강직한 의지로 영국을 구한 윈스턴 처칠에 대한 수식어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윈스턴 처칠이 해병대와 해병대발전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던 인물 중 하나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특히 그는 상륙용 주정의 개발과 최초의 현대적 상륙돌격을 직접 진두지휘하기도 했는데 비록 성공하지는 못했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현대적 상륙돌격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큰 밑거름이 됐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바로 최악의 상륙작전으로 기록된 갈리폴리작전이다.
제1차 세계대전 중 해군참모총장을 지낸 윈스턴 처칠에 의해 1915년 4월 25일 감행된 이 작전은 전쟁의 국면전환을 위해 야심차게 준비됐지만 결국 적의 거센 저항으로 실패로 끝났다. 물론 갈리폴리작전 자체는 터키군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교두보 확대및 내륙 진격에 실패하고 상륙군이 기동력을 상실함으로써 오히려 터키군에 포위당하는결과를 초래했다.
결국 큰 인명손실 끝에 연합군은 1916년 1월 교두보를 포기하고 철수했으며 처칠은 내각에서, 영국해군의 피셔 제독
은 해군참모총장에서 사임했다. 상륙 못지않게 교두보 확보 및 내륙 진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대변해 주는 사례이며 이때의 실패는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성공에 좋은 교훈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