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부터 미군의 주력 철모이던 M1. |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의 세계 철모 판세를 가르는 가장 중요한 차이는 ‘절대자’의 유무다. 제2차 세계대전 이전에는 비교적 다양한 형태의 철모가 각국에서 사용됐으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대부분의 나라가 미국 아니면 소련식 철모를 사용하게 됐다. 그리고 그 미국식 철모의 대표주자로서 40년 이상 활용된 것이 바로 M1철모이다.
미국은 1917년부터 제2차 세계대전 초기까지 영국식 ‘브로디’ 형 철모를 그대로 사용해 왔다. 하지만 이 철모는 지나치게 위에서 낙하하는 포탄 파편의 방어만 강구하다 보니 방어력의 문제가 꾸준히 지적됐고, 그로 인해 미군은 유럽의 전쟁 징조가 본격화되자 새로운 철모의 연구에 착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 미국이 참전한 41년 말부터 42년까지도 미군은 브로디형 철모를 그대로 사용했지만, 42년부터는 새로운 철모가 등장해서 미군에 지급되기 시작했다. 이것이 바로 M1철모이다.
M1철모는 이전의 브로디형 철모보다 하면에 큰 곡면을 주어 보호 면적을 확보하고 이전에 보호하지 못했던 후면·측면 등의 보호에 신경을 쓴 편이다. 이 부분 자체는 비슷한 시기의 다른 유럽제 철모들과 마찬가지이지만, 독특한 것은 그 구조에 있었다.
M1철모는 2중 구조로 돼 있다. 실제 방어능력을 가진 강철제의 외피, 그리고 외피 안에 끼우는 내피였다. 외피만으로는 절대 착용할 수 없고, 내피를 끼워야 비로소 정상적인 착용이 가능했다. 내피는 처음에는 페놀 수지로 굳힌 압축 종이로 만들어졌으나 내구성이 약해 곧 섬유를 혼입한 플라스틱으로 바뀌었다. 내피는 섬유가 들어간 플라스틱이 재료여서 ‘화이버’라는 애칭으로도 통했으며, 이것만으로도 간단한 작업모로 쓸 수 있어 비전투 상황에서는 내피만을 착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특히 내피와 분리된 상태에서 철모는 물을 담는 그릇이나 삽 대용품, 심지어 변기 대용으로까지 쓰이는 등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었다.
생산성 면에서 M1철모의 2중 구조는 뜻밖의 장점을 가져왔다. 사실 철모에서 제작에 손이 많이 가는 부분은 머리에 직접 닿는, 천으로 만든 서스펜션 부분이다. 기존 철모는 철모 본체가 파손되면 서스펜션 부분까지 포함한 철모 자체를 교체해야 했지만 M1은 전투 중 대부분 외피만 파손되며 서스펜션이 포함된 내피는 큰 파손이 안 되는 경우가 많아 외피만 교체하면 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거꾸로 외피는 멀쩡하고 내피만 파손된 경우에도 내피만 교체하면 됐다. 물론 2중 구조로 인해 철모 자체의 내구성이 높아지기도 했으며, 일반 내무생활이나 작업에서 외피 없이 사용하는 점 때문에 귀중한 외피가 비전투 상황에서 파손되는 상황을 막기도 했다.
M1철모는 제2차 세계대전 중, 그리고 베트남 전쟁 중을 합쳐 미국에서만도 약 2000만 개라는 기록적인 수량이 생산됐다. 이 막대한 수효로 인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에는 막대한 수효가 동맹국들에 원조됐고, 또 과거에는 독자적인 철모를 갖고 있던 서유럽 국가들도 미국의 원조를 받아 M1을 사용하면서 결국 유사한 철모를 자체생산-운용하게 돼 서방세계 국가의 절대다수가 M1 혹은 그 유사품을 사용하게 됐다. M1은 그 수명도 길었는데, 6ㆍ25전쟁, 베트남전을 거쳐 80년대 초반까지도 미군의 주력 철모였으며 일부 국가는 아직도 군용으로 사용할 정도다.
<국방일보 2011.5.9 홍희범 월간 `플래툰' 편집장>